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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Sep 19. 2020

게티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 가지 시도

인과적 지식 이론

▼ 이 글을 미리 읽고 오셔야 따라오실 수 있어요!



지식이 뭘까? 정말 지식=정당화된 참인 믿음일까? 아닌 것 같은데?


이게 게티어 문제의 핵심이에요. 에드먼드 게이터는 어떤 생각이 사실과 들어맞고 나름의 근거가 있어도(!) 지식이 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짧은 이야기로 보여줍니다. 그럼 이 밖에 뭐가 있어야 지식이 성립할 수 있는 걸까요?


게티어 사례에서는 왜 지식이 성립하지 않을까?


[사례 1]에서 가영이가 본인이 탈락하고, 나영이가 취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게 된 뭣 때문이었죠? 면접과들이 가영이와 나영이를 서로 헷갈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면접관들은 사실 가영이를 뽑을 생각이었지만, 나영이를 뽑자고 말을 하게 됩니다. 가영이는 이걸 우연히 듣게 되고요. 이어서 가영이는 나영이가 동전 10개를 갖고 있다는 걸 보게 됩니다. 그리고 "동전 10개를 가진 사람이 취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생각은 결과적으로 사실이었죠. 진짜 합격자는 가영이 본인이었고, 또 가영이 본인도 동전 10개를 갖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원인은 가영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나영이가 취직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정황과 나영이가 동전 10개를 갖고 있었다는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정황, 바로 이 때문에 "동전 10개를 가진 사람이 취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죠?


[사례 2]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다영이는 라영이에게 속아서 라영이가 벤츠 차주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리고 부러워서 배가 아프게 됩니다. 그러니 다영이가 "라영이가 벤츠 차주이거나 마영이가 요하네스버그에 있다"고 믿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그리고 이 믿음 역시 결과적으로 참이 됩니다. 라영이는 렌터카를 빌린 것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마영이가 하필이면 그때 요하네스버그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영이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마영이의 인스타그램 사진 등을 봤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영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그저 다영이와 함께 벤츠 드라이브를 즐긴 게 계기가 된 거였죠.

뭔가 빠져 있어…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게 된 원인과 그 생각을 참으로 만들어주는 사실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거죠. 골드만은 바로 여기서 해답을 찾으려 합니다. 지식이 성립하기 위해선 인과적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X라는 생각과 실제 X가 인과적으로 관련이 있어야 한다." 이런 거죠.


이제 이 인과적 지식 이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과거 사실에 대한 지식


어느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창문을 깨고 침입했죠. 피해자가 셜록 홈즈에게 수사를 의뢰합니다.

다음 날 아침 현장으로 나온 셜록 홈즈는 깨진 창문 유리가 방 안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죠. 그리고 누군가가 창문을 깨고 나간 게 아니라, 들어온 거라고 생각하게 되죠.


이때 "누군가가 창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은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호, 셜록 홈즈 뭘 좀 아는구만.


그런 왜 그럴까요? "누군가가 창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는 생각과 실제로 누군가가 창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인과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누군가가 창문 밖에서 들어왔다"는 생각과 누군가가 창문 밖에서 들어왔다는 사실은 인과적으로 연결돼요. 골드만은 그래서 이게 셜록 홈즈의 생각이 곧 지식이라고 말할 겁니다.


여기서 모리아티가 장난질을 합니다. 도둑이 든 건 맞아요. 그리고 유리창이 실내 바닥에 흩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리아티는 정문으로 들어온 다음 이 유리창을 다 치우고, 다시 다른 유리 조각을 뿌려서 창문이 밖에서 안으로 깨진 것처럼 꾸밈니다. 그리고 다시 정문으로 나가죠.

인과적 관련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가 창문 밖에서 들어왔다"는 건 참입니다. 하지만 셜록 홈즈가 이걸 안다고 얘기할 순 없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 사건은 셜록 홈즈의 이 생가과 인과적 관련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 사실에 대한 지식


베어 그릴스는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사냥을 해야겠다고 다짐하죠. 그리고 그걸 카메라맨에게 말합니다. "야, 나 사냥할거야." 카메라맨은 베어 그릴스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다짐을 한 건 해내고 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죠. "음, 형은 정말로 사냥을 하겠구나." 그리고 베어 그릴스는 다짐에 따라 정말로 사냥을 합니다. 이때 카메라맨은 베어 그릴스가 사냥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겠죠?


이렇게 "베어 그릴스가 사냥을 할 것"이란 생각과 베어 그릴스가 사냥을 할 것이란 사실은 인과적으로 연결됩니다. 왜냐하면 공통된 원인이 있기 때문이죠. 사냥을 하겠다는 다짐이죠. 그래서 인과적 연관성이 성립합니다.


인과적 선후 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공통 원인을 갖는다면 인과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 베어 그릴스는 마음이 바뀝니다. 현타가 왔죠. 그래서 그냥 몰래 가져온 도시락을 까먹기로 합니다. 사냥은 건너뛰고요. 그 순간, 갑자기 빡빡이 형이 나타나서 베어 그릴스를 협박합니다. "빨리 사냥하러 가지 않으면 없애버리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베어 그릴스는 사냥을 하러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죠.

인과적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이제 "베어 그릴스가 사냥을 하러 갈 것"이란 카메라맨의 생각과 실제로 베어 그릴스가 사냥을 하러 갈 것이란 사실은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카메라맨의 생각은 베어 그릴스의 다짐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베어 그릴스가 사냥을 하러 나선 것은 그 다짐 때문이 아니라 빡빡이 형의 협박 때문이니까요. 둘은 이제 다른 원인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엔 베어 그릴스가 정말 사냥을 하게 될 예정일지라도 카메라맨이 그걸 안다고 말할 순 없어요.



어떤가요? 꽤 그럴듯하죠? 과연 골드만이 제시한 인과적 지식 이론은 게티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두-둥 (다음편)



#인식론 #게티어_문제 #게티어 #인과적_지식_이론 #골드만



Alvin I. Goldman, "A Causal Theory of Knowing," The Journal of Philosophy 64(12): 35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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