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성장시킨 것들은.
'빨간 구두'라는 동화가 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허영심이 많았다. 여자아이는 특별히 빨간 구두를 갖고 싶어 했다. 어느 날 마법사의 마술로 빨간 구두를 갖게 되었고, 다들 예쁘다며 부러워하였다. 이에 우쭐해서 평소에는 물론 교회에도 그 구두를 신고 갔는데 뒤에서 다들 수군수군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몸져눕게 되었다. 사치만 좋아하던 여자아이는 할머니를 돌볼 생각도 하지 않고 놀러 다녔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구두를 벗으려고 해도 벗을 수가 없었고, 계속해서 춤만 추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동화에는 헛된 욕망에 대한 경계가 들어있다. 헛된 욕망은 특히 '헛된 부러움'을 나타낸다.
나도 한때는 빨간 구두를 욕망한 적이 있다. 교대 졸업 후 초등교사로 발령받았을 때였다. 그곳은 깡촌에 있었다. 처음 발령받고 학교로 인사하러 간 날, 교장선생님께선 나를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당시 내 모습은 그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총집합이었다. 즉 머리는 허리까지 길러서 그 당시 유행하던 뿌리파마를 하고, 옷은 목이 시원하게 파인 짧은 원피스, 반짝이는 까만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 특히 구두가 압권이었다. 즉 욕망의 심벌인 아주 아주 새빨간, 유광 에나멜의, 굽이 아주 높은, 앞코가 뾰족한 구두였던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명동에서 산 거였다.
그 착장으로 인해 첫인상이 나빴나 보다. 한동안 학교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중에 가서 말하길 내 기가 너무 세 보여서 그랬다고 한다.
그 구두는 발이 몹시 불편했다. 무엇보다 동네 길이 문제였다. 시골 논두렁을 걸어 학교로 출근하려면 말이다. 뾰족한 구두굽이 질척한 땅에 푹푹 파여서 이내 갖다 버리게 되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 후로 빨간 구두를 사지 않았다. 대신 다른 방식의 '빨간 구두'들을 수없이 욕망하고, 사고, 버렸다. 버리고 나서 드는 생각은 늘 그것이었다. 내가 이것 때문에 그렇게 기를 썼나 하는 '허탈함'.
이제 어느덧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하는 나이가 되었다. 구두를 고를 땐 뭐니 뭐니 해도 발이 편한 구두, 아니 운동화나 단화를 찾는다.
지난날을 돌이켜 본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사건이나 사람들을. 그중에서 나를 조금이라도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준 것은 무엇이었나.
유복한 어린 시절, 떵떵거리고 살 정도의 돈, 뛰어난 지능, 나를 공주처럼 떠받드는 남편, 직장에서 무슨 일이든 척척 하는 센스. 이들은 내 몫이 아니었다. '그것'이 없어서 늘 맨몸으로 아등바등했고, 그 시간들이 쌓여서 나는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
그 분투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적어도 금지약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건 소풍날보다 소풍 가기 전날이 더 행복했던 기억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허탈함을 느끼기엔 아직 모든 게 부족해서다. 잔을 가득 채운 뒤에는 더 이상 주전자가 필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