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관찰의 인문학>을 읽고 쓰다
1. 같은 길을 열두 번 걷기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책 <관찰의 인문학>은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그 말 그대로 저자는 같은 길을, 제각기 다른 파트너와, 열한 번 걸어보는 동안 발견한 다른 세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타이포그라퍼와, 시각장애인과, 음향 엔지니어와, 때로는 자신의 반려견과.
저자가 산책의 동행으로 택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그 덕분에 저자는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매번 다른 것들을 보고 느낀다. 난생처음 주차금지 표지판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비닐봉지 끌리는 소리를 교향악으로 바꿔 듣고, 눈으로 보지 않고도 보는 법을 배운다. 동행과 함께한 열한 번의 산책 후에 저자는 혼자서 열두 번째 산책길에 나선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수천번을 오갔던 자신의 동네가 새로워 보이는 마법을 경험한다.
2. 어쩌면 이런 사소한 것에서 세상이 달라지는지도 몰라
악동뮤지션의 노래는 늘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올해 5월에 발매한 두 번째 앨범 [사춘기(思春記) 上권]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에서 악동뮤지션은 "팔다리가 앞뒤로 막" 움직이는 것을 신기해하고 "생명이란 건 참으로 신비"하다고 감탄한다. "정말 아름다운 건 내가 선 곳에 있는데 미처 발견 못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사소한 것에서')에게 "다소 식상해 보였던 것 안에 혹은 당연한 일상"에서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SBS [K팝스타 2]에서 악동뮤지션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생활밀착형' 가사의 공이 크다. 상대방의 매력을 "다이어트 중 마주친 치킨보다 더"('매력있어') 끌린다고 표현하고, 무기력한 내 일상을 "오늘도 내 점심은 라면인건가"('라면인건가')라는 말로 요약하는 것은 일견 쉬울 것 같아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다 생각해 보는" 것들을 자신들의 언어로 소화해내는 악동뮤지션의 재능이다.
3. 모두가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일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셸 루트번스타인의 공저 <생각의 탄생>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발견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악동뮤지션이 그렇다. 모두가 팔다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걷고, 다이어트 중 마주친 치킨의 유혹에 흔들리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라면을 끓여먹지만, 모두가 그런 경험들을 새로운 무언가로 연결시키지는 못한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모든 사람들이 창작자가 될 필요는 없다. 세상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시선을 보내고, 귀를 기울이다 보면 삶이 조금은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나 역시도 늘상 하던 산책이 오늘부터는 더 즐거울 것 같다. 오늘의 산책 BGM은 악동뮤지션의 노래로. "쉴 틈 없는 달리기에 못 보고 간 꽃들 / 빈틈없는 지하철에서 옮아 온 고뿔 / 어쩌면 이런 사소한 것에서 세상이 달라지는지도 몰라"('사소한 것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주의를 기울이고, ‘바로 지금’에 충실하라는 말이 독자에게 지겨울지도 모르겠다. 현재를 등한시한다고 꾸짖는 것 같아서 압박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같이 걸은 사람들 대다수는 주의 깊게 보는 것의 전문가인데도 자신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자책하기 일쑤였다.
지레 지치지 말기 바란다.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에게는 하나의 기회가 주어졌을 뿐이다. 우리는 부주의를 권장하는 문화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음으로써, 어쩌면 이 책을 읽기로 함으로써, 당신은 자세히 살펴보는 행위에 가치를 두는 새로운 문화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관찰하는 사람의 눈앞에는 하찮은 동시에 굉장한 것들의 어마어마한 지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보라! (339p)
-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관찰의 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