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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Jul 26. 2022

행운 맞이

#유행 #안목 #기회

새로운 걸 좋아하지만 유행을 선도할 만큼 용기가 있진 않다. 무대 울렁증이 있어서다. 혼자서 무대 조명을 받을 상상을 하면 어깨가 움츠러든다. 당연히 무대에서 홀로 막춤을 출 엄두는 내지 못하는데, 한편으로 열 번째나 열한 번째로 막춤 대열에 합류할 생각은 조금이라도 있다.


회사 매점에 갔다. 동료 직원과 김밥 한 줄씩 사서 점심으로 먹을 참이었다. 매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출근 시간 만원 지하철 같았다. 아무래도 구내식당 중식 메뉴가 별로인 것 같았다. 괜히 줄을 서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재빨리 목적물만 집어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신용카드를 내미는데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포켓몬 빵 필요하면 가져가세요.” 계산원 말을 듣고 보니 포켓몬 빵 네 개가 계산대에 있었다. 마트에 개장 시간 한참 전에 달려가도, 편의점에 상품 입고 시간에 맞춰 가도 구하기 어렵다는 그 빵이었다. 그건 마치 마트 계산대 옆에 진열된 흔하디흔한 껌이나 초콜릿처럼 나를 보고 있었다.


미디어와 주변 사람들에게 익히 들은 포켓몬 빵이라면, 지금 길게 뻗은 가제트 팔이 어깨너머로, 옆구리로 파고 들어와야 할 터.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음료수나 과자 따위를 고르고 포켓몬 빵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정말로 이곳이 TV 프로그램 속 자연인들이 사는 산속이거나, 하느님이 주일을 지킨 내게 주신 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계산원은 퀴즈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힌트를 주듯 덧붙였다. “이건 신상인데 하나밖에 안 남았어요.”


포켓몬 빵을 찾아 산기슭, 아니 편의점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밥상을 차려놓아도 먹지를 못하는 나를 보면 복장이 터졌을 것이다. 내일모레면 방학이라고 할머니 댁에 오는 조카에게 삼촌 회사 매점에 포켓몬 빵이 임자 없는 빈산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고 말하면 뭐라고 대꾸할까. 아마도 혀를 끌끌 차면서 이렇게 말하겠지. “삼촌, 네 개 다 주머니에 구겨 넣어서 가져왔어야지, 바보야?” 만일 이걸 다 사서 가면 조카는 빵 포장지를 뜯고 스티커만 전리품처럼 챙길 것이다. 인심을 후하게 쓰듯 빵은 삼촌이 먹으라고 덧붙이면서.


그때 웬 여직원의 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귀에 꽂혔다. “우와, 저거 포켓몬 빵 아니야?” 일순간 매점이 웅성거렸다. 회사 직원들을 자연인으로 본 건 대단한 실례고 착각이었다. 실제로 회사 건물이 산을 등지고 배산임수 지형에 자리 잡았으나, 직원들도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대처에 사는 친구들로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매점 데시벨이 한층 높아졌다. 그게 어서 기차에 타라는 역무원의 재촉처럼 들렸다. 더 이상 결정을 늦출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살면서 여러 번 유행이 기차처럼 왔다가 떠났다. 그중에는 오래 머무른 것도 있고 뺨에 바람이 스치듯 지나간 것도 있다. 뒤늦게 기차에 올라탄 걸 후회한 적은 있는데, 다행히 기차역 플랫폼에 혼자 남겨진 적은 없었다.


눈앞의 포켓몬 빵은 하느님이 내려주신 선물이 틀림없을 거라고,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어렸을 적 어른이 주는 용돈은 두 번 사양하고 세 번째에는 못 이기는 척 받는 게 예의라고 배우지 않았는가. 나는 아주 오래전 예수님이 그러했듯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린 다음 계산을 마쳤다. 마치 새로 나온 포켓몬 빵을 축성된 것이라고 제멋대로 여기면서.


사무실에서 동료 직원과 김밥을 먹는데, 아직 식사를 하지 않은 직원이 있어서 매점에서 포켓몬 빵을 사 왔노라 말했다. 그 직원은 이렇게 답했다. “그거, 아직도 구하기 힘든데 운이 좋았네.” 그제야 마지막으로 남은 의심 한 톨마저 말끔히 치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잘 산 것이라고 느낀 거다. 이래서 호박이 넝쿨째 굴러와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면 소용없는 모양이다. 행운이든 기회이든 간에 그걸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현재형일 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과거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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