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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an 21. 2024

41번째 생일 선물

그래도 사람이다


 몇 년 전부터 생일에 대해 이중적인 심리를 갖게 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 여기에 한 살 더 추가하는 게 뭐 그리 대수냐 했다가도 막상 생일 당일이 되면 감상적 혹은 감정적이 되고 만다. 이번 생일에도 역시 그랬다. 오전에는 눈발이 펑펑 흩날리더니 오후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생일을 맞이하는 내 감정선을 고조시켰다.


이런 증상을 인지하고나서부터 생일에는 연차 휴가를 내곤 했다.

출근을 하면 기분 잡치는 일이 반드시 벌어지고 마는 불행한 K-직장인으로서 적어도 내가 세상에 던져진 날만큼은 마음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영부영하다가 이번 생일에는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고객이 나에게 화 비슷 무리한 걸 내는 바람에 출근을 후회했다.


저기요, 저 오늘 생일이거든요. 다른 날도 무례함은 사절인데, 특히 오늘은 더더욱 곤란하거든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더럽고 찝찝한 기분을 날려보고자 점심시간에 혼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시집을 읽었다. 생일이라 그런 건지, 오랜만에 시집을 읽은 탓인지 어떤 구절에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대상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전할 길 없었던 그리움이 모조리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속으로는 봇물 터진 감정 안에서 허우적거렸지만,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며 어찌어찌 오후를 버티고 퇴근을 했다. 가족과의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있어서 내 그리움의 정체가 깃든 장소로 차를 몰았다.



좋아하는 바다 위로 좋아하는 비가 내리는 걸 바라보는데 그곳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오늘 진짜 제대로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 귀에는 가수 권정열의 목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모르겠어요 이내 돌아서는 법
아니 모르겠어요 끝내 멀어지는 법
그댈 잡은 손을 놓는 법도

모르게 해 줘요 그댈 잃는 법 영원히
더는 가지 말아요
ㅡ10CM, 방법



노래가사와 감정표현 정녕 미쳤구나... 감탄하다가 41년 전, 울면서 태어났으니 오늘은 내가 울어야 끝나는 날인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의 정서, 오늘의 날씨, 오늘의 분위기, 오늘의 노래가 내가 울기만을 바라는 것 같았다.






생일날의 고독을 마무리하고 가족들을 만나 맛있게 갈비를 뜯었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을 때쯤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누구지? 평소에 조용하기 짝이 없는 핸드폰이 생일이라는 이유로 요란한 하루였지만, 지인들의 축하인사 릴레이는 한 차례 지나간 후였다. 마침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어 메시지를 바로 확인했다. 송신자는 마지막 연락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중학교 때의 베스트 프렌드였다.


선교사 남편을 둔 덕에 친구는 결혼 이후 줄곧 해외에 있었고 그래서 더 친구의 연락이 반가웠다. 친구는 카톡이 내 생일을 알려줘서 이름을 불러봤는데, 내가 곧장 답을 해서 놀랐다고 했다.


옛 친구의 위력은 이런 것인 걸까, 그동안의 공백 그까짓 게 대체 뭔데 할 정도로 쉴 새 없이 메시지가 오고 갔다.

40대의 나는 어제 한 일도 가물가물한데, 친구와 나눴던 30여 년 전 추억들은 소소하고 하찮은 것조차 기억이 나서 신기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각자의 폭풍 같은 나날들을 압축해야 하는 타이밍이 왔다. 별소리 안 했는데도, 친구는 내 별스러운 감정들을 줄줄이 이해해 주었다. 그러고 나니 나는 점점 더 오버해서 별소리를 늘어놓게 되었다.


나는 회사 다닌 이후부터 줄곧 사람이 싫다고, 사람들이 최근에 판다 푸바오에 열광하는 것이 와닿지 않았는데 우연히 푸바오 영상을 보고 이해하게 되었다고, 이 세상 무해한 생명체는 동물들과 아기들 뿐인 것 같다고. (나를 포함해) 어른(?) 사람이라면 그저 질리고 화가 치솟는데 인간에게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푸바오 영상을 보며 오랜만에 느꼈다고.


친구는 내 말이 뭔지 알 것 같다며 자기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사진을 보내주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내가 보기에도 친구의 고양이는 착해 보였다.


나의 지질함에 대한 실망감, 나 못지않게 너저분한 인간들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다가 친구 앞에서 이토록 변질된 내 모습을 보이는 게 창피해서 이제 그만 멈춰야겠다 할 때쯤이었다. 친구의 메시지에 벙쪄 점심시간 때 시집을 읽었을 때처럼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아는 넌 멋진 사람이야. 여전히 그럴 거야. 냉정한 듯 하지만 넌 감성적, 따뜻한 사람 ㅋㅋ


 친구니까 그저 날 후하게 봐줬겠지만... 내가 한 때는 이랬던 적이 있었다는 것, 누군가는 날 이런 사람으로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이 서러우면서 고마웠다.


생일날,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 싫다고 나불거리는 나에게, 친구는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이도 결국 사람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돌이켜보면 옛날부터 그 친구는 이래저래 못생긴 나를 휴머니티로 감싸준 '사람'이었다)


우리는 2026년도에 만나자는 약속을 2024년도에 했다. 친구가 그때 한국에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 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기억이 덜 왜곡되도록 나는 이제부터라도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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