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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cYejee Jun 23. 2022

잊혀지지 않을 시절, 나의 고향

(by. 엄마)





초록 때문이었다.

10년을 넘게 사당동에서 살다가 꾸역꾸역 아이들 학업을 핑계 삼아 구반포 작은 아파트로 이사 온 것은.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 반포주공아파트 단지로 진입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눈에 가득 들어차던 그 초록의 나무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서울에 이렇게 자연 그대로인 공간이, 그것도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나무들 속에 푹 파묻힌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게 푸르게 각인된 반포는 어느덧 나에게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전학 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대학을 갔다. 물론 반포에서의 기억은 첫인상처럼 싱그럽거나 좋지만은 않았다.

이사 온 지 얼마지 않아 시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후 지병이 악화되신 시어머니를 갑자기 모시게 되면서 내 삶은 180도 달라졌다. 그 즈음 아이들의 지독한 사춘기까지 시작되었고, 그렇게 반포에서의 내 삶은 육중한 무게를 짊어진 채 시작되었다. 그 이후 나는 두 번의 수술을 하였고, 친정 부모님이 갑작스레 연이어 돌아가셨다. 폭풍 같았던 십여 년의 시간 동안 창밖의 나무는 어김없이 여린 연두색 싹을 틔우고 갈매빛으로 무성해지다가 울긋불긋 물들어 발아래로 떨어지곤 하였다.



세콰이어의 키는 처음보다 한 층이나 웃자랐고 영원할 것처럼 언제나 꼿꼿이 하늘을 향했다. 두 번째 이사했던 집의 커다란 창에는 붉디붉은 단풍잎이 가을마다 불타오르곤 했으며 멧비둘기들이 나지막이 다정하게 서로 노래하곤 했다. 반포를 떠나오기 직전, 당뇨와 신장질환으로 투석까지 하셔야 했던 시어머니는 그곳에서 여생을 마무리하셨다.

그렇게 반포에서 난 사랑하는 사람들과 참 많은 이별을 했다. 그렇게 가슴이 무너질 때마다 나와 걷던 아파트 단지의 모든 길들을 난 잊을 수가 없다. 때마다 짙은 꽃향기로 위로해주고 푸른 바람에 일렁이며 쏟아지던 그 모든 잎새들과 그곳을 지나던 바람. 기억에 남아있는 그 풍경들은 고된 삶 속에 위로였다.

그리고 또 하나 반포가 따스한 고향으로 남게 된 이유는 바로 사람이었다.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에 이어 8개월 만에 엄마가 교통사고로 떠나셨다. 그렇게 가슴 무너지는 상실감으로 허우적거릴 때 날 안아주고 품어준 것은 동네 언니와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곁에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버팀목인지 모른다. 내게는 또 다른 가족이었다.



우리 딸은 유난하게 사춘기를 지나왔다. 나의 기질과는 너무나 다른 그 애를 마주하고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딸이 아슬아슬 줄타기를 할 때마다 내 심장은 수도 없이 떨어져내렸고,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내 안에 갇혀있던 세상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많은 시간 동안,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할 때면  한강으로 뛰쳐나가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렇게 반포에서 나는 내 딸과 함께 성장했다. 그때마다 자기 일처럼 같이 속상해해주고 위로해 주었던 사람들. 서로 속사정 내비치지 않으려 꼭꼭 싸매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지만 내가 알고 있던 이웃들은 속절없이 가슴팍을 풀어 같이 울어주곤 하였다. 오다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한두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들이었고 그것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 불편을 걷어내면 누구나 같은 처지, 같은 아픔을 안고 사는 이웃이었다.

반포가 사라진다고 한다. 벌써부터 ‘공가’라고 써 붙은 을씨년스러운 건물을 마주하면 울컥 슬픔 같은 것이 차오른다. 고향인 원주를 떠나온 후 너무 많이 변해버린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마주하던 느낌이 이랬다. 이제 이 자리엔 말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가공할 만한 키를 가진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겠지만,


나의 반포는 잊히지 않은 그림으로, 고향으로, 노래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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