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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Sep 18. 2020

지식이란 게 뭘까?

게티어 문제

영화 <인크레더블>엔 이런 장면이 나와요. 에드나가 엘라스티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네 남편 어딨는지 알아?
Do you know where he is?
(6초) 그냥 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고?

엘라스티걸은 "당연히 알지"라고 대답해요. 사실 엘라스티걸은 남편 밥이 어딨는지 모릅니다. 에드나는 그걸 알고 있어요. 엘라스티걸이 모른다는 걸 말이죠. 그래서 에드나는 다시 묻습니다. 아니, 안다고 생각하는 거 말고! 진짜 아냐고!

Do you KNOW where he is?


이때 "know" 발음에 힘을 주죠. 정말로 아느냐? 남편의 소재에 대한 지식knowledge이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엘라스티걸은 밥이 보험 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밥은 몰래 영웅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에요. 엘라스티걸의 생각이 틀렸던 거죠. 그러니 엘라스티걸이 남편이 어딨는지 알았다고 할 순 없을 겁니다.

이제 부부싸움이 일어나겠군요


그러니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려면 그렇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게 정말로 사실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요?


꿈에서 할아버지가 일러준 로또 번호를 1등 당첨 번호라고 굳게 믿고 로또를 샀더니 진짜 1등으로 당첨된 경우를 상상해봅시다. 로또를 사던 그 순간 그 번호가 1등 당첨 번호라는 걸 알았던 걸까요? 그냥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이들 번호가 1등 당첨 번호일 것이란 그 생각을 지식이라고 부르긴 어려워 보입니다. 왜냐면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게 진짜 1등 당첨 번호라는 걸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에 "어… 할아버지가 꿈속에서 알려줘서…" 이렇게 대답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식 = 정당화된 참인 믿음
Knowledge = Justified True Belief


그런데 에드먼드 게티어라는 한 젊은 철학자가 여기에 반문을 제기합니다. 그래? 진짜? 아닌 거 같은데?


그는 반례를 두 가지 제시해요.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지만 지식은 아닌 거 같은 경우를 상상해보자는 것이죠.

(아주 기가 막힌 사고 실험에 철학계가 술렁입니다. 게티어의 논문은 지식 개념 분석에 관한 한 영원한 베스트셀러(?)가 되었죠. 그래서 게티어는 이 2.5페이지짜리(!) 논문 하나만 쓰고 바로 대학 교수가 됩니다. 더 놀라운 건 이게 게티어의 처음이자 마지막 논문이란 겁니다.)


반례 1


가영이는 취업 면접을 보러 갑니다. 면접이 끝나고 화장실에 간 가영이는 면접관들이 "나영? 그 친구가 참 괜찮더라. 한 명밖에 못 뽑는데, 그 친구를 뽑아야겠어"라고 말하는 걸 듣습니다. 이걸 근거로 가영이는 나영이가 취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영이는 취직을 할 것이다"라는 문장을 믿게 되는 거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죠.

화장실을 나온 가영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최종 합격자는 1명이라는데, 그게 본인은 아니니까요. 콜라 원샷을 때려야겠습니다. 근데 현금이 없어요. 그래서 가영이는 나영이에게 동전을 좀 빌려 달라고 해요. 나영이는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헤아립니다. 10원짜리 동전 10개가 있네요. 하지만 이걸론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먹을 수 없습니다. 가영이는 그냥 콜라를 포기하기로 하죠. 그리고 나영이가 동전 10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죠. 이제 가영이는 "나영이는 동전을 10개 갖고 있다"는 문장도 믿게 됩니다.


이제 가영이는 두 가지 생각을 통해 "동전을 10개 갖고 있는 사람이 취직을 할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나영이가 취직을 할 것이고, 나영이가 동전을 10개 갖고 있는 사람이니 자연스러운 생각이죠.

다음 후보자, 들어오세요

여기서 따블(!) 반전이 일어납니다. ① 면접관들이 가영이와 나영이를 혼동한 거예요. 사실 면접관들은 처음부터 가영이를 뽑을 생각이었던 겁니다. ② 근데 하필이면 가영이가 가방 깊숙한 곳에 동전 10개를 넣어두었던 거죠. 그저 까먹고 있었을 뿐. 그러니 "동전을 10개 갖고 있는 사람이 취직을 할 것"이란 믿음은 참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게 된 데엔 다 근거가 있었죠. 정당화가 이루어진 거예요.


그렇다고 가영이가 "동전을 10개 갖고 있는 사람이 취직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반례 2


다영이는 라영이 집에 놀러 갑니다. 라영이는 최근 벤츠를 한 대 뽑았어요. 주차장에 주차가 되어 있었죠. 다영이와 라영이는 벤츠로 드라이브를 즐깁니다.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다영이는 "라영이가 벤츠를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역시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가 다 있었죠.

다영이는 그러다 문득 유학을 떠나 오늘 함께 만나지 못한 마영이가 생각납니다. 마영이는 세계 여행을 한다며 몇 달 전 한국을 떠났는데 지금은 어딨을까요? 지난주엔 런던이라 그랬는데… 지금은 어딨는지 모를 일이죠.


하지만 어쨌든 "라영이가 벤츠를 소유하고 있다"는 문장은 참이니까 "라영이가 벤츠를 소유하고 있거나 마영이가 요하네스버그에 있다"는 문장도 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옳은 생각이죠? 마영이가 어디 있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라영이가 벤츠를 소유하고 있다면 마영이가 어디 있든 "라영이가 벤츠를 소유하고 있거나 마영이가 요하네스버그에 있다"는 문장은 참이 되겠죠.


또 따블(!) 반전이 일어납니다. ① 사실 라영이는 벤츠 차주가 아니었습니다. 렌터카였어요. 그냥 벤츠 소유주로 보이고 싶어서 번호판을 떼고 다영이에게 자랑질을 한 거였죠. ② 게다가 하필 마영이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있었던 겁니다. 때문에 라영이가 벤츠를 소유하고 있거나 마영이가 요하네스버그에 있을 거란 믿음은 참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엔 다 이유가 있었죠? 역시 정당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벤츠는 렌트야. 내 차는 이거야.

정말 다영이는 라영이가 벤츠 소유주이거나 마영이가 요하네스버그에서 여행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요?

게티어의 논문을 읽은 철학자들의 반응


띠용? 철학자들은 이제 당황합니다. 아, 지식이 뭐지? 이 질문이 바로 게티어 문제Gettier Problem의 핵심이에요. 이제 철학자들은 지식이 무엇인지를 보다 면밀히 따지기 시작합니다.


게티어 문제가 시사하는 바는 "지식≠정당화된 참인 믿음"이라기 보단 대체 여기서 "정당화"란 무엇인지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리라 생각돼요. 나영이가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라영이가 벤츠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각각 면접관들의 대화와 라영이의 교묘한 속임에 오도되었기 때문이죠? 그러니 이 생각이 제대로 정당화된 게 맞는지 의문을 품어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게티어 문제를 해결하는 시도는 인식적 정당화epistemic justification는 대체 언제 성립한다고 볼 수 있는지를 논하게 됩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습니다. 어떤 주장은 "그렇게 따지면 지식이라고 볼 수 있는 것도 지식이 아닌 것으로 내치게 되지 않느냐"는 반론에, 또 어떤 주장은 "그렇게 따지면 지식이라고 볼 수 없는 것도 지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느냐"는 반론에 부딪힙니다. 지식의 외연을 너무 좁게 혹은 너무 넓게 설정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죠. 또 어떤 철학자는 애초에 게티어 문제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주장하기도 합니다. (전혀 새로운 해결 방법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라고 생각됩니다만…)


#게티어 #게티어_문제 #인식론 #지식 #인식적_정당화 #분석_철학


Edmund Gettier, "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 Analysis 23 (1963): 121-23 [원문 보기]



게티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 가지 시도를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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