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자취방. 20대뿐 아니라 이제 많은 세대(?)를 대변하는 공간 중 한 곳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에게 집은 ‘내 방’이란 명사로 불리고 있다. 고향 집이 아닌 서울에서 머무르는 공간은 나 한 명이 살기 딱 적당한 크기로 내 20대 중반~30대 초반까지의 삶이 담겼다.
얼마 되지 않는 공간이지만 온종일 일하고 밖에서 지쳤던 몸과 마음이 쉬기에는 편안한 장소이다. 한참 취업 준비, 시험 준비를 할 때는 사방이 막힌 이곳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샀던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마치 감옥이란 말이 ‘내 방’인 것처럼 심적으로 지쳤을 때 고른 책이다.
작가 신영복 선생님 이름은 다른 유명한 저서로도 익히 들어왔다. 그러면서 대표작으로 이 책을 엄마에게 꾸준히 추천받았던 거 같다. 선생님은 60년대에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동안 교도소에 복역한 진보 지식인으로, 당시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묶여 만들어진 산문집이 바로 이 책이다.
아무래도 무기 징역형을 받고 감옥에서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내보낸 거라 지금 배부르고 등 따숩게 누운 내가 고뇌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았다. 왜 그런가 보니 지금 세대는 굳이 감옥에 들어가지 않아도 눈에 안 보이는 저마다의 감옥을 갖고 살아서 그런가 싶었다.
27page / 고독하다는 뜻은 한마디로 외롭다는 것, 즉 혼자라는 느낌이다. 이것은 하나의 ‘느낌’이다. 객관적 상황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주관적 감정의 어떤 상태를 가리킨다. 자신이 혼자임을 느끼게 되는 것은 반드시 타인이 없는 상태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갖는 감정이다.
우리나라에서 단체 생활보다 ‘홀로’ 생활이 어느 때보다 많아진 요즘이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만 해도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외로움 > 고독 > 혼자 생활을 즐기는 단계까지 올라간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372page / 새장 속에 거울을 넣어주면 새가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이 단계를 스스로 잘 극복했다고 여기는 이유는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넘어간 후, 나는 혼자 놀면서도 심심할 틈이 없는데 지인 중 보면 고독에서 우울함으로 고꾸라치는 경우를 종종 봐서이다. 그런 경우, 매일 자기만의 감옥 속에서 괴로워하고 종일 SNS만 한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남부러운 직장과 외모, 평온한 가정환경까지 다 갖춰졌는데도 그러는 걸 보고 아이러니했다.
28page / 그 조각난 개개인으로 하여금 ‘흩어져’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 누가 그러한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면 나는 아마 ‘사유’(私有)라는 답변을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책을 읽던 당시 이 말은 나에게 굉장히 강렬했다. ‘사유’가 무엇인지 딱히 생각 안 하고 살았는데 아마 이런 종류의 책을 지속적으로 읽고 괴로웠던 그 시절을 이겨내면서 사유하는 힘이 단단해졌던 모양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문장은 물론 감옥 안에서의 생활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내 생활을 돌이켜보게 했다. 그 안에서 만들어진 선생님의 ‘사유’를 읽다 보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올바로 생각하는 법을 알게 해주었다.
47page /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인생이 작은 행복에도 환하게 빛나진다는 것은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이나 내 속의 감옥에서도 똑같은 이치였던 모양이다.
59page / 과거가 가장 찬란하게 미화되는 곳이 아마 감옥일 것입니다. 감옥에는 과거가 각박한 사람이 드뭅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내가 사는 장소는 또 어딘가로 바뀔 텐데 그게 어디든 언제가 되었든 중요한 건 내 자신의 존재라는 걸 느꼈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유엔 연설에서 강조한 메시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요’다.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나도 계속 내 존재를 되뇌면 훗날 어떤 사람이 되어있진 않을까 싶다. 아래 문장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277ppage / 제가 징역 초년,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생각의 녹을 상대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생각을 녹슬지 않게 간수하기 위해서는 앉아서 녹을 닦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키워나가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요컨대 일어서서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메인 사진 : 달 같은 조명, 경주 카페 야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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