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영어는 처음이지?
"저 오빠는 뭘 알려줘도 해보려고 하지 않아."
글을 쓰는 지금은 내가 카페에서 일한 지 5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시드니에 제법 장사가 잘 되는 카페에 취직한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 주문이 들어오고 나가는 속도가 한국과는 차원이 달랐고 비교하자면 스타벅스 중에도 엄청 바쁜 매장에 손님이 몰리는 정도의 강도가 조그마한 테이크 어웨이 카페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동네에 로스터리 카페를 열어서 원두도 팔고 손님이 들어오면 한잔 한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고 바빠도 혼자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에서만 일해 봤던 나는 이제 막 바리스타를 시작하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영어도 빠르게 이야기하면 들리지도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워낙 떠듬떠듬 이야기하다 보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위축이 될 수밖에 없고 틀려도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남들이 틀린 이야기를 해도 나는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함께 일하는 바리스타 중에 한국 사람도 제법 있지만 어차피 일할 땐 영어를 할 수밖에 없고 일이 서툰 내게 한국 사람이 아니어도 일을 알려줘야 했다. 바쁜 와중에 일을 알려주니까 제대로 못 알아듣고 딴 일을 하는 게 다반수였고 그게 이해가 안 되니 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한테는 이야기를 못하고 결국엔 다른 사람에게 '저 사람은 뭘 알려줘도 딴짓을 해서 알려주고 싶지가 않다.'라는 이야기를 했고 결국 내가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 그 친구에게도 엄청 미안했고 잘 알아듣지 못한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영어 공부 좀 더 해둘걸 하고 후회해도 이미 상황은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던 친구들과는 오해 없이 정말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그때 그 친구들이 나에게 짜증스럽게 대한만큼 나도 똑같이 그 친구들을 대했다면 지금의 즐거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건 내가 나이가 들어 워홀을 오게 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니 크게 화날 일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처음보다 일도 익숙해지고 제법 잘하고 있으니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영어를 잘해서 남들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도 원활하게 이야기를 할 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언어를 더 많이 알면 알 수록 세상을 보는 시야가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임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호주에 오기 전에 워홀을 다녀왔던 지인들로부터 이런 응원들을 받았다. "시간이 많이 없으니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확실히 해와. 돈을 많이 모아 오기, 영어 공부하기, 여행 다니기." 워홀 선배들의 말에 한 없이 공감할 수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한국 국적의 사람이 호주에 잠깐 체류할 수 있는 비자로 엄청난 불편을 감수하고 여기에 살아가고 있다면 얻어 갈 수 있는 건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눈
그 눈을 가지려면 언어의 벽을 무너뜨려야 하고,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고 느껴야 하며, 그런 것들을 하며 살아가려면 당연스럽게 돈을 벌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다면 여기서 그 세 가지를 다 이루고 가볼 생각이다. 그리고 누군가 호주로 떠나간다고 하면 꼭 세 가지를 이루고 오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