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영화까진 아니어도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연기, 목소리, 얼굴,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사상까지 모조리 갖춘 김태리 배우가 나와서만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펼쳐지는 영상을 보다 보면 괜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고, 내 안의 온갖 불량하고 해로운 것들이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직접 재배한 농작물로 정성스럽게 끼니를 지어먹는 과정이 숭고한 행위라는 것도 이 영화를 통해 깨달았다.
영화의 잔상 때문이었을까. 독립을 하고 나서 나는 내가 먹을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있다. 참 오랜 시간 동안, 엄마의 정성을 너무도 쉽게 받아먹기만 했다는 걸 반성하면서 말이다.
최측근들을 불러 집들이를 할 때, 하나같이 내가 요리한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당연히 밖에서 밥을 먹고 집에서 차를 마시거나, 처음부터 음식 배달을 시킬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직접 요리하지 않고 사람을 초대한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어 그 반응이 더 놀라웠다. 알고 보니 그들은 이미 다 주부라서, 장을 보고 요리하고 설거지로 이어지는 과정의 수고로움에 빠삭했다. 그래서 그 준비를 미안하다 여겼고 애초에 그걸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제 갓 요리사(?)라 그런지 나와 내 주변 사람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위해 장을 보고 요리하는 과정이 (아직까지는) 재밌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멋대로 통계지만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음식을 많이 먹고, 식도락을 추구하기에 대개 요리 지능이 있다. 나 역시 첫 집들이 때, 난생처음 만든 고추잡채와 마파두부의 맛에 대한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때는 갑자기 걸린 감기로 후각과 미각을 잃어, 간 한번 보지 못한 채 음식을 내야 하는 비상상황이었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무슨 맛인지조차 모르고 요리를 하다 보니 괜히 음식 한다고 큰소리쳤구나 몇 번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두려움 반, 긴장 반으로 음식을 냈는데 모두들 맛있다고 칭찬해 주니 뿌듯하고 짜릿했다. 물론 나의 정성을 감안한 인사치레, 하얀 거짓말도 있었겠지만 내 음식이 담긴 접시가 비워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요리 하나하나가 완성될 때 느끼는 성취감, 내 요리를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때의 보람.
다들 이 맛에 요리를 하는 거구나 싶었다.
요리에 재미를 붙이면서 나는 요즘 나를 위한 점심 도시락까지 싸기 시작하였다. (어마무시한 아파트 빚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도시락을 싸서 다니니 식비가 절약되고, 식후의 속도 편안하다. 도시락은 간편하고 빠르게 까먹을 수 있어서 점심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엄마가 된 친구들은 나의 집에 올 때마다 비슷한 대사를 날렸다. 역시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 점점 더 요리하기가 싫어져. 사실 이미 나도 집밥이 물려서 족발도 사 먹고 피자도 사 먹고 햄버거도 사 먹었다. 그래도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를 이 흥미진진함을 진지하게 즐기고 싶다.
내가 먹을 밥을 짓고 내가 먹을 음식을 스스로 요리하는 것. 너무 당연한 이 거룩한 의식을 마흔을 넘긴 이제야 하고 있다.
모든 선의 시작이자 근원은 위장의 쾌락이다.
지적 선과 취미의 선도 이것으로 귀결된다.
ㅡ에피쿠로스 쾌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