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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루가 Mar 31. 2016

#3.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밥

파슈파티나트 화장터 아이들의 삶과 죽음



이곳 화장터에서는 그래도 밥을 굶어 죽는 일은 없어요.  

 


죽을 만큼 배가 고플 때쯤 운 좋게도  죽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제사를 올리려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덕분에 화장터 여기저기에 음식들이 차려지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차례를 기다려야만 해요. 까마귀나 개가 먼저 고기나 음식을 물어 가고 그다음에 뿌자와 내가 출동하죠.

죽은 사람이 까마귀나 개로 다시 태어났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음식을 차린 가족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까마귀가 음식을 물어 가면 우리 엄마가 까마귀가 되셨나 보다 하거나, 개가 물어 가면 우리 아빠가 개로 다시 태어나셨구나 하고 생각하지요.

뿌자는 고작 네 살이지만 먹는 건 어른만큼 많이 먹어요. 밥을 제 때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목구멍 가득 터지도록 음식을 밀어 넣어요. 그래서 늘 주의를 주어야만 하죠. 하지만 한번 먹어대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힘든가 봐요. 이번 제사 때 얻은 수확물은 삶은 계란, 바나나 잎으로 만든 그릇에 담겨있는 갓 지은 밥, 닭고기, 사과 등 우리가 흔히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죠.

뿌자 녀석.. 커다란 삶은 계란을 한 입에 넣어버리는 네 살짜리 여자애를 본 적이 있나요?

결국 숨이 안 쉬어질 만큼 먹은 후 탈이 내버려 토악질을 하고 눈물을 찔끔 흘리고는 사과에 또 손을 대네요. 미련한 녀석!!

하지만 이런 기회가 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획득한 음식들을 아지트에 몰래 숨겨두고 엄마를 찾아 식사를 할 수 있게 나누어 드리거나 조금씩 아껴가며 먹는 답니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때론 슬픈 일인 것 같아요.

플라스틱 통에 종일 모으는 동전들이 어느 정도 채워져야 식당에 갈 수 있는데 15 루피면 쌀밥에 묽은 커리 국물을 뿌린 밥을 먹을 수 있죠.

그런데 가끔 1루피가 모자라서 몇 시간씩 물속을 헤집고 다녀야 할 때면 아주 미치겠어요. 그런 날은 이상하게도 동전이 낚이질 않으니까 말이죠.

동전 낚시는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커다란 자석에 노끈을 묶어서 강바닥에 던져서 휘 저어 대면 쇠로 만든 동전이 자석에 달라붙게 되는 거죠... 간단해 보이지만 동전 낚시는 그리 쉬운 게 아니에요.



동전 낚시는 주로 물이 차가워진 가을이나 겨울, 헤엄을 칠 수 없는 계절에 하는데 보통 화장한 재를 뿌린 곳에 아이들이 한꺼번에 자석을 던지기 때문에 서로 주먹다짐을 하게 되는 일도 많기 때문 이죠.

고작 모자란 1루피 때문에 화장터를 몇 시간째 오르락내리락할 때는 배가 고프다는 게 때론 비참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밥을 먹어야만 이 허기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가끔 슬플 때가 있어요.


배가 든든해진 뿌자가 돌계단 위에서 잠이 들었어요. 가끔 뿌자가 이렇게 옆에서 잠이 들어 있을 때면 동생이 깨기 전에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 생각은 요즘 들어 자주 떠오르고 정말로 몇 시간 정도 잠든 아이를 두고 신나게 돌아다니다 올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돌아다니다 와보면 녀석은 눈물과 때 구정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달려와서는 주먹으로 나를 마구 때린 답니다.

밥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때릴 때 녀석의 주먹은 네 살짜리 여자아이의 주먹맛이 아니에요.

하지만 꼭 밥을 많이 먹어서만도 아닌 듯 느껴질 때가 있어요.

뿌자의 주먹에는 단단하게 뭉쳐진 슬픔 같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두들겨 맞을 때면 아픔보다 아릿한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해요.





커다란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지기를 할 때면 절로 한숨만 나와요.

뿌자도 자라면 나처럼 혹은 형처럼, 아니 더 운이 나쁘면 엄마처럼 되어버릴 까 봐...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겠죠. 이곳에서의 삶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말이죠.

밥이 솟아나는 그릇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침, 점심, 저녁때마다 배고픈 시간이 되면 저절로 채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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