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Price in London
예비부부, 신혼부부, 심지어 결혼한지 제법 오래된 부부들에게조차, 집 문제는 제일 큰 스트레스이자 다툼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결혼 준비를 하다가 집 문제로 파혼한 커플 같은 이야기는, 이제 이야깃거리도 안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최근에 한국에서, 런던의 집값에 관해 언론에서 자주 회자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런던의 집값에 대한 악명이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사실 그 악명은 자주 업데이트(?)를 해줘야 한다 -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도 계속 오르고 있으니까. (저런 방송 중 몇 편의 하이라이트를 보았는데, 우리나라만 사는 게 힘든 것이 아니니 고만 징징대라라는 톤으로 말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불쾌했다. 우리만의 문제던지 세계인의 문제던지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외국에는 전세란 제도를 찾을 수 없다. 다 월세 기반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는 몰라도 요즘에는 무리해서라도 전세를 사는 것이 자산 불리기에 아주 큰 메리트가 있는 것 같진 않다고 들었다. 실제 최근에 결혼한 지인들 대부분은, 많은 금액의 대출을 끼고 집을 사던지 전세를 계약해서, 월세만큼의 돈을 결국 매달 갚고 있다고 들었다. 은행 수익을 기대할 수 없으니, 전세 물량 자체가 거의 없고 월세가 점점 증가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영국에서도 letting은 (rent) 월세 기반으로 집을 빌려준다 (엄밀히 따지면 주(week)세). 보증금(deposit)은 몇 주치 집세를 먼저 지불하는 방식이다. 먼저 집을 빌릴 때 집의 상태와 집기 조사(inventory check)를 한 뒤 세입자 (tennant) 계약을 맺는다. 영국에서 집을 빌리면 가구와 어느 정도의 주방 가전, 식기 등이 보통 딸려있다. 아예 집기가 없는 (unfurnished) 집을 빌리는 경우가 아니면, 집주인이 구비해놓은 집기들을 좋든 싫든 써야 한다. 당연히 누가 다 쓰던 것인 데다가,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다. 가령 토스트 기계 같은 것은 구입 이후로 아무도 청소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옵션이라고 터억 놓여있다. 이런 가전이나 식기류는 안 쓰면 그만인데, 가구 같은 경우는 맘에 안 들어도 보관할 곳도 없고 무조건 써야 한다. (제외해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보관비나 운송비가 드니 대부분의 집주인은 거절할 것이다)
계약 종료 시에 집주인(landlord)이 파손이나 수리를 요하는 항목을 청구하고 보증금에서 제한 뒤에 돌려받는다. 대부분의 경우는 이 모든 단계에서 부동산 중개인 (letting agency)이 개입해서, 집주인과 세입자가 만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로 불편하지 말자는 취지인 것 같은데 (당연히 전문가들이 일처리는 잘하지만), 영국 사람들조차 부동산 업자들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전에 집주인은 기생충 같은 놈들이라고 말했다. 양쪽으로부터 돈을 뜯어낸다면서). 이 과정에서 부동산 중개인들이 이간질을 하기도 하고, 또는 집주인이 계약 종료 시에 집을 수리할 목적으로 부당하게 청구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당신이 집을 쓰는 동안 욕조가 너무 더러워져서 다음 임대를 할 수가 없으니 새 욕조 교체 비용을 내놓아라 - 이런 식이다. 그래서 임대 경험이 많은 사람은 입주 시에 굉장히 많은 증거 사진을 찍어 놓고, 미리 있던 집기를 따로 보관해서 안 쓰기도 한다. 그래도 집주인의 제기는 권리고, 조정을 신청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보통 결론은... 그냥 합의하지? 이러면서 이도 저도 아닌 판결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배상 - 이런 식으로. 아니 그러면 집을 빌리고, 사용하지 말란 말인가? 상처 안 나게?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야기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전부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일들이다. 내 집이 아니라 서럽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갈 곳 없는 신혼부부들에게는 어느 나라나, 어느 때나 가혹하다. 우리나라에선 그런 상황과 심리를 이용한 여론과 은행, 심지어 정부까지 은근히 부추기는 것 같다 - 그래, 그렇게 더러운 꼴 당하지 말고 돈 빌려서 사, 싸게 빌려줄게. - 정말로 그런 의도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고, 실거주 목적이라면 우리 가족만의 공간 구입이 나쁜 것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신혼부부에게 보금자리가 소중하다는 것은 신혼에 새삼스레, 사무치게 깨닫게 되는 결혼의 현실 중 첫 번째 것이다. 이 아름다운 순수한 우리말 - 보금자리는, 인터넷에 쳐보면 관련 대출로만 모두들 생각하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 부부도 이 힘든 현실에 허덕이는 중이다.
영국은 신혼부부가 '욱'하는 마음에라도 집을 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런던이라면. 사실 애초에 영국인들은 런던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의 구역)에서 살지 않는다. 우리나라 방송에서 집세에 관련해서 이야깃거리로 다루는 지역들은 런던 1 존 내의 지역이다. 도심 중에 도심이라 거주 환경이 아주 좋다고도 할 수 없고, 우리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집'은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다. 가령 방 2개 정도의 부부가 좀 부대끼며 살 정도의 작은 크기라면 (15-18평) 최소 50~70만 파운드, 즉 8억-11억 원이다. 너무 좋은 집을 예로 든 게 아닌가 하시는 분들은 www.rightmove.co.uk 같은 사이트에 접속해서 아는 지명으로 검색해보자. 사실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다. - 지금 막 하이드 파크 (hyde park)로 검색해봤는데, 35만 파운드(5.7억 원)의 저렴한 매물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매물은 하이드 파크 바로 앞의 주차 1면이다. 1000억짜리 집을 봐도 놀라지 말자. 잘못 본 것 아니다.
최근에 방송에 나온 보트에 사는 국회의원 이야기는 사실 영국에서는 종종 들을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다. 2014년에는 우리로 치면 차관 정도 되는 마크 시몬스 (Mark Simmonds) 의원이, 런던에서 가족과 함께 살기엔 의원 월급이 부족하다며, 자신은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며 사임했다 (연봉이 2억이 넘는데!). 아름다운 이야기 같지만, 그는 꽤 비난을 받았는데, 그가 원한 지역은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즉 의회 근처였기 때문이다 (평균 월세가 천만 원 정도라고 한다. 평균이!) 1 존의 핵심 지역, 2 존에서도 살기 좋은 지역들을 제외하면, 30여 분만 시외 쪽으로 나가면 집세가 상당히 떨어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런던 사람들은 기차나 지하철로 통근을 많이들 한다. 특히 젊은 부부들은. - 우리나라의 젊은 부부들이 자식들의 학군 문제 때문에 거주지 선택이 제한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 그래서 회사들이 많은 시티 (city), 웨스터 민스터(Westminster)등의 지역은 여의도, 강남과 풍경이 비슷하다. 출퇴근 시간에 번잡하고, 주말엔 유령 도시가 된다.
런던 광역권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Greater London은 서울의 2배 정도가 된다. 인구가 서울에 비하면 훨씬 잘 분산되어 있음에도 집값이 이렇게 비싼 이유는, 영국인들이 극단적으로 아파트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주로 말하는 플랏(flat)은 우리나라의 빌라 수준이다. 한때 서민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council flat이 남아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왠지 흉물스러운 디자인과 불편한 거주 조건 때문이다. 건축 제한 문제도 당연히 있지만, 대부분의 영국인들의 성향 때문에 우리나라 같은 브랜드 대형 아파트는 없다. 런던 외의 도시는 더욱 심해서, 5층 이상의 거주용 건물은 드물다고 한다.
일부 도심 지역의 어이없는 가격을 제외하면, (작년에 최고급 아파트인 One Hyde Park의 펜트 하우스가 2380억에 팔렸다고 한다. 한 건물이 아니고 한 채가.) 대도시의 비싼 집값에 살아가는 모습은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젊은 부부들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다. 사실 서울의 어떤 아파트 값들도 어이없는 정도는 세계적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국에서 TV에서 가장 많이 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부동산 프로그램이다. 전문가가 나와서 같이 집을 구해보거나, 신혼부부가 적은 돈으로 집을 구해보는 프로그램, 안 팔리는 집을 같이 개선해서 파는 프로그램 등등 모든 사람이 집 문제에 관심이 많다. 영국의 부동산 중개소는 대부분 사진을 같이 광고하고 있다. 그래서 창문에 붙어서 부동산 매물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집세는 매해 계속 오르고, 구입은 더욱더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사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서 부동산과 집세 동향에 관심이 많다. 어쩌면 그런 상황이 더욱더 사람들을 불안하고 신경질적으로 만들고 있지 않나 싶다.
도심 외곽이라고 해서 집세가 싸지도 않다. 2014년 통계로 영국 전체의 평균 월세가 665파운드인데, 방 하나 플랏의 경우 평균 1300 파운드, 두개의 경우 평균 1600 파운드로 나타났다. 이것도 광역 런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값이라 실제 체감은 이것보다 비싸다. 거기에다가 외곽으로 가면 비싼 교통비가 얹어진다. 구간과 철도 회사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지만, 월간 기차 패스가 5~600에서 1000 파운드 이상, 연간 패스는 4~5000파운드 정도까지 든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스페인에서 런던까지 통근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 저가 항공 정기권이 런던에서 살거나 통근하는 것보다 더 싸서 그렇게 한단다, 얼마나 더 이익인지는 모르겠지만. - 역시 2014년 통계로 런던 세입자들은 월급의 72%까지 월세로 내고 있으며, 나이가 젊은 세입자들의 경우는 비율이 더 높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런던이란 말을 빼고 읽으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제일 문제다. 한국에 오래 거주한 전 이코노미스트 (Economist) 특파원인 다니엘 튜더 (Daniel Tudor)는 한국의 기형적인 수도 중심적 사회/경제 구조가 영국을 심하게 닮아가고 있다는 점을 자주 우려했었다. 대부분의 개발된 나라들이 그러한 구조 때문에 오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특히 우리는 인구 수나 그 불균형에 있어서 매우 유사하며, 특히 악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점이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멀리서 통근을 하고, 집 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젊은 부부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하나 큰 차이는, 노동 시간이 잘 지켜지고 야근하는 사람이 적다는 차이가 있다. 저녁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서 퇴근 시간이 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기차를 타러 우르르 몰려 가는 모습을 볼 때, 이제 저녁 근무 시작이다라고 오후 7시에 메신저로 농담을 보내던, 역시 결혼한지 얼마 안 되는 친구가 생각나 씁쓸하다.
그런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읽었다.
집에 들어간 돈이 너무 아까운데, 그 비싼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쓰지도 못할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 모든 것을 퍼붓고 있다고. 내 능력과 에너지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해야 할 시간까지.
신혼부부인데, 서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무엇보다도, 처음 출발을 힘들게 해서 나중에는 좋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지 시간이 꽤 지난 부부들 조차도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이 보여서 더욱 슬프고 걱정된다.
위에 나온 여러 가지 수치와 통계는 참고로만 봐주세요. 다양한 변수와 환경에 따라 실제 수치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록을 워낙 좋아하는 영국인들이라, 더 자세한 수치와 통계는 인터넷에서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