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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Feb 26. 2024

첫사랑의 유치원 졸업식  


 지난 금요일 조카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휴가를 냈다. 하루를 온전히 쉬는 걸로는 올 해의 첫 번째 연차였다. 학교도 아닌 유치원 졸업식에 고모가 휴가까지 내고 간다는 게 오버인가 싶었지만, 참석여부에 대한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첫째 조카가 다니는 유치원에는 둘째 조카도 다니고 있어 졸업식뿐 아니라 수료식도 거행되었고, 양가의 첫 손녀 유치원 졸업식 축하를 위해 양가 어르신들을 비롯한 (조카의) 이모까지 출동한다는 말에 질 수 없었다. 나는 집안의 첫째지만 여태(?) 시집을 못 간 탓에, 나의 첫 조카는 우리 집에서 (둘째 조카가 태어나기 전까지) 온갖 사랑을 독차지해 왔다. 특히 고모인 나의 사랑은 내가 생각해도 유별났다. 조카가 올케의 뱃속에 있다는 것을 안 때부터 해외와 국내를 가리지 않고 애착인형, 옷, 신발 등 각종 유아템들을 사다 날랐다. 조카가 태어난 날에는 연차를 쓰고 부모님과 함께 갓 태어난 아가를 보러 가기도 했다.

7년 전의 일이지만 유리창 너머로 첫 조카를 대면했을 때의 그 감격스러움과 감동은 여전히 생생하다. 핏줄의 힘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신비롭고 위대한 것임을 그때 실감했다.





조카가 태어나기 전 지인과 친구들의 아이들을 보거나 길에서 아이들을 마주쳤을 때, 먼발치에서 귀엽단 생각은 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축에 속했다.

그런 내가 고모라는 정체성을 처음 안겨준 첫 조카에게는 첫사랑에 버금가는 애틋함을 가지고 있다. (외모와 성격이 동생보다 나를 더 닮는 바람에 내 딸로 오인받는) 둘째 조카도 물론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첫째 조카에게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대체불가의 감정선이 있다.



그래서일까, 어제 태어난 것 같은 아가가 벌써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간다니 그렇게 대견하고 기특할 수가 없었다. 행사 중간에  유치원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할 때는 주책맞게 눈물마저 났다. (고슴도치 고모라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지만) 나의 조카들이 가장 귀엽고 예뻐서 우리 태자매들만 눈에 보였고, 조카들을 낳아서 키워내느라 고생하고 희생한 동생과 올케는 새삼 존경스러웠다. 인간이 인간을 키워낸다는 그 숭고한 이력 앞에서 언제나 그들은 나와 비교할 수도 없는 어른이다. 몰래 눈물을 찍다가 슬쩍 올케를 곁눈질했더니 조카들의 엄마인 올케는 이미 훌쩍거리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도 전부 눈물바다였다.


 육아의 단맛과 쓴맛을 모르는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그 눈물의 포인트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자식이 없는 나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어리고도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된 엄마 아빠를 상상했다. 내 옆에서 그저 흐뭇한 미소로 첫 손녀의 졸업식을 지켜보고 계신 우리 엄마아빠가 나를 키우며 겪었을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생각하니 다른 의미로 눈물이 줄줄 샜다. 빠른 년생 7살에 간신히 100cm를 넘긴 내가 등보다도 더 큰 가방을 짊어 메고 학교에 간 첫날, 엄마는 내 뒷모습을 보고 우셨다고 했다.






 졸업식의 마무리답게 우리 가족의 단골 중식당에 가서 조카들이 좋아하는 짜장면과 탕수육, 어른들이 좋아하는 삼선 짬뽕, 양장피, 고추잡채를 먹었다.

졸업식 말고 다른 이의 유치원 졸업식에는 처음 가본 거였는데 조카를 기준으로 엄마아빠, 양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와 이모가 총 출동한 집은 우리 가족이 유일했다. 유난이고 극성이었다 생각하면서도 인생의 중요한 '첫걸음'에 많은 축하를 받는 조카가 부럽기도 했다.



 나는 때때로 고모가 아닌 인생선배로서 조카가 알아듣지도 못할 드라이한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이번에도 학교 간다고 그저 들떠 있는 조카에게 "유치원 졸업을 축하해, 이제 너의 호시절은 끝났구나"라고 말해주었다. 조카는 저 사람이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야 라는 표정으로 짜장면 먹기에 집중했다.


차디차고 험한 세상에 던져지기 전 학창 시절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면서 치열하고, 심각하면서 재밌기에 이해도 못하는 조카를 향한 부러움 반 걱정반이 뒤섞인 40대 고모의 기우였다.


그리고 여기에 생색과 축복도 덧붙여본다.


입학 기념으로 고모가 사준 옷과 신발 예쁘게 장착하고, 민트색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도 씩씩하게 들고서 그 누구보다 신나게 등교하기를. 이 세상에서 엄마아빠 다음으로 너를 많이 사랑하는 고모는 앞으로 마주할 너의 좌절과 폭풍 성장을 언제나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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