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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주아 Aug 31. 2018

바나나 사진을 찍다




아침 식사로 바나나를 자주 먹는다. 껍질을 까기 위한 도구가 필요 없고, 향긋하고 부드러운 게 마음에 든다. 바나나의 노랑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그동안 먹어치운 바나나가 아마 수천 개는 될 것이다.


거리 사진을 찍기 위해 홍콩에서 2주 정도 머물 때였다. 비싼 물가 탓에 호텔 대신 선택한 게스트하우스 1인실은 낡은 침대와 작은 플라스틱 책상이 하나씩 놓여 있는 아주 형편없이 좁은 방이었다. 때 묻은 하얀 시멘트 벽에 페인트칠까지 군데군데 벗겨져 암울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었으니 조식 같은 것은 당연히 상상할 수 없었다. 하여 나는 가까운 마트에 들러 여행할 때 늘 그러듯 물 한 병과 사과 몇 개와 바나나 한 송이를 사게 되었다.   


집에서 보통 일곱 개 내외가 달린 바나나 한 송이를 하루에 한 개씩 혹은 가끔 건너뛰기도 하며 먹다 보면, 마지막 까지 남겨진 바나나는 늘 힘없고 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바나나가 그렇게 될 때까지 몰랐던 것이 괜히 미안했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지켜봐주겠다고, 너를 보이지 않는 곳에 방치하지 않고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찬찬히 보아주겠다고, 마음 한편에 홀로 약속을 만들어 두었다.


홍콩의 암울한 방에서 마침 그 약속이 생각나 바나나 하나를 골라 냈다. 책상 위 반듯한 곳에 휴대용 티슈 한 장을 깔고 반들반들한 바나나를 곱게 눕힌 뒤, 내일부터 매일 아침 너의 모습을 찍을 거야, 하며 잠들었다. ‘너’ 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생긴 탓인지 방이 조금 덜 암울한 것도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어디에서 찍을지 둘러볼 것도 없이 마침 빨강색이었던 베개 위에 바나나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 일어서서 위에서 촬영을 했다. 만약 그때 곁에 누군가 있어서, 그 바나나를 왜 찍느냐고 물었다면 내게도 뚜렷한 대답은 없었을 것이다. '그냥' 이라고 밖에. 그럼에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일단은 찍는 것이다. 약속에는 이미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왜'를 잊고 찍는 순간에 집중했다. 그랬더니 뷰파인더를 들여다 볼 때마다 바나나는 매번 새롭게 보였고 포커스를 맞출 때마다 더 자세히 보였다. 매끄러운 표면의 건강함과 둥그런 곡선의 부드러움과 버선코처럼 살짝 들린 끝모양 하며 꼭지에 머리카락처럼 붙은 섬유질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애정이란 것도 차츰 생겨났다. 매일 아침 씻기도 전에 가장 먼저 바나나를 찍었고 저녁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도 바나나였다. 마치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나의 바나나가 생긴 기분이었다.


무언가 하나를 자주 들여다 보는 일이라면 이십 대 무렵 미니 장미 화분을 키운 적이 있다. 그 시절 다니던 회사 창가에 두고 키웠던 것인데, 물을 주고 퇴근한 뒤 다음 날 출근해서 보면 새끼 손톱만 한 아기 잎이 돋아나 있는 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떨어지는 잎보다 태어나는 잎이 더 예뻐 보이는 시기였다.

그러나 나의 바나나는 나의 장미와 달리 씩씩하지 못했다. 3일째 되는 날 일어나 보니 전날 자기 전에 없었던 거뭇한 반점들이 바나나의 몸 여기저기에 박혀 있었다. 예상보다 빨리 검은 자국들이 성큼성큼 덮쳐오는 듯했다. 나는 당연히 바나나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 지 모두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지켜보는 일은 조금 달랐다. 단단했던 바나나가 점점 흐물거리게 되자 더욱 조심히 손바닥에 얹어 천천히 베개로 옮겨야 했다. 나는 언젠가 나 자신에게도 닥쳐올 늙음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치 담담하게 대화를 나누듯 하루하루 끝까지 촬영을 이어갔다.


홍콩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려고 책상에 앉았다. 그날그날  촬영을 마친 후 사진을 한 장씩 들여다 보았을 때 나는 그저 11일의 시간을 함께 보낸 정든 내 바나나가 익어가는, 늙어가는 혹은 죽어가는 과정이라고 느꼈다. 나는 성실히 내 나름대로의 약속을 지켰고 추억처럼 닫아둘 하나의 경험을 다했다 여겼다.

그러나 노트북으로 사진을 옮겨 수십 장의 사진 썸네일들이 한 화면에 동시에 펼쳐진 순간, 가슴 속에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떨림이 일어났다.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이것 모두의 합이 하나의 전체, 라는 게 보였다. 이 사진들을 찍다가 중간에 그만 뒀다면 그건 그리 기억할 만한 사진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찍었던 것, 그 과정과 마지막 모습과 부재까지 보았던 덕분에 이 작업은 더욱 소중하게 남을 수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만 들여다 보면 우리 삶도 그저그런 단편적인 모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모인 합이 인생 전체를 이루게 될 것이기에 하루는 한 번의 인생을 채우는 없어서는 안될 조각이다.

하루에는 그 하루만 보아서는 다 알 수 없는 의미가 분명 숨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의미를 매일 알아볼 수 있다는 건 신에게나 주어진 능력일 테고 매일을 처음 사는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일 뿐이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는 일.

그렇게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이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가끔 소망하다가 가끔 실망하고 때로 절망하며. 그래도 하루치씩 끝까지는 살아갈 거다. 그리하여 그 시간의 초상들을 모두 모아놓고 마지막 순간에 마침내 ‘삶’이라 불러보고 싶다. 이 다짐에 다다르고 싶었던 것. 내가 바나나 사진을 찍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아마도 이것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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