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경 Mar 15. 2020

비트겐슈타인은 파검·흰금 드레스에 대해 뭐라 말할까?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보이나요? 흰색과 금색으로 보이나요?

누군가는 파란색 바탕에 검은 레이스 달린 것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흰색 바탕에 금색 레이스가 달린 것이라 말한다. (같은 사람이 때에 따라 같은 색을 보기도 하고, 또 색을 바꾸어 가며 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옳은가? 실제 피사체는 파검 드레스였다. 다만 더 중요한 건 왜 이런 지각의 차이가 생기는 것 질문일 것이다.


이 드레스에 대한 런던대학교 철학연구소 소속 배리 스미스Barry C. Smith 교수의 글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우린 모두 이 드레스가 우리 눈앞에 있고, 색맹이나 색약이 아닌 한 이 드레스가 무슨 색깔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계는 둘로 나뉘었죠. 이 드레스를 흰색과 금색으로 보는 이들과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보는 이들로요. 다들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드레스를 보고 있고, 그 이미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걸요. 그럼 대체 사람들은 왜 이렇게나 드레스 색깔을 다르게 보는 걸까요?


그냥 원래 사람들은 모두 세계를 달리 본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사물의 진짜 색깔이라는 건 애초에 없는 일이라고, 색은 그저 보는 사람의 눈에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흥미로운 생각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좀 다르게 생각했을 겁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일상적인 사유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지적한 걸로 유명합니다. 언젠가 제자 엘리자베스 앤스컴이 비트겐슈타인에게 말하죠. 왜 옛날 사람들이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는지 알 것 같다고요. 비트겐슈타인이 왜 사람들이 그리 생각했을 것 같냐고 묻자, 앤스컴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렇게 보이잖아요." 비트겐슈타인은 다시 물어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면 다르게 보였을까?" 당연히 다르게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비트겐슈타인은 드레스의 진짜 색깔에 대한 논쟁에 대해 (혹은 지금까지는 온갖 사물의 색깔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 드레스를 이토록 달리 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요? 관찰자의 망막을 때리는 빛의 파장은 같은데, 어떻게 누군가에겐 흰금으로 보이는 게 다른 이에겐 파검으로 보일 수가 있을 걸까요?


어쩌면 비트겐슈타인은 조셉 재스트로우Joseph Jastrow의 오리-토끼 그림을 언급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그림에선 오리를 볼 수도 있고, 토끼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림 자체를 바꾸지 않아도요. 두 동물을 동시에 볼 순 없지만, 바꿔가면서 볼 수는 있죠. 비트겐슈타인은 이걸 "상 전환aspect-switching"이라 부릅니다. 길쭉한 모양을 토끼의 귀로 볼 때와 오리의 부리로 볼 때 각각 다른 을 본다는 거죠. 우리가 그림을 보고서 어떤 부분을 오리의 부리로 생각하는지 혹은 토끼의 귀로 생각하는지에 따라 같은 대상도 완전히 달리 보이는 겁니다.


드레스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파검과 흰금을 바꿔가면서 볼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니터를 바꾸거나 조명을 바꿀 때 갑자기 드레스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경우는 있어도 말이죠.


바로 여기에 열쇠가 있습니다. 같은 것도 달리 보이게 하는 건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른 게 아니라, 우리가 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른 것이란 거죠. 오리-토끼 그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요. 이 드레스를 흰금으로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드레스의 흰색 부분이 푸른빛 조명에 의해 파랗게 보이는 것이라 말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연푸른 조명 아래 흰 드레스를 두면 정말 저렇게 보입니다.


이와 달리 푸른색 조명을 덜어내지 않는 사람들은 이 드레스가 흰 조명 아래 놓인 파란 드레스라고 생각합니다. 파란 빛을 받는 흰 드레스가 아니라 말이죠. 드레스를 보는 순간과 그 드레스 색깔을 판단하는 순간 사이, 그 짧은 찰나에 이 생각이 들어서는 겁니다. 드레스를 둘러싼 불빛에 대한 바로 이 생각이 바로 드레스를 달리 보이게 하는 거죠.


파검파와 흰금파는 모두 드레스 그 자체에 도달하진 못했습니다. 그 점에선 오리-토끼 그림을 보는 여느 사람과 같아요. 다만 파검파와 흰금파의 차이를 비트겐슈타인의 상 전환으로만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부분에 집중하거나 기존에 다른 사유 체계를 갖고 있어서 다른 색을 보게 된 게 아니거든요. 도리어 색을 인식하는 시각 체계의 차이가 이들을 나누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겁니다. 이 드레스 덕분에 우리는 이 차이에 대해 알게 되었죠.


비트겐슈타인은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King Lear 에 나오는 "내가 너에게 차이에 대해 가르쳐 주겠노라I'll teach you differences"라는 문장을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s 모토로 삼을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 드레스보다 더 좋은 예가 있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