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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연 Mar 30. 2016

자연스러운 인생 -3-

나는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대로 미소지어 보았다



겨울이 지나면서 가게의 매출은 더 감소했다. 순댓국은 날씨가 추울수록 장사가 잘 되는 음식이었지만 이러다가 가게의 문을 닫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 어머니가 계실 적에는 그나마 장사가 잘 되었지만 돌아가신 후로는 단골손님들이 준 것도 같았다. 어머니의 비법 그대로 장사를 했지만 손님들은 어쩐지 맛이 바뀐 것 같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불행해, 불행해, 내 팔자야. 어머니는 틈만 나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말없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화를 내거나 싸우지 않았다. 단지 서로의 책임을 통감하고 자리를 피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가게 일을 도왔지만 거동이 불편해 서빙이나 주방 일을 하지는 못했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카운터에서 돈을 계산하거나 오가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었다. 아버지는 종일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 아버지는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저 놈들은 뭐가 그렇게 웃기다고 저들끼리 웃는 거냐. 실없는 웃음에는 비관이 어려 있었지만 아버지는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점심 손님이 나가고 가게가 비자 나는 허리를 펴고 앉았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교정은 가장 어려운 수업이었다. 바른 자세는 지구력을 요했다. 꼿꼿한 자세를 편안해하는 사람이 있었나. 가게는 좌식이었다. 나는 손님 중에 허리를 펴고 앉은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자연스러운 자세란, 허리를 구부린 자세였다. 순댓국을 먹으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다. 그들은 직장과 상사를 욕하며, 넥타이를 푸르며, 때론 뒤늦게 도착한 상사를 향해 허리를 구부렸다. 구부정한 허리는 축 처지는 어깨를 동반했다. 나는 그 자세야말로 안정적이고 편안하다고 느꼈다. 나는 아버지가 틀어놓은 예능 프로그램을 바라보며 제한시간이 빨리 가길 바랐다. 똑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니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어머니는 손님들에게 어떻게 대했었나. 가게에서도 이런 자세로 미소를 지으며 명확한 발성과 발음으로 말을 하면 손님들이 좋아할까.      




사건에 대해 먼저 안 건 Y였다. Y의 오지랖은 책을 읽어주려는 고집만큼이나 잘 고쳐지지 않았다.

“오빠, 경찰서라는데?”

Y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휴대폰을 내밀었다. 

“야, 내 전화를 네가 왜 받아.”

나는 Y의 손에서 내 휴대폰을 낚아챘다. 

경찰이 맞았다. 경찰은 내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사용되었고, 따라서 내가 불법적인 거래에 가담했는지 여부를 조사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 전화를 받고 확인한 통장에는 오백만원이 들어왔다가 나간 기록이 남아있었다. 원장은 며칠 전 본사의 정책으로 수업의 시간과 구성이 바뀌었다는 점과 출석율이 좋아 학원비의 일부를 돌려주게 된 점을 들며 내 통장번호를 요구했다. 입금이 되었는지 확인이 필요하므로 건물 일층 편의점의 ATM기계에서 영수증을 뽑아 바로 지참해 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는 원장의 미소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카드의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면, 사기같은 건 당하지 않을 줄 알았다. 기계에 체크카드를 넣고 얼마의 현금이 들어왔는지 확인하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나. 발성과 발음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나, 넥타이를 살까 고민했나, 가게의 매출을 걱정했나. 정말 나는 바보같이 아무런 의심을 못했나. 

 내 신분은 이미 피의자로 낙인 찍혀 있었다. 당분간 은행 거래도 중지되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Y의 주장에도 경찰은 단호했다. 경찰은 단호함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어쨌건 지시대로 행동해 주세요. 아니면 아닌 걸로 밝혀지겠죠.”

경찰은 컴퓨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나는 경찰의 흐리멍덩한 발음이 거슬렸다. 은근히 권위를 내세우는 말투였다. 경찰은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 못내 귀찮다는 듯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요즘 맨날 뉴스에서도 ATM 조심하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복제기 붙여놓고 카드 다 읽는다고요.” 

나는 영수증을 받아들던 원장을 떠올렸다. 원장은 미소와 자세와 발성과 발음을 보고 나를 알아차렸던 걸까. 내가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고 말았던 걸까. 이십대 중후반의 여자들과 정장을 입은 남자들도 원장의 미소에 속아 ATM기계에 카드와 통장을 넣었을까. 아니면 나에게만 온 불행일까.  

“오빠같은 사람이 무슨 사기야, 사기는.”

Y는 경찰서를 나오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쏘아붙였다. 

“오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퍼스트스마일 아카데미가 다 뭐냐고.” 

나는 구치소에 갇힌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오빠!”

고개를 들어 Y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뭐냐니까.”

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Y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Y가 내 방에 와서 굳이 싫다는 나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선물이랍시고 놓고 갔고, 내가 우연히 펼쳐보게 되었고, 전단지를, 전단지는 왜 하필 그 책 틈으로 들어간 건지, 아니 애초에 Y는 거절하면 될 전단지를, 길에서 허구한 날 나누어주는 그 전단지를 왜 받았는지, 나는 왜 퍼스트스마일 아카데미를 등록했는지, 원장은, 씨발, 강사들은 왜 그렇게 예뻤는지. 

화풀이를 하려는데 Y가 갑자기 나를 안았다. 

“알겠어. 물어보지 않을게. 사정이 있었겠지. 난 오빠 믿어.”

나는 Y를 밀어냈다. 

“넌, 내가 웃으면 어때?”

화 대신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Y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오빠 웃을 때, 웃을 때?” 

“그래. 웃을 때.”

“잠깐만. 웃어봐.” 

“잘 생각해 봐.” 

“웃는 모습이 기억이 잘 안나.”

“됐어.”

피곤했다. Y는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데에는 한 달이 걸렸다. 나는 그동안 순순히 경찰이 하라는 지시대로 응했다. 연락이 오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돌아가라고 하면 낡은 집으로, 또 가게로 돌아갔다. 생활은 똑같이 흘러갔다. 가게의 매출은 평균으로 돌아왔지만 또다시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원장은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검찰에 송치되는 내내 원장은 고개를 숙이고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장의 전적은 화려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몇 차례 카드나 통장의 정보를 빼내 사기를 쳐온 사람이었다. 사기의 이름이 돌고 돌다가 퍼스트스마일 아카데미가 되었을 때 내가 걸리고 만 것이었다. 피해자는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덕분에 피의자 신분도 수월하게 벗겨졌다. 아카데미 수강생들이 뭉쳐 적극적으로 본인들을 변호했고, 나도 따라서 합세했다. 수강생들은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긍정 언어를 사용해가며 자신들이 부정한 사람이 아님을 증명했다.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세요.”

조사가 끝나고 마침내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던 날, 담당 경찰이 말했다. 

“세상 살다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도 잘 해결됐으니 다행이죠.”

Y는 경찰서를 나오는 나의 등을 토닥였다. 

“오빠 잘못 아닌 줄 알았어. 난 오빠 믿는다고 했잖아.” 

Y의 웃음은 예뻤다. 퍼스트스마일 아카데미 원장보다도, 미소전담, 자세교정전담, 발음과 발성교정전담 강사보다도. 나는 Y의 매력은 보면 볼수록 예쁜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Y를 꼭 껴안았다. Y의 글래머러스한 가슴이 푹신했다. 문득 Y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Y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므로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넥타이를 매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고작 순댓국을 파는 사람이라고 해도, 종일 사골을 고는 일에 시간을 쏟고 책같은 건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돌이켜보면 Y의 잔소리에는 언제나 뼈가 있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왜 자꾸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내가 잘할게.”

“오빠는, 진짜 웃는 게 스폰지밥을 닮았어.” 

Y가 내 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나는 불행하게 태어났나. 나도 아버지처럼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며 실없이 웃는 사람이 될까. 불운은 자연스럽게 왔다가 자연스럽게 가는 걸까. 나는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대로 미소 지어 보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제법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Drawing by SEY CHRISTIN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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