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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당동붓다 Jun 11. 2021

예쁘다는 말

내가 20살이 넘어서까지 우리 엄마는 늘 자기 전에 내 눈썹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내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우리 딸은 쌍꺼풀이 없는 밀레니엄 스타일로 세련되게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네가 태어나니까 엄마가 바라던 대로 너무너무 예쁘게 생긴 거야. 너는 눈도 너무 예쁘고, 아빠를 닮아 코도 너무 예쁘고, 엄마를 닮은 입도 너무 예쁘고, 눈썹도 너무너무 예뻐."

엄마는 정말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듯이 매일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너무너무 예쁘다고 얘기해주었고, 종종 사랑이 가득 담긴 손으로 엄마가 아끼는 크림을 듬뿍 내 얼굴에 발라주었다.


나는 그렇게 컸다.


엄마가 그렇게 얘기해준 덕에, 나는 정말 내가 그렇게 예쁘다고 믿고 컸다.  지인들은 대부분 알지만, 우리 엄마는 정말 미인이시다. 신부가 주인공이라고 불리는  결혼식에서조차  친구들은 모두 ", 어머님 진짜 예쁘시다." 입을 모아 얘기했다. 남들이 보기에도 정말 예쁘게 생긴 우리 엄마가 내가 예쁘다고 말해주었으니까 나는 그것을 철석같이 믿으며 자랐다. 예쁘게 생긴 사람은 세상에 너무나 많으니까, '쟤는 나보다 예쁘네.' 라며 부러워하거나 주눅  법도 한데, 되돌아보면 비교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엄마가 예쁘다고   눈이 좋았고, 아빠를 닮은 코도 너무 좋았다. 부처님 같은  귀도 좋았다. 어렸을 때는  옆에 점이 하나 있었는데, 초등학교 시절 내내 친구들이 점마담이라고  년을 놀려대서  점을 빼는 시술을 받았다. 상처가 반쯤 아물었을 , 담임선생님이 초콜릿 묻었다며  옆에 아물던 딱지를 떼는 바람에 점은 반만 빠졌다. 심지어 나는 반쪽짜리  점까지 좋아했다. 청첩장 드리려고 만난 아빠 친구 의사 아저씨가 새로운 기계가 들어왔다며 갑자기  점을 빼기 전까지.


나는 나를 너무나 예뻐해 주는 우리 엄마 덕에 나를 예뻐해 주며 자랐다. 거울을 보며 쌍꺼풀을 눈에 그려보거나 코를 오뚝하게 세워본 적도 없다. 나는 내가 좋았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엄마가, 내 우주인 우리 엄마가 나를 그렇게 예쁘다고 매일 지겹도록 말해주니까.


딸이 생긴 지금, 나는 매일 자기 전 우리 딸의 눈썹을 만지며 네 눈이 얼마나 예쁜지, 네 코가 얼마나 예쁜지, 네 입술이 얼마나 예쁜지 이야기하고 있다. 길게 쭉 뻗은 다리와 작고 귀여운 손가락과 늘씬한 몸, 그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너의 온몸 구석구석이 너무나 예쁘다고 얘기해주고 있다. 외모에 자신감을 갖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자존감을 높이려고 하는 말도 아니다. 정말 예뻐서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우리 엄마가 말한 그 '예쁘다'는 말이 단순히 외모가 아름다워서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았다. 말로는 설명이 안되게 너무나 아름답고 귀하다는 말을, 너무나 소중하다는 말을 예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난 작고 통통한 볼을 쓰다듬으며 느낄 수 있는 이 행복이, 나에게 와준 너라는 존재의 소중함과 벅찬 마음이 예쁘다는 말로 그저 조금 삐져나오는 것뿐이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늘 아이를 보며 아침이고 저녁이고 "동아야. 너 진짜 너무 예쁘다." 고 말한다. 아이에게 말하려고 한다기보다, 그냥 터져 나온다는 느낌에 가깝다. 오늘 아침도 우리는 등교 준비하는 내 아이의 눈부심에 감격하여, "동아야. 너 진짜 너무 예쁘다."며 감탄했다. 아이는 지겹다는 듯, 대꾸도 안 하고 머리를 빗으며 등교 준비를 했다.


내 딸은 그렇게 크고 있다.

엄마가 나를 그렇게 예뻐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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