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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니 Feb 08. 2017

가족이라는 말이 가리는 것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을 보고 쓰다

칸이 사랑하는 스타 감독 자비에 돌란의 신작 <단지 세상의 끝> (원제 <Juste la fin du>). 에이즈로 사망한 작가 장뤽 라가르스가 쓴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등장인물은 5명의 가족들이 전부다. 이야기의 주체인 루이(가스파르 울리엘), 어머니(나탈리 베이), 형 앙투안(뱅상 카셀)과 형수 카트린(마리옹 꼬띠아르), 그리고 여동생 쉬잔(레아 세이두). 영화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루이가 가족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12년 만에 집을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12년의 부재, 그리고 3시간의 만남.


단지 세상의 끝 (Juste la fin du monde, 2016)


영화에서 보여지는 루이 가족의 모습은 '가족'이라는 단어에 으레 따라붙는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예를 들자면 사랑, 포근함, 또는 따뜻함 같은 것들. 가족들은 12년 만에 집에 찾아온 루이를 반기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드러나듯 분위기는 묘하게 불편하고 불안하다. 루이에 대한 동경을 내보이는 한편 계속해서 담배를 펴대는 쉬잔, 시종일관 비아냥거리며 열등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앙투안. 음식을 준비하고,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먹는 내내 이루어지는 가족간의 대화는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루이는 그런 가족들 앞에서 말이 없어지고, 가족들 역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단지 세상의 끝>에서, 루이의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의 끝'인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제목이 등장하는 씬인 앙투안과 루이의 대화를 보자. 루이는 앙투안의 차를 타고 가면서, 형과의 관계를 회복해 보려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자격지심에 가득 차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말을 내뱉는 앙투안의 태도에 루이도 지쳐버리고 만다. 갑작스레 태도를 바꿔 집으로 오는 여정에 대해 얘기해보라는 앙투안에게 루이는 말한다. "가는 길이 가깝잖아. 여기가 세상의 끝도 아닌데 왜 그래?" 여기서 '세상의 끝'은 집이 아닌 루이가 앙투안에게, 앙투안이 루이에게 느끼는 심리적 거리다.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한없이 멀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란 밖에서 만나는 타인을 대할 때와 달리 한없이 편안해질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래서 인간관계에 당연히 수반되기 마련인 노력을 가족에게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해나 사랑 같은 것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가족은 말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줄 것이며, 오래 만나지 않아도 변함없이 애틋할 것이라고. 하지만 가족들 역시 나의 가족이기 이전에 개별적인 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며, 'Out of sight, out of mind'는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가족 역시 본질적으로는 나와 다른 타인임을 인지하는 일이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해하겠지, 아껴주겠지, 늘 그 자리에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는, 서로의 본심에 가 닿을 수 없다. 그리고 삶의 어느 순간에는 혈연이라는 끈도 기꺼이 벗어 던져야만 한다. 가족 이전에 개인이 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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