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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Jul 25. 2021

가는 날을 가는 날

오규원 - 몸과 다리


  길이 다시 길로 구부러지고

  새가 두 다리를 숨기고 땅 위로 날아오르고

  메꽃이 메꽃을 들고 산기슭을 기고

  개미 한 마리가 개미의 다리로 길을 건너가고


  그때 길 밖에서는

  돌멩이 하나가 온몸으로 지구를 한 번 굴렸습니다


오규원, 몸과 다리 (全文)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날이 가는,

  그런 날이 있다


  아무리 들춰 보아도 앞뒤가 맞지 않는 가계부가 있다

  제대로 챙겨 먹는다고 먹어도 남는 약봉지가 있다

  하루 종일 붙잡고 앉았어도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가 있다


  오늘은 가는 날이 어떻게 가는지 보려고 집을 나섰고

  지나다 새로 생긴 카페

  겸 와인바를 보았지만

  카페에 갈 생각이었으므로 그냥 카페로 갔고

  그런데 카페엔 자리가 없었고 그래서 카페 겸

  와인바에 들어갔다 가오픈 중이라는
  그곳은 낮 기온이 36도를 넘어서는
  데도 유리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는데 에어컨 바람이

  고여 있지 않고

  흘러 나간다는 게 나쁘지 않았다 스피커 소리가
  너무 컸지만

  베이스가 두터워서 좋았고 아니, 베이스가 두터웠지만

  소리가 너무 커 무얼 읽기는 좀

  힘들었고 부업으로 하는 번역을 끝냈다

  어느 정도만

  하고 집으로 가 마저 끝낼 생각이었지만 그냥 거기서

  끝냈다 오늘은 카페 겸 와인바를 그냥 카페로만

  이용했으나 다음엔 와인바로도 이용해볼까, 한다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같은 날은 얼마나 가는지

  부러지기가 십상이고

  대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날을 가는,

  그런 날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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