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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니 Mar 06. 2017

법의 존재 이유를 말하다

영화 <재심>을 보고 쓰다

영화 <재심>은 지난 2013년 6월과 2015년 7월에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뤄진 바 있는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다. 이 사건은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발생한 택시 기사 살인 사건으로, 방송은 범인으로 지목된 최모군이 감금, 폭행 등의 강압 수사를 견디지 못하고 허위 자백을 하면서 당시 법정최고형인 15년을 구형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검거된 15세 소년 최모군은 결국 10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오며 청춘을 고스란히 날려버렸다. 


재심 (New Trial, 2016)


사실 <재심>이 딱히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실화 기반의 법정 영화가 벗어나기 어려운 클리셰적인-좋게 말하면 보편적인-작법이 있는데다, <재심>의 경우 그 실화 자체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건이었다. 이러한 전제 조건으로 인한 약점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극복했을지 궁금했는데, 결국 기존 법정 영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영화라는 느낌이었다. 의뢰인의 진실보다 돈이 중요하다던 극중 변호사 이준영(정우)의 변화는 진부한 공식처럼 느껴지고, 백철기 형사(한재영)의 강압 수사를 보여주는 장면은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길고 잦고 적나라하다. 영화적 완성도가 이렇게 아쉽다면, 이미 메이저 시사 프로그램에서 두 차례에 걸쳐 다뤄진 사건을 굳이 끄집어낸 영화 <재심>이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대한민국의 법과 그 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하지만 극중에서 '국가'로 대변되는 경찰, 검사, 판사, 국선 변호사 모두 '개인'인 현우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지도, 보장해주지도 않았다. 극중에서 변호사 이준영과 피해자 조현우(강하늘)는 서로 다른 상대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법이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질문은 사건이 발생한 2000년에도, <그것이 알고싶다>가 사건을 다룬 2013년과 2015년에도, <재심>이 다시 사건을 끄집어낸 2017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재심 (New Trial, 2016)


<재심>의 엔딩에는 기존 법정 영화에서 백이면 백 등장하는 통쾌한 재판 장면이 없다. 10년을 잃어버린 피해자 조현우에게 우리 모두가 사과할 기회를 주러 이 자리에 섰다는 이준영의 대사로 끝이 난다. 극중 변호사의 실제 모델인 박준영 변호사는 <매거진M>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의 엔딩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엔딩이 아쉽다는 분이 있더라고요. 그러데 저는 이 방식이 맞다고 봐요. 실제 사건이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다 끝났다고 생각하시죠? 아니거든요. 진범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고, 범인은 자신이 한 짓을 부인하고 있어요. 최군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끔 만들었던 경찰, 검사, 판사, 국선 변호사, 진범으로 지목된 사람을 풀어 준 검사, 그 누구도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어요. 진행형인 사건을 해피엔딩으로 결론지을 순 없는 거죠.”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다 끝난 게 아니라는 그의 말처럼, 해당 사건을 '사이다썰'로 소비하기 보다는 법과 정의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사건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연출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법이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영화의 답은 "법은 약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자들에겐 서로를 보호해줄 공고한 카르텔도, 사건을 덮고도 남을 재력도 있다. 하지만 약자들에겐 기댈 곳이 없다. 힘 없는 약자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법은 제대로 된 법이 아니고, 그런 법을 가진 국가 역시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다. 그래서 강자들을 견제하고 약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런 목소리들이 모일 때 세상은 조금씩 변화한다. <재심>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목소리 하나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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