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아... 아니생치소이틀 차
생활치료센터의 하룻밤이 지났다.
바스락바스락 비닐 소리가 나는 침대에서 수십 번을 뒤척이고 나서야 아침이 됐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불과 담요는 출소, 아니 퇴실 후 모두 폐기된다고 들었는데, 침대는 폐기할 수 없으니 구매 시 포장돼 온 비닐을 그대로 사용하고 그 위에 침대보를 덮어서 쓰게 했다. 그래서 몸을 뒤척일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비닐 소리가 났다. 아마 평소의 나였다면 소리 따위 상관하지 않고 잠에 들었을 텐데, 아직 시차 적응이 안되서인지 유독 새벽에 여러 번 깼다.
6시 30분쯤 아침식사 배급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제도 느꼈지만 8개 국어로 전달되는 방송은 정말 길게 느껴진다. 지금부터 아침 도시락이 제공되니 절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내용의 방송. 우리가 문을 일찍 열어서 배식 담당자와 마주치면 그분이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차를 두고 비대면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취지는 정말 좋고,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게 참 대단하기도 한데, 아무 증상이 없이 갇혀 있는 기분을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방송시간이 여간 길게 느껴지는 게 아니다.
아침 식사로 전복죽, 아몬드 후레이크, 우유, 소프트 밀크 파운드 등이 나왔다. 나쁘지 않은 퀄리티다. 사실 들어오기 전에 읽은 후기에 시설과 음식이 너무 안 좋아 힘들었다는 글을 봤는데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지 싶다. 양도 많아서 어제저녁 식사부터 남긴 후식들이 벌써 침대 옆 선반의 반을 채웠다. 이 정도면 나갈 때까지 차곡차곡 모으면 두 박스는 될 듯싶은데, 내 손이 닿은 물건들은 다 폐기 처분된다고 생각하니 무슨 마이너스의 손이 된 기분.
음식들아 다 먹어주지 못해 미안해. 내 의도가 아니었어...
일주일 전만 해도 10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길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네다섯은 만날 수 있는 곳에 살다가 채 뜯지도 않고 폐기될 식품들을 보니 맘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우리 집 골목에서 항상 구걸하던 그 베네수엘라 가족들 이 거 주면 좋아할 텐데... 참, 세상은 아이러니 투성이구나.
우리는 여기서 하루 네 번 문을 열 수 있다. 식사 시간 세 번과 저녁 7시 쓰레기를 내놓을 때 한 번. 그때도 문만 살짝 열었다 닫아야 하고 절대 복도로 나가면 안 된다. 누군가 오전에 복도에 나갔는지 전체 안내방송을 통해서 외국인 이름을 부르며 다시 들어가라는 방송이 나왔다. "지켜보고 있다..."의 느낌 정도.
다행히 일을 진행 주시는 분들과 우리 건강을 관리해주시는 간호사분들은 아주 친절하시다. 아침과 오후에 한 번씩 혈압, 체온, 맥박, 산소포화도를 측정해서 어플에 올려야 하는데 가끔씩 카톡으로 간호사님이 연락을 하셔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혹시 다른 증상이 있진 않은지 세세하게 챙겨주신다. 내 잘못은 아닌 거 같은데 나 때문에 괜히 고생하시는 것 같아 고맙고 미안해서 계속 카톡에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더니, 카톡에서 죄송하단 말을 금지당했다. 얼마나 친절한가. 이런 인간미가 있어서 정말 외롭고 괴로울 수 있는 격리였는데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아... 쓰레기 내놓으라고 방송이 나오네...
"블라블라 블라블라~~ 쓰바 씨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