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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Aug 02. 2020

P2P 투자 플랫폼 8퍼센트 "예치금 금고" 써보니…

예치금 금고는 8퍼센트에게 새로운 길이 될 수 있을까?

P2P 투자 플랫폼의 등장


당장 돈이 필요한 이가 있고, 당장은 그렇지 않은 이가 있다. 이들이 만나서 돈을 빌리고 빌러주는 게 금융 시장이다.


그런데 어디서 만나나? 보통은 은행과 같은 여신 기관이다. 여기를 빼고 나면 돈 나올 구멍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기관을 거치지 않으면 투자자와 대출자가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런데 바로 그 만남을 주선해주겠다고 나선 게 P2P 투자 플랫폼이다. 이들은 (은행과 달리 돈을 직접 빌려주기보다는) 투자자와 대출자가 서로 돈을 빌려주고 빌릴 수 있도록 중개를 해줄 뿐이다.


물론 대부분 업체는 그 과정에서 수수료를 부과한다. 다만 직원 수가 적고, 지점이 없고, 광고에도 큰돈을 쓰진 않아서 비용이 훨씬 적게 발생한다. 그렇게 개선된 손익 구조로 투자자와 대출자, 그리고 P2P 플랫폼 자신들에게도 비교적 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이 그리는 장밋빛 전망이다.


그리고 이 중개란 1:1이 될 필요는 없어서 1억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1억 명이 1만 원씩 빌려줄 수 있다.  그래서 큰돈을 빌려줄 수 없는 이들도 투자가 가능하다.

P2P 파일 공유 플랫폼 프루나. 중앙 서버에 파일을 업로드하지 않고 사용자끼리 파일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P2P투자 플랫폼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아직도 운영 중일까?

P2P 투자 플랫폼 업체마다 차이점은 있지만 돈이 당장 필요해서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돈을 구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는 않아서 돈을 빌려주고 수익을 창출할 의향이 있는 사람을 연결해준다는 점에서 모두 공통점을 갖는다.


그런데 P2P 투자 플랫폼의 본질이 되는 이 공통점이 곧 중요한 한계가 되기도 한다. 대출 신청이 들어왔을 때 (심사를 마쳤다고 치더라도) 곧장 대출 실행이 어렵다는 점이다. 1억을 빌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때로부터 1억을 빌려주겠다는 무리가 나타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거 어떡하지?


있는 돈 그냥 쓰면 안 되나요


여신 기관은 (거의) 항상 돈을 많이 갖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그냥 규모가 커서 그렇기도 하고, 전략적으로 그렇게 의도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또 부분적으로는 법이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P2P 플랫폼은 없는 돈이 생기기를 기다려야 한다. 투자자가 투자하기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다. 그래서 테라펀딩, 투게더펀딩, 피플펀드 등은 카카오페이나 토스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투자자를 모집하기도 한다.


그러나 짧아지더라도 돈이 생길 때까지 시간은 걸린다.

다른 방법은 이미 있는 돈으로 그냥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P2P 투자 플랫폼은 여신 기관이 아니라 불가능하다. 다만, 제한적으로나마 기관의 명의로 투자를 할 수는 있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것도 한시적이라 장기적으론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이 "있는 돈"이라는 게 꼭 "P2P 플랫폼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그럼 무슨 돈? 바로 "투자자의 예치금 계좌에 있는 돈"이다.


주식 매매를 위해서 먼저 증권사 예탁금 계좌에 돈을 넣어두듯 P2P 투자를 위해서도 각 플랫폼에서 마련한 예치금 계좌에 돈을 먼저 입금해야 한다. 그런데 그 예치금 계좌에 머물러있으되 실제로 투자가 되고 있지 않은 돈이 있다. 그 돈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지만. (최근 증권사 예탁금 총액은 역대 최대 규모에 이르렀다고 한다. 딱히 P2P 투자 플랫폼 예치금 총액과 상관관계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어쨌든 그 돈을 한 번 써보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게 바로 8퍼센트다. 어떻게? 오늘 다루어 볼 예치금 금고를 통해서.


예치금을 좀 써도 될까요

 

근데 투자자들이 예치금을 그냥 막 가져다 쓰라고 하진 않을 거다. 언제든 출금하고 싶을 땐 출금할 수 있어야 하는 돈이고, 또 투자하고 싶을 땐 투자할 수 있어야 하는 돈이니까.


때문에 당연히 투자자의 동의를 받고 한다. 투자자가 직접 예치금 중 일부 혹은 전부를 예치금 금고에 넣고 뺄 수 있도록 한 것. (카카오뱅크의 세이프 금고, 케이뱅크의 듀얼K 통장 등과 인터페이스가 유사하다.)


이렇게 예치금 금고에 모인 돈(=예치 기금)은 대출자에게 곧장 대출을 해주는 데에 쓰인다.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한 이자 수익은 예치금 금고 투자자들이 먹는다. (원리금수취권을 보유한다고 표현한다.)


이제 일반 투자자들이 개별 대출자들에 대해서 투자를 신청하면 그 투자금은 한데 모여서 한꺼번에 대출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대출자는 이미 돈을 받아갔으니까. 그 돈은 이제 투자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투자하는 족족 예치 기금으로 되돌아간다. 물론 이때부터 이자 수익은 예치금 금고 투자자가 아니라 일반 투자자가 받아가게 된다. 머리 잘 썼다. 특허도 받았단다. 그걸 지금 베타 테스트 중이다.

일반 투자자의 투자가 이루어지는 족족 0.5~1만 원씩 다시 예치 기금으로 되돌아 오는 돈


통상 대출 심사가 끝난 후 투자금 모집을 시작하면 며칠 내로 투자금 모집이 완료된다. 그러니 예치금 금고에서 돈을 빼겠다는 사람이 나와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치 기금에서 돈이 나가더라도 들어오는 속도가 매우 빠르니 말이다. 예치 기금의 유동성이 매우 높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투자금 모집이 완료되지 않아서 예치 기금으로 돈이 되돌아오지 않을 염려도 없다고 8퍼센트는 말하고 있다. 그런 사례는 단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특허출원 제20-71864호에 빛나는 예치금 금고


그런데 아직 예치 기금으로 아직 되돌아오지 않았을 때 투자자들이 예치금 금고에서 돈을 빼겠다면 어떡할까?

그러면 그 돈은 "투자법인"이 준다. (8퍼센트의 자회사 또는 관계회사인가?) 그리고 (예치금 금고 투자자가 일반 투자자로부터 넘겨받은) 이자 수익을 수취할 권리는 다시 투자법인이 가져간다. 그래서 예치금 금고에 넣은 돈은 언제든 뺄 수 있다고 8퍼센트는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헌데 갑자기 여러 예치금 금고 투자자들이 갑자기 엄청나게 큰 액수를 출금하겠다면? 그래도 투자 법인이 이자를 수취할 권리를 금방 사줄까? "그렇게 많이는 바로 못 산다"며 드러눕지는 않을까? 바로 이 문제 때문에 8퍼센트는 "출금 신청이 많을 경우 출금 처리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남겨두고 있다.


현재 예치금 금고 서비스는 베타 테스트 중으로써 미리 신청한 500명만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1인당 예치금 금고에 불입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 200만 원이다. 따라서 예치 기금은 기껏해야 5억 원다. 아마도 베타 테스트 참여 인원과 예치금 최대 불입 금액을 제한한 것은 일시에 예치금 출금 신청이 접수되었을 때 출금 처리가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함이리라 생각된다. "아무리 커도 5억인데 그 정도는 사줄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6월 8퍼센트를 통해 집행된 대출이 50억 원을 조금 넘었다. 모르긴 몰라도 5억 원의 투자액 모집이 안 된 것도 모자라서 하필이면 그때 5억 원 규모의 예치금 출금 신청이 접수될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대량 출금 신청 외에도 리스크는 있다. (가령 일반 투자자들에게 원리금수취권을 넘기기도 전에 채권 부도가 발생한다든가? 하지만 대출 실행 후 1회차 상환일이 도래하기 전에 이런 일이 발생한 사례는 아직까진 없었다고 한다. 1회차 상환일이 도래하기 전 연체가 발생하는 경우는 0.5%란다. 금액이 기준인지 건수가 기준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안정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연환산 수익률도 나쁘지 않다.

운용률은 보관 금액(200만 원) 중 투자된 금액의 비중이다. 수익률은 운용액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보관 금액을 기준으로 볼 때 실질적 수익률은 표시된 것보다는 조금 더 낮다.

그런데 8퍼센트는 베타 서비스가 끝난 후를 생각해야 한다.


치금 금고를 확장할 수 있을까, 아니 확장하면 뭐할까


베타 서비스가 끝난 후엔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은 금액을 예치금 금고에 넣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더?


예치금 출금 신청이 폭주했을 때 발생할 리스크를 감당할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투자법인"이 얼마나 재무적으로 건전한 법인인지 전혀 안내되어 있지 않아서 달리 평가할 수가 없다. 어쩌면 딱 500명 정도만 이용할 때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모를 일이다. "투자법인"의 재무 상태와 예치 기금 운용 규모가 공개되지 않는 한 말이다. (투명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한편으로는 예치금 금고의 태생적 구조상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예치금 금고는 언젠가 그 예치 기금으로 투자하여 발생한 원리금수취권을 구매할 일반 투자자가 있을 때에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예치금 금고를 통한 투자가 딱히 일반 투자보다 수익률이 낮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높은 수준의 환금성이 확보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예치금 금고가 모든 투자자에게 오픈되면, 그래서 굉장히 많은 투자자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오히려 그 누구에게도 유용하지 않은 서비스가 될 공산이 크다. (그걸 막자고 예치금 금고 서비스 이용료를 대폭 늘리려나?)


그보다는 이걸 확장하면 대체 어디다 쓸까, 이런 생각이 든다. 2020년 6월 기준 대출 실행액이 총 50억 원 수준이다.

8월 1일에 공개되어 있는 상품의 모집 금액을 최근에 올라온 것부터 더해보았다. 118개 상품의 모집 금액을 더하자 5억 원이 조금 못 되었다. (119개까지 가면 5억 원을 조금 넘는다.)

그리고 118번째 상품의 대출이 실행된 건 7월 28일이다. 대출 실행일로부터 4일이 지난 지금도 투자금 모집이 완료되지 않았으니 예치금 금고가 아니었더라면 대출자는 아직도 현금 확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상품의 투자금 모집률은 8월 1일 기준으로 70%를 넘어섰다. 같은 속도로 투자금이 모집된다면 8월 2-3일 경에 완료될 것이다. (물론 상품마다 목표 모집 금액과 모집 속도가 다르니 편차는 있다.)

그럼 예치금 금고 서비스 덕에 5-6일 정도 대출금을 미리 받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예치금 금고가 가득 차서 5억 원의 예치 기금이 조성되었다는 가정 아래에서 그렇다.) 대출자 입장에서 편하긴 하다.



그런데 이게 8퍼센트의 성장에 획기적인 도움이 될까? 궁극적으로 P2P 투자 플랫폼은 취급액을 늘려야 한다. 그게 곧 매출과 수익의 원천이 될 것이니까. 5-6일 정도 대출 실행을 앞당길 수 있다는 건 대출자 입장에선 매력적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그럴까? 글쎄. 예치금 금고는 "투자법인"의 원리금수취권 매수 여력과 그 자체적인 구조적 한계로 확장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예치금 금고를 이용하는 소소한 혜택을 누릴 투자자는 크게 늘기 어렵다. 결국 8퍼센트는 제대로 된 대출 심사로 (명목상 수익률에서 손실률을 제한) 실질적인 수익률을 높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개인 신용 채권의 연체율이 4%를 넘는다. 명목 수익률이 8%라면 세금과 수수료까지 제한 최종 실질 수익률은 2% 대가 된다. 뭘 하자는 걸까?


8퍼센트가 영업 초기에 힘을 주어 하던 말이 있다. (요즘도 하는지는 모르겠다.) 부동산 담보 대출과 달리 개인 신용 대출은 상호 상관도가 낮아서 분산 투자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서울 A구 부동산이 떨어지면 대체로 B구, C구, D구에서도 떨어진다. 부동산 시장은 실물 경제 성장과 정책 등 거시적인 흐름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하지만 경제가 침체된다고 사람들이 일시에 해고되는 건 아니다. (사업자는 일시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개인 신용 채권은 어떤 것이 부실화되더라도, 다른 것은 멀쩡할 수 있다. 따라서 여러 채권에 분산하여 투자하면 부실은 불가피하되, 최종적인 수익률은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대강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이건 대출 심사를 똑바로 할 때나 맞는 얘기다. 8퍼센트에서 취급한 개인 신용 대출 금액 중 4%가 연체다. 연체 채권이 정상화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매우 드물다. 명목 수익률이 10%라면 실질적인 세전 수익률이 6% 정도가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세금과 수수료를 뗀다. 그럼 수익률은 2%대로 주저앉는다. (심지어 채권을 매각하는 등의 사유로 확정된 손실 금액은 여기에 포함도 되어 있지 않다. 이걸 고려하면 수익률은 지하실로 내려간다.)


뭘 하자는 걸까? 그래서 8퍼센트에선 개인 신용 채권에 투자하면 "안정적으로" 손실이 발생한다. 이것도 안정적이라도 봐야 하나? 갑자기 떡락하진 않으니? (8퍼센트도 이걸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에는 부동산 담보 대출을 새로이 시작했다. 비교적 성과가 괜찮다. 참고로 렌딧은 포지셔닝을 잘못해서 이런 사업 방향 변경도 못하고 있다. 경영진의 매우 큰 패착이라고 생각한다.)


P2P 투자는 예금자보호법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고, 환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손실이 발생해도 좋으니 환금하고 싶다는 것도 통하지 않는다. (렌딧, 투게더펀딩과 같은 일부 플랫폼에서는 투자자들끼리 원리금수취권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상당히 비싼 수수료를 부과한다. 돈을 버는 법도 참 다양하다.) 그런데도 수익률이 2%대라면 그냥 예적금을 드는 게 낫다. 아무리 저금리 시대라지만 저축 은행과 상호금융권을 잘 활용하면 2%대 이자를 받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예치금 금고 서비스는 8퍼센트 투자를 멈춘 이에게도 다시 8퍼센트를 들여다보게끔 할 정도로 기발하고 흥미로운 서비스다.

하지만 예치금 금고 서비스는 절대 본이 될 수 없다. 이건 예치금 금고를 통하지 않은 일반 투자가 활성화될 때에만 비로소 그 장점을 살릴 수 있고, 또 확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각종 지표는 8퍼센트 투자자에게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지 오래다. 예치금 금고 서비스 베타 테스트가 끝난 후에도 8퍼센트에 접속하게 될까? 두고 보겠지만 회의적이다. 8퍼센트가 꼭 명심해야 할 게 하나 있다. 대부분의 특허는 돈이 안 된다.



p.s. 예치금 금고 베타 서비스는 2021년 2월 18일까지 6개월 간 시행 후 종료되었다. 베타 서비스 기간 중 수익률은 세금과 수수료를 제하고도 5.8%가 나왔고, 손실 발생은 없었다. 새로운 가능성인 건 분명하다. 다만, 예치금 금고가 아닌 일반 투자 성과 지표가 개선되지 않으면 그저 가능성으로만 남을 것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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