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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 진 맑을 아 Oct 30. 2023

자주 떠오르는 생각들

반복해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마치 자고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자라나 있는 머리카락과 손톱처럼 말이다. 적어두지 않으면 증발돼버리고 말 기억의 단상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기록과 회고는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니까.


1. '빠름'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느림'은 심각한 결함이다. 상품 배송이 느려도, 식당에서 식사가 늦게 나와도 문제고, 특히 아이의 발달이 늦으면 아주 큰 문제다. 최근 친한 친구의 아들이 또래보다 말이 느려서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기들을 보면서, 모두가 같은 곳에 같은 시간에 도착하길 바라는 것처럼 불가능한 꿈이 있을까 싶다. 누군가는 목적지에 느리게 가닿기도 하고 누군가는 아예 다른 목적지를 향하기도 한다. 인생은 속도전이라니, 슬픈 말이다. 아이들이 비교당하거나 쫓기거나 도태되지 않고 자기 속도대로 자라날 수 있다면 삶을 배워 나가는 일이 한결 기쁠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2.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그저 그런 보통날이야말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날임을 더 깊게 깨달았다. 화려한 형용사로 꾸미지 않아도 충분하다 생각이 드는 문장처럼 살고 싶다. 오늘이 그렇듯이 어제는 그제와 같고 내일은 또 오늘과 같을 것임을 예측 가능한 삶 말이다. 뜻을 이뤄 성공하는 것보다 그 흔적들을 잘 지켜내는 일이 훨씬 더 어렵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뜻을 세운다는 서른 살 '입지'의 나이가 지나서일까? 조금은 철이 든 듯하다.


3. 수도꼭지의 아이러니는 누군가가 씻는 데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졌지만 결코 스스로 씻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수도꼭지를 보며 일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찰을 하곤 한다. 일의 프레임을 나를 중심으로 바꾸기. 모든 상황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통제 불가능한 일은 당연히 있고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런 환경에서 내가 어떤 부분이 힘든지, 어떤 부분은 견딜만한지를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다. 결국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내 것을 만들기 어렵고, 내 것이 없으면 쉽게 고갈된다. 주변에 자기의 속도를 지키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받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흔들어 주고 싶다.


4. 최근 몇 개월은 쉽지 않았다. 돌이켜보며 배운 점도 많았기에 '적응 기간'이라 힘들더라도 진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적응 기간이 끝나면 또 새로운 내가 되어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번 한 달도 쉽지 않았지만 모든 게 내가 '적응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니 마음이 한결 풀렸다. 아무 의미 없는 힘듦이 아니라, 성장하느라, 변화하는 나에게 적응하는 데에 꼭 필요한 시간인 거니까.

앞으로도 어떤 과정 중에 부침을 느낀다면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을 전환해보려고 한다. 하늘이 예쁜 가을날을 만끽하며 말이다.


5. 어릴 적의 나는 꽤 용감했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무수한 '처음'들을 기꺼이 온몸으로 부딪쳤기 때문이다. 용기가 든든하게 차오르면 '처음'에서 오는 두려움은 금방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때 그렇게 넘치던 용기들이 다 사라진 줄 알았다. 어른이 된 지금은 도전 앞에서 너무 오래, 그리고 자주 머뭇거렸다. 눈을 감으면 용기가 샘솟는 대신 넘어야 할 장애물들만 아른거렸다. 다행히 사회생활을 하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극복을 했다. 같은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과 몰입하고 대화를 나누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 스티브 잡스가 그런 말을 했다. 젊은 시절 호기심과 직관에 매료되어했던 경험들, 그 점들을 돌이켜 보니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미래를 내다보며 점을 찍을 수는 없지만, 그 점들이 선으로 이어질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이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면 나는 그들을 만난다. 그러면 마치 게임 속 주인공처럼 용기 게이지가 쭉쭉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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