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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cYejee Jan 25. 2021

Square Forest

1. 고유의 향, 나만의 향수


신반포 아파트 15차



변하는 몇 가지 요소 중에 거주하는 생활환경이 변하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몸과 마음에게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작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그 두려운 떨림은 적응하기 위해 몸에서 보내는 진동일지 모른다.



태어나서 11년 동안 살았던 나의 첫 번째 동네는 사당동이다.

산을 깎아 만든 그 아파트 단지는 제법 가파른 언덕을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 집을 가려면 한참을 등산하듯 올라가야 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가장 높은 단지에 내리면 온 동네가 내려다보였다.

늦은 봄, 노을 질 무렵 꽃향기가 콧잔등을 간지럽힐 때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 언덕을 올라 집으로 귀가하던 그 때가 향기의 기억으로 떠오르곤 한다. 기억을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포근한 냄새가 후각을 찌르며 심장과 몸이 나른해지는 냄새였다. 그 기억의 향기는 고등학교 1학년 초가을쯤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때 느꼈던 회상이 너무나 강렬해 그 이후로는 그 느낌만 곱씹을 뿐이다.



나무가 빼곡한 동네로 이사를 왔다. 13년,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고향 같은 곳 반포는 건물보다 키 큰 나무들이 장정처럼 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 나무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나가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는 한강을 만날 수 있다. 낡아서 느끼는 몇몇 불편함을 있었지만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어느새 그런 불편함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전 동네와 다르게 학교에 무서운 언니들도 없고 무엇보다 담임 선생님이 너무 좋은 분이었다. 아이들도 알 수 없는 순수함이 있었다. 학교 규모도 전에 다니던 학교보다 작고 학급 수도 적었다. 몇 가지 다른 요소들이 있어서인지 달라진 환경 때문인지 아기자기한 동네에서 난생 처음 이방인의 기분을 느꼈다.


2년 후에 잠시 외국 생활을 했다. 거기서 제대로 이방인이 되었다. 그 전에도 지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 3개월 동안 머문 적은 있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 그것도 13시간의 시차가 나는 곳에 홀로 머물렀던 그 때, 내 적응의 떨림은 작은 진동이 아닌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파도를 잘 타야 한다. 기분과 감정이 몰려오면 휩쓸리지 않게 파도를 잘 타야 한다. 나름 파도를 타며 먼 타국에 홀로 지내고 온 경험은 나에게 훈장처럼 자랑거리였다. 홀로 먼 타지에 가는 일은 덤덤하게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었다. 사실 적응을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걸 커서 알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파도의 기운은 여전했다. 가끔씩 몰아치는 파도가 나와 부모님을 혼란스럽게 했다.

아마 그 시기의 모습은 제대로 사춘기가 온 딸로 비쳤을 거다.



그렇게 10년을 더 그 동네에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고향 같았던 그곳이 그립고 고맙다.  얌전히 지나가 주지 않았던 나의 학창 시절과 짧은 대학생활 동안 휘몰아친 크고 작은 진동들 속에서도 가끔은 슬픔에 잠긴 나를 위로해주었고, 다독여준 곳이기 때문이다. 큰 진동을 경험하고 온 이후에 쭉 한 곳에서 살아온 것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아파트보다도 더 높은 나무들이 빼곡했던 동네는 사계절이 지날 때마다 다른 표정을 지으며 진동하는 나를 잔잔케 했다. 가끔씩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더 이상 그 동네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헤쳐지고 거대한 크레인이 거대한 소음을 내며 서있다. 뿌리 깊이 거대하던 나무들은 사라지고 딱딱한 건물이 자리할 그곳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위로해 주던 곳이 아니다.


사진을 많이 찍어두어 다행이다.










집 앞에 아빠가 심으신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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