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케이시의 잊어가지마 라는 노래가 있다. 처음에는 멜로디에 꽂혔다가 종국에는 가사에 매료되어 출퇴근길에 무한반복으로 들었던 노래다.
2년 전 이 노래를 알게 되기 전까지 나는 감정을 머금는 것이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어나가야 할 가치를 못 느끼는 관계는 일언반구 없이 조용히 정리해 버렸지만, 놓지 못하는 인연에 대해서는 생각과 감정을 담아두지 못하고 전달을 해야만 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인연이 소중하면 소중할수록 뭔가를 머금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 말도 전할 수 없어
그저 난 고개만 숙여 발끝만을 봤지
그대 눈빛이 표정이 이별을 말해서
난 돌아서 울고 말았지
-케이시, 잊어가지마
상대의 눈빛과 표정만으로 관계의 끝을 알아채는 눈치 정도는 내게도 있다. 충격적인 포인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서 울고 만' 부분이었다. 돌아서 울 정도면 상대에게 묻든지, 한 번은 붙들든지 해야 될 일 아닌가. 그래놓고 나를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니 이건 대체 무슨 심리인지 혼란스러웠다.
한창 이 노래를 들었을 당시, 나 혼자 어떤 인간을 좋은 사람으로 오해하고 그야말로 더럽게 차인 후라 더더욱 그러하기도 했다. 내 감정이 거부되서가 아니라 마음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감정을 머금지 못하고 털어놓은 것이 무척 후회스러웠던 때여서 꾹 참는 저 태도를 너무도 배우고 싶었다.
휘청거릴 때마다 소환하는 남자 사람 친구와 술을 마신 날 그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내가 요즘 꽂혀있는 노래임에도 화자의 정황과 감정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노라고 실토했다. 노래 가사를 곱씹던 그가 본인은 남자인데도 이 감정을 너무 알겠다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노래가사처럼 행동할 거라 말했다. 사람마다 고유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그에 따른 반응이 제각각인 가운데 내가 소수였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데이터로 쌓인 경험칙이든 상처를 덜 받기 위한 방어기제든 사람은 자기에게 쉽고 편한 모습을 취한다. 참고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고 지르는 나 같은 사람만 있는 세상도 끔찍하긴 하다. 돌이켜보니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표현에 신중하고 감정을 머금을 줄 아는 자들이 더 많았다.
오랜만에 다시 이 노래를 듣는다. 현대 가요인데도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나기를 바라는 옛 노래와 사뭇 다르다. 아리랑의 정서를 가진 나는 또 한 번 신선함을 느낀다. 생각이나 감정을 표정이나 태도에 '조금' 드러낸다는 사전적 의미의 "머금다"를 이렇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