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향 Jan 13. 2021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

2019년 3월의 기록

  우리는 같이 있는 동안 누구보다 교감했다. 서로 눈을 마주하며 사소하고 매일 반복되는 이야기를 재밌게 나눴다. 하지만 시간이 짧았다. 남들보다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기에 자주 화를 내며 다퉜다.



  아침에 등원 셔틀 시간이 다됐는데 율이는 또 길바닥에 드러누우며 버텼다. 할 수 없이 솔이만 들고뛰었다. 뒤늦게 선생님이 뛰어와 도와주셨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혀를 차며 "이놈! 너희 엄마 힘들어서 죽는다!" 하고 혼을 냈다.
  낮에 일을 하는데 율이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아이가 오래 잘 버텼네요. 다른 아이들 같으면 더 힘들어했을 거예요. 어머니, 많이 바쁘셨어요?"


  선생님이 질책했다. 아파서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했구나. 또 미안하다.



  핑계가 아니라 바쁜 건 사실이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만 많아지는 게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 전에 없던 역할이 생겨 몸만 힘든 게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없고 조바심이 났다.

  "아프니까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율이가 말했다. 율이가 낮잠에서 깼을 때 선생님은 "오늘은 엄마가 일찍 오실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옷을 입고 책가방을 메고 한참이 지나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좋아서 방방 뛰던 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침울해졌다고 했다.

  눈물이 날 만큼 고단한 날이었다. 아프지 않고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즐겁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참을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쳤다.



  돌이켜보면 행복했던 순간이 더 많지만 때때로 가슴을 칠 만큼 슬픈 일도 있었다.
  베이비시터도 할머니도 없는 맞벌이 육아가 미치도록 힘들었던 시간 동안 우리여서 경험할 수 있는 날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언젠가는 웃으며 이야기할 날이 올 거라던 희망도 조금은 보이는 요즘이다. 2년 전의 일기를 보며 웃음이 나는 걸 보면 말이다.
  율이의 꿈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아픈 마음을 갖지 않고 행복한 것이라고 했다. 나도 그런 꿈을 가져봐야겠다. 다시 2년 후엔 우린 어떤 모습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만나는 하루 세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