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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 Mar 10. 2016

컵 안에 스며든 노을

산문_004

"후......" 길고 낮은 한숨이 들렸다. 카페 창가에 앉아있는 남자가 블루스크린이 뜬 노트북을 쳐다보며 내뱉은 한숨이었다. 남자는 스타일링은 하지 않았지만 잘 정돈되어있던 머리를 헝클었다.


남자는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는지 한참을 푸른 화면을 쳐다보기만 했다. 하루종일 자신에게 안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같은 느낌에 사로잡힌 그는 자연스레 오전에 그녀를 마주쳤던 일을 떠올렸다.


작년까지 만해도 그의 품에서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운 눈웃음을 짓던 그녀가 오늘 들린 서점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하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오늘 가볍게 카디건만 걸치고 나온 것 때문인지 그녀의 차가운 눈빛 때문이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오한에 굳어버려 서점에서 한동안 벗어날 수 없었다.


애써 그녀의 눈빛을 밀어내고 바라본 하늘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기울며 불그스름한 노을이져 창틀을 액자로 멋진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먹통이된 푸른 화면과는 다르게 노을은 발갛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는 산 너머로 해가 숨어버릴 때까지 한참을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테이블로 단정한 로퍼를 신은 여자가 다가와 앉았다. 그녀는 그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이었고 퇴근하려던 차에 노을을 감상하는 남자가 궁금해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여자 답게 능숙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어느새 그는 그녀와 이야기하며 아무것도 먹히지 않은 노트북을 닫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의 테이블에 놓여있던 차가운 컵에 노을이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찰랑' 담겨있던 얼음이 녹으며 봄이 오는 소리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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