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이야기를 듣다 보면 믿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온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통조림등으로 만든 부대찌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미군부대 음식 찌꺼기를 활용한 찌개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김형석교수님이 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군들이 먹던 음식에서 이쑤시개, 담배꽁초등이 나오곤 했는데 미군부대를 찾아가서 개선되었다는 이야기다.
먹는데 진심이라 '먹방'을 만든 우리나라 이야기다.가난하던 시절에는 그렇게라도 해서 먹고 살았다. 그 음식, 즉 이것저것 넣어서 끓여 먹는 걸 '찌개'라고 한다. 온갖 것들을 넣어도 결국 개성 있는 맛을 낼 줄 아는 신기한 음식, 그 음식은 여러 가지를 넣고 오래 끓여야만 제맛이 난다.
장을 보지 않아서 냉장고에 먹을 게 없었다. 특히 찌개거리로 마땅한 재료가 없었는데, 냉동고에서 오징어를 겨우 찾아냈다. 싱싱하진 않았지만 오징어찌개를 끓이면 되겠구나 했다. 식구들이 집에 오기까지 이것저것 넣어서 완성했는데 꽤 괜찮은 맛이 났다.
딸과 남편이 맛있다며 밥을 두 공기가 비웠다. 딸이 무엇을 넣어서 만드는 거냐고 한다. 오징어는 찌개로 잘 먹지 않아선지 낯설었나 보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대충 스무 개가 넘는 재료가 들어간 거였다. 냉장고에 있는 것, 집에 있는 양념을 모조리 넣은 것 같다. 물은 기본으로 들어가고, 주재료인 오징어, 무, 당근, 양파, 마늘, 국간장, 새우젓, 호박, 고추장, 고춧가루, 맛술, 조미료, 파, 청양고추, 표고버섯 등등.
얼핏 보면 오징어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말이다. 맛있게 하려다 보니 이것저것 넣게 된다. 오징어가 싱싱해서 그 자체로 맛있었다면 덜 들어갔을 것이다. 음식은 재료맛이 9할이라 믿는 나로선.
찌개는 실패하기가 힘들다. 짜다면 물을 더 넣으면 된다. 싱거우면 소금이나 간장을 더 넣으면 되고. 밍밍하다면 조미료나 새우젓을 넣으면 된다. 텁텁한 맛이 나면 맛술을 넣으면 된다. 찌개는 끓이면 끓일수록 진국이 되니 오래 끓이면서 보완해 나가면 된다.
나물무침은 찌개와 반대다. 나물반찬 잘하기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요리 연구가들은 나물을 잘 무치는 사람이 요리고수라 칭한다. 이유는 뭘까. 나물은 연한 물성을 가지고 있다. 삶는 과정에서부터 실수가 용납이 안 된다. 아주 잠깐 삶아내야 하는데 그렇다고 너무 빨리 꺼내도 질긴 나물반찬이 만들어진다. 적당한 시간에 꺼내야 한다. 시간조절이 생명인 셈이다. 양념도 간소하다. 소금이나 마늘, 참기름 정도인데 실제로 청담동 요리선생에게서 배운 지인이 하는 말이 나물반찬에는 소금과 들기름 정도만 들어간다고. 마늘등을 넣으면 강한 향 때문에 나물의 고유향을 느낄 수가 없어서다.
나물자체의 향을 잘 살리는 게 요리의 비법인 셈이다. 찌개는 다르다. 만회할 기회가 여러 번 주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이 내게 찌개 하나는 잘 끓인다고 말한다. 계량법이나 조리 순서등이 어려운 내게 딱 맞는 음식인 셈이다.
요즘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로 시끄럽다. 이 와중에 오징어찌개를 떠 올려본다. 완벽한 찌개맛이란 게 존재할까. 사람마다 입맛이 다 다른데. 그래도 맛집에 줄을 서는 이유는 공통으로 인정하는 중간값의 맛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완벽하게 선하고 이상적인 사회라는 게 가능할까. 서로 다른 가치관들이 충돌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맛보면서 간을 조절하면 된다. 그래서 지금 이 길의 끝이 결국 맛있는 오징어찌개를 먹게 된 우리 가족과 닮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