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성장한 지금에 하는 연애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와 다르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서로의 다름에서 오는 갈등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함께 나아가는 일이 연애인만큼 갈등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바로 그 갈등을 대하는 자세였다.
최근에 이상하게도 자꾸 짝꿍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사이에 '다름'을 인지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짝꿍을 배려하고자 했던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버거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호불호가 강하고 고집도 센 편인 나인데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좋으니까 최대한 맞추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짝꿍이 무조건 자신에게 맞추라고 강요를 한다거나 그렇게 안 해준다고 삐지거나 화를 내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마음에 부담이 생기는 것보다는 내가 참는 것이 낫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짝꿍이 부득이한 약속이 생겨서 원래 예정되어 있던 데이트가 뒤로 조금 미뤄지게 됐다. 약속이 어긋나는 것도, 함께 하는 시간에 '우리'가 우선시 되지 않는 일도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짝꿍이 내게 조심스럽게 다녀와도 되겠냐고 묻는 순간 이미 나는 알았다. 그는 가야 한다는 것과 그도 내게 이 말을 하면서 많이 어려웠을 거란 사실을. 그래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어째 계속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나조차도 잘 몰랐고 심지어 쿨하지 못한 내 모습에 짜증이 났다. 그러다 이런저런 감정이 뒤엉켜 더 커져버렸고 결국 데이트 당일에 우리 사이에 불편한 기류를 형성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먹구름이 되어있었다.
어렸을 때는 이런 경우 대게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짜증이 나면 짜증이 나는 대로 감정을 다 쏟아냈었다. 그런데 때로는 그게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본래 싸움과는 상관없던 일도 끄집어내서 심지어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됨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이후로 삼십 대에 접어든 지금은 일단 그런 감정들을 누르고 내 감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것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불필요한 말은 줄어들고 정말 해야 하는 말만 남게 되어 상대에게 보다 정확하게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되어 갈등의 시간을 줄이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날도 어김없이 우리는 그런 시간을 거쳤다.
본래 갈등이 생기면 침묵하는 시간이 나보다 훨씬 더 긴 짝꿍이기에 입을 먼저 여는 것은 항상 나인데 이 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내 감정에 대해 얘기를 했고 묵묵히 내 얘기를 듣던 짝꿍은 "그러면 자기가 그럴 때 내가 어떻게 위로해주면 좋겠어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해해주는 것이라고 대답하는데 정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짝꿍에게 대답하는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마음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짝꿍이 먼저 알아차리고 대신 보듬어주길 바랬던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순간 짝꿍이 날 무릎 위에 앉혀 꼭 안아 다독여주며 내 귀에 나직이 속삭였다. "미안해요. 내가 이해를 못해줬구나. 내가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모든 게 괜찮아졌다. 그의 품과 목소리에서 진심이 가득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만큼이나 고집이 센 사람이 마음과 귀를 열고 내 말을 듣고 내 마음을 헤아려주었다는 사실에 서늘했던 마음이 따스한 기운으로 가득해졌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서 아무 문제없이 매일 달콤하기만 할 수는 없다. 손을 맞잡고 걸어가기로 한 순간부터 서로의 '다름' 앞에 멈추어 서서 고민하는 순간들은 어느 연인에게나 분명히 찾아온다. 물론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을 빚고 싸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일에 서툴러서 어렵고 힘든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화를 피하다 보면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점점 좁아지게 된다. 때로는 말로 해야지만 상대의 마음에 전달되어지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갈등을 겪고 그걸 극복해내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 시간들을 함께 겪으며 나아가면 결국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생겨서 흔들리지 않는 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름'으로 인해 빚어지는 불편함이나 갈등을 더는 외면하지도 묻어두지도 말고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로 오늘도 마음껏 사랑하며 사는 우리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