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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 진 맑을 아 Dec 26. 2023

하얀 눈이 내린 날

1. 잘은 모르지만 철학에 대해 떠드는 건 즐겁다. 자기 전 친구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대해 대화를 하다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건 '생각하는 행위'이고 생각하지 않는 나는 죽음에 수렴하는 걸까로 생각이 귀결된 채 잠에 들었다. 평소에 꿈을 잘 꾸지 않는데 그날따라 꿈을 꾸었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꿈이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정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첫 흰 눈이 내린 그날은 특별함으로 기억된다. 어떠한 마음 위로 내린 하얀 눈은 가사 없는 노래 같았고 몇 없는 진심 같았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최대치가 아닌 가장 작은 단위의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던 밤이 지난 다음날 행복을 떠올려본다.


2. 가을을 보내주기 싫어서 매일 쌀쌀한 공기를 즐기며, 가을 끝자락을 붙들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찬기가 매섭게 도는 겨울이지만 그래도 오늘도 재택근무 출근 시간 전에 짬을 내어 집 앞 산책을 진득이 즐기고 들어왔다. 우리 동네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오래됨에서 자아내는 따뜻함이 있다. 큰 공원이 집 근처에 있는데 바르고 평평한 공간에 다채로운 식물들이 있고 가운데 하천이 흐른다. 가끔씩 분수대를 틀어주었는데, 물방울과 하늘이 함께 보이는 매번 다른 순간들과 잠시 나타나는 무지개가 참 예뻤다. (지금은 겨울이어서 볼 수 없다..) 작게 웃을 수 있는 소소한 행동으로 일상을 채워나가는 기쁨이 있기에 산책은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다. 그게 모여진 애정 어린 시간들로 즐거움이 차곡차곡 쌓여나가니까.


3. 오래도록 갈망하고 기다리는 걸 사자성어로 '오매불망'이라고 한다. 문상훈을 좋아하게 된 지 꽤 되었고 유튜브 콘텐츠에서 보이는 그의 감성 어린 모습을 보며 언젠가는 책이 나오지 않을까 공상하며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그의 책이 출간한다. 지금까지 그가 살아오며 지키고자 했던 신념, 그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극복하고자 했던 의지 등이 페이지 구석구석 담겨 있을 상상을 하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만의 특유의 호흡이 담긴 문장 속에서 그런 절절함이 느껴질 것 같아서 어서 빨리 소장하고 싶다. (아직 예약판매 중이어서 책을 못 받은 게 함정이랄까)


4. 올해 많은 문장이 귀감이 되었지만 그중에 하나를 뽑아보자면, 권준호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 책의 다음의 문장을 말하고 싶다.

'마음이 맞고 서로의 작업을 좋아하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길을 덜 외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피상적인 관계에서 한층 더 깊게 내려가고 싶은 사람들을 감사하게도 직장 내에서 많이 만났다. 우리의 현재는 피어나는 새싹이 가득하지만 이 아름다움이 곧 사라지는 봄 같았으며, 우리의 계절은 마치 청춘 같았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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