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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글로제이 Aug 14. 2018

독을 마실 자유,

필수 불가결한 삶의 진리

     지난주 민도(Mindo, 2018년 새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에 캠핑을 갔다가 산모기 습격을 당했다. 양다리에만 28곳을 물리고 온 몸 곳곳에 10곳 이상을 더 물려서 3일이 지난 지금도 가려움과 사투를 벌이며 알코올, 알로에 등등 온갖 민간요법을 동원하고 있다. 지금도 다리에 알로에 젤을 발라가며 가려움을 참고 있는데, 이미 너무 긁어놔서 아무래도 흉터가 생길 듯하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 모기 물린 다리를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가려워 죽겠노라고 엄살을 피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빠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어딘가에 집중하면 가려움을 잊어버리는 건 정말 인간 두뇌의 신비인 듯. 목사님이신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 자연스럽게 신앙에 대한 얘기로 주제가 흘러간다. 아주 감사하게도 나는 아빠의 신앙, 또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에 많이 공감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빠와의 이런 대화가 참 재미있다. 진리는 하나이기에 매번 대화는 같은 결론으로 끝을 맺지만, 그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통화시간에 우리의 삶을 아우르는 진리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게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오늘 통화는 나의 글쓰기 영감을 자극했다. 

    기독교에 대해서,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무화가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이야기. 이 에피소드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내용이다. 하지만 실로 뱀이 인간에게 한 이야기는 그냥 꼬임이 아니라 진리였다. 선악과를 먹으면 신처럼 선과 악을 깨닫게 된다고. 선악과는 바로 진리다. 진리를 깨닫고 나면 선과 악의 경계선이 없다는 이치를 깨닫게 되고, 그걸 깨달으면 그 자신이 진리, 바로 신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종교에서 뱀은 악.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죄. 이렇게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규정지어 버린다. 그러면 뱀은 단순히 인간이 죄를 짓게 하는 도구에 그친다. 하지만 성경을 아울러 뱀은 예수(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자)를 상징한다. 죄가 있기에 구원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뱀은 인간에게 독을 주기도 하지만 그 독의 해독제 역할을 한다. 참 아이러니하고 비상식적인 비유이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이 이와 꼭 닮아있다. 우리가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독을 해독제 삼아 살아간다. 아주 가깝게는 우리가 아플 때마다 손쉽게 찾는 약이 있다. 겉으로만 보면 약은 치료제로 쓰여 몸에 좋은 것 같지만, 사실 약은 독이다. 독으로 독을 이기는 것이다. 양약이든 한약이든 약을 공부한 사람들은 약도 독이며 과다 섭취하면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모든 약은 크든 작든 부작용이 있다. 내가 다리에 바른 알로에도 마냥 몸에 좋을 것만 같지만 사실 알로에의 세정 및 치유 성분 또한 덥고 건조한 사막에서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며 만들어낸 독이다. 알로에도 고농축 고함량을 섭취하면 인간에게 해가 된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실패를 하고 일어나면서 우리는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물론 실패를 성장의 거름으로 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실패라는 독이 없다면 어떨까? 외로움, 좌절, 낮은 자존감,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라는 독이 없다면? 우리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그 어떤 해충이나 궂은 날씨도 견뎌내지 못하는, 물 한 방울에 녹아버리는 셀로판지 인형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우리는 독으로 독을 이겨낸다. 매일매일의 삶에서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고독을 통해 내면이 단단해진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고독해보지 않은 사람과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의 사고는 인간과 원숭이만큼이나 다르다. 지금 당신의 삶이 외롭고 고단하다면 그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성장을 통해 진리의 깨우침이라는 달콤한 열매에 다다를 수 있다. 물론 고난을 겪을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깨우치는 것을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고단한 삶으로 인해 더 비관적이고 악해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얼마나 쉽게 찾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이는 선악과 이야기를 악과 죄의 이분법으로 오해하는 사람들, 독을 독으로만 받아들이고 이를 해독제, 구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의 결론이 아닐까. 뱀을 통해 진리를 깨우치면 인생의 모든 사건이 해독제가 되고 뱀을 죄의 근원으로만 보면 인생의 모든 사건이 독이 되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독교인도, 종교인도 아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라벨링 하지 않는다. 단지 진리를 깨우치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당신의 삶이 허전하고 목적을 찾지 못하고 방향을 상실한 것 같다면, 한 번쯤 깊이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자유로운가. 


    우리는 진리를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가 속한 사회가 규정해준 윤리, 도덕과 외부의 인정을 통해 나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준이 되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진리, 곧 자유를 외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독을 마실 자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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