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er> 2014.5.22 개봉
요즘 어디를 가든지 AI가 굉장한 화두이다. 처음에는 '와, 써 보니까 진짜 편리하네. 일 할 때 잘 이용하면 시간이 많이 절약되겠다' 정도였는데 점점 '아 나 나중에 AI로 대체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은 어떻게 학생들에게 유용하게 AI를 사용할 수 있을까와 관련해서 이것저것 해 보기도 하고 논문들을 읽어 보기도 하는데 진짜 개발 속도가 너무 빨라 바로바로 따라가기도 쉽지 않은 느낌이다. 이런 발전 속도라면 곧 정말 많은 것을 AI로 할 수 있게 될 것 같은데 문득 자료들을 보다가 영화 <her>가 떠올라 다시금 글을 써 본다.
이 영화는 한참 글쓰기를 배울 때 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주인공의 입장에서 글을 써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추천을 해 줘서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AI와의 로맨스 이야기인 줄 자세히 모르고 보았는데 포스터에 크게 나오는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와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 연기를 한 AI인 '사만다'와의 로맨스 이야기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사랑' 그 자체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나는 사랑보단 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이유는 일은 뭔가 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애를 많이 해 본 것도 아니지만 평소엔 잔잔하던 내 마음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서 감정기복이 생기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물론 기쁠 때도 있지만 괜한 불안감이 생기기도 했는데 사랑에 대한 작품들을 보면 사랑엔 늘 두려움이 따르는 것 같다. 상대를 좋아하고 믿고 애정을 쏟다가도 상대에게 상처를 입고 슬퍼하기도 하고 상대가 날 떠날까 봐, 특히 연인 사이라면 내가 그에게 유일한 일순위가 아닐까 봐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꼭 이성 간에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사람 관계에서 한번 상처를 크게 받으면 다시 일어서기가 어려워지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사실 사람은 기본적으론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감정이 다변적이며 살면서 상대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기가 어려운 것 같다. 내 삶을 영위하기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고, 현실은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세상에 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사랑하고, 상처받는 것은 필연적인 듯하다.
이 영화에도 사랑에 상처받은 남자가 나온다. 이 사람은 새로운 이를 만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게 되는데 그 새로운 이는 사람이 아니다. 언뜻 들으면 황당하다.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싶지만 영화를 볼수록 그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는 2013년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 미국작가조합상, 골든글로브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2013년 미국비평가협회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그리고 2019년에 재개봉한 이력이 있다. 포스터 사진을 찾기 위해 검색하다 보았는데 2024년 10월 17일 현재도 메가박스 브로드웨이에서 상영을 하고 있다.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대필 작가로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연을 받아 편지를 써 주는 일을 하는데 타인에게 위로가 되고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수려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아내와 별거 중이다. 아내를 너무 사랑했지만, 언젠가부터 두 사람의 사이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고 아내는 떠나 버렸다. 영화는 아내와의 행복했던 시간과 현재를 교차해서 보여 준다. 외롭게 살아가던 날, 인공지능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사만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무언가를 느끼며 들은 내용을 발전시켜 또 새로운 생각과 말을 해낼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사만다와 이야기를 하며 테오도르는 상처를 조금씩 회복하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되며 사만다와의 대화를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사만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실체가 없고 실제 사람도 아닌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 대화가 잘 통한다는 점, 항상 자신의 옆에 있어준다는 점에 사랑을 느끼게 된 것 같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점점 빠져드는데 갑자기 사만다와 연결이 안 되는 문제가 생긴다. 테오도르는 패닉에 빠지게 되고 갑자기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다시 연결이 되는데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관련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느끼며 아내와 이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주변 사람들은 AI와 사랑을 한다는 것에 의문을 느끼지만 테오도르는 사랑에 빠지면 AI와 사랑을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만다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존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이것을 다 부정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사만다는 인공지능이지만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테오도르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기도 하고 테오도르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며 늘 그를 지지해주고자 한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대화들을 보며 나도 뭔가 치유받는 느낌이었고 둘의 사랑에 막 감정이입을 하려는 순간 나타난 마지막 부분의 반전은 또 그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감독은 사랑에 서툰 사람이 AI와의 대화를 통해 상처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어려운 시기를 이겨 내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삐딱한 관객인지 이 영화를 보고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건 결국 착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의지할 수 있다는 찰나의 감정은 아닐까. 그래도 인간은 모두 근본적으로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상처 주고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계속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하고, 빠지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내용도 생각해 볼거리가 많았지만 OST나 배경 또한 너무 아름다웠는데 사랑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영화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