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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말다가 읽은 시
팥죽을 먹은 겨울엔 눈이 팥죽처럼 녹는다
윤성학 - 자살공격 비행단
by
동경
Jun 21. 2021
나는 원숭이
무리의 수컷 우두머리다
지금은 온천중이므로
이 화산섬의 겨울은 차고 정숙해야 한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천근인 듯 눈을 감으니
한 세상이 지나갔다 잠시 눈을 떴다
눈이 내린다
눈을 감았다
온천물에 뛰어드는 눈송이를 보라 지난 세기 자살공격 비행단은 극명한 목표가 있었다 돌아오지 않기 위해 먼 길을 가본 자는 안다 이 눈송이들의 투신으로 무엇이 바뀌는가 한 세상 뛰어들어도 온천의 수위는 높아지지 않고 물은 식지 않는다
눈을 떴다 이 섬은 희고 청한하다 무리 중 누군가 무의미를 무의미라 말한다 나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의미는 어디까지 의미 있는지 잠시라도 아름답다면 그것은 의미인지 무의미인지 아름다움은 누가 규정하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원숭이
수컷이라 생각이 많다
생각이 많아 속눈썹이 긴데
세상에는 눈이 내리고
눈송이 하나가 잠시 속눈썹에 앉아
나는 생을 깜박거린다
아름다워서
무의미해서
윤성학, 자살공격 비행단 (全文)
나는 눈사람. 네가 단단히
뭉쳐 주고, 당근과 나뭇가지와 단추를 꽂아준. 너는 손이 시려 내 손을 잡았다.
가로등 빛이 내 몸에 스미는 소리가 났다.
입김을 흩었다 낚아채는 밤.
우리는
빗금처럼
걸었다
.
사각,
사각거리는 그 촉감을 잃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겨울 외투를 세탁하지 않았다.
눈은 팥죽처럼 으깨어지고,
눈을 뜨니 夏至였다.
사각,
사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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