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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바보들

오늘 나는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살았을까?

by Saul

인공지능의 시대다.
이제 직장에서는 AI로 업무를 효율화하고, 뭔가 궁금하거나 과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AI에게 묻는다.
질문 하나만 던지면 제법 잘 정리된 답변이 나오고, 그걸 살짝 편집해서 마치 내 생각인 양 활용한다.


세상 모두가 쉽게 ‘지능인’이 될 수 있는 시대.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똑똑해진다고 해서 모두가 ‘지성인’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지성인'은 점점 더 줄어들고, 귀해지는 것 같다.


AI는 지능적인 사고는 도와줄 수 있어도, 지성적인 사고, '사유'는 대신해줄 수 없다.
AI가 내놓는 답변은 종종 놀라울 정도다. 내가 하루 종일 고민해야 나올까 말까 한 결론을, 몇 초, 길어야 몇 분 만에 뽑아낸다. 하지만 아무리 수준 높은 답을 받아도, 그것을 읽었다고 해서, PDF로 저장해두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내 것’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내가 했고 내가 얻은 답이고 내가 만든 자료이기 때문에 '내 것'이라고 착각 속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예전엔 하나의 물음표를 해결하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났다. 책을 읽고, 질문을 붙잡고,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을 통과해야 비로소 느낌표 하나를 얻었다. 이제는 물음표 하나를 던지면 몇 초 만에 마침표들이 쏟아진다.

호기심과 탐구의 여정은 사라지고, 단기 기억에만 머무는 '정답'들이 남는다.

뒤따르는 추가 질문조차도, 좀 더 쓸만한 답,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한 검색일 뿐, 더 깊은 사유를 하는 과정은 아니다. 그저 정보의 레이어를 더하는 것일 뿐, 의미는 점점 엷어진다.


요즘엔 유튜브에 있는 긴 영상 하나를 끝까지 보기조차 버겁다. 책 한 권을 완독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나도 이런데 하물며 내 아이들은 오죽할까. 유튜브와 게임 속에 있고, 사유하는 법을 배울 기회조차 없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도 숙제를 챗지피티로 한다. 생각은 점점 더 수동적이 되고, 질문은 클릭 한 번짜리 습관이 되어간다.


지금 세상은 '어떤 인공지능이 더 똑똑한가', '누가 더 지능적으로 일하는가'를 경쟁한다.
인간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어디까지 게을러질 수 있는지 실험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서 앞으로 내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 그것이 고민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오늘도 쉽게 무너진다.


왜냐고?

그 질문조차, AI에게 묻고 있으니까...

사유가 귀찮아서...

한심한 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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