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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Jul 11. 2023

같이 영화보는 아빠, 중간에 집에 가는 엄마

엄빠와 셋이 살기 


아빠는 영화나 드라마 취향이 확고하다. 액션 느와르나 정치, 범죄수사물을 좋아한다. 엄마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가끔 좋은 가족 영화를 다 같이 보러 가자고 하면 마지못해 분위기를 맞춰준다. 예전에는 아바타 2를 보러 갔는데 2시간쯤 지나자 엄마가 물었다.  


"얼마나 남았노?"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남았다고 하니까 엄마는 볼 건 다 봤다며 자리에서 일어서서 집에 가버렸다. 영화관에서 집까지 걸어서 25분 정도 걸리니까 뭐 걱정할 건 없다. 그전에는 어떤 액션 느와르 영화를 보다가 엄마는 잔인해서 더 못 보겠다며 혼자 집에 가 버린 적도 있다. 주최자로서 영화를 잘못 선택했다는 패배감이 약간 들긴 하지만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엄마에게 언제든 영화를 그만 보고 집에 가도 된다는 걸 강조한다. 엄마가 자유롭게 본인의 시간을 선택하는 게 나 때문에 재미없는 영화관에 갇혀 있는 것보다 좋기 때문이다. 


셋의 취향과 원하는 것들이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끔 엄마 아빠를 끌고 영화관에 가는 것은 영화관의 분위기 때문이다. 영화관에 가면 괜히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들잖아. 엄마 아빠가 둘이서는 잘 못하는 취미 생활을 가급적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솔직히 나는 혼자 영화 보는 걸 제일 좋아하지만 그래도 아빠 취향, 가족 취향에 맞는 영화를 분기에 한 번은 시간을 맞춰보려고 노력한다. 


이번에 범죄도시 3가 호평이길래 아빠한테 같이 보러 가자고 했다. 아빠는 영화 보는 건 선뜻 좋다고 했지만 아무리 가족이라도 두 사람이 영화관에 시간 맞춰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토요일 저녁 때마침 영화의 전당에서 무대인사 행사가 있길래 조금은 귀찮아하는 아빠를 적극적으로 졸라 이른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러 갔다. 이준혁이 잘생겼다 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대 인사를 보고, 영화를 봤다. 영화는 잔인하다는 경고가 무색할 만큼 곳곳에 포진된 개그 포인트들이 많아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범죄도시 3가 지금 9백만 관객을 넘었는데도 저렇게 무대인사를 다니면서 열심히 영화를 홍보하는 게 대단하다면서 영화의 손익분기점 이야기를 나눴다. 문득 내가 이번에 실사화된 인어공주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들어본 적 없다 하길래 인어공주를 흑인 배우로 캐스팅해서 논란이 많았다, 흑인이라 안 어울리니, 예쁘니 안 예쁘니, 하는 논란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또 영화는 잘 된 편은 아닌 것 같더라, 손익분기점이 안 넘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긴장한 채 단어들을 조심스럽게 고르려고 노력했다. 사실 아빠가 흑인 인어공주에 대해 뭐라고 할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아주 의외로, 밝은 목소리로 반응하셨다. 


“흑인 인어공주는 되게 좋은 아이디어네?”


나는 거의 펄쩍 뛰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래서 어린 흑인 여자애들이 자기도 공주가 될 수 있다고 웃는 영상도 돌아다녔다고, 영화의 작품성이나 흥행을 떠나 인종차별에 관련된 생각을 바꾸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엄마 아빠에게 PC(politically correct)가 어떤 개념인지 설명한 적이 있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니까,라는 말보단 간단하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게 더 잘 먹혔기 때문이다. 성역할을 나누고 며느리 시집살이를 시키는 가부장적인 옛 관습, 소수자 비하 발언 등 특정 어휘나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 전부 시대가 바뀌어서 안 된다고 설명한다. 엄마가 외국인 사위도 환영한다면서 흑인은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인종차별이라고 몇 번 말해봤지만... 포기했다. 어차피 일어날 가능성이 적은 일까지 들먹이며 엄마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트랜스젠더는 그래도 이상하지 않냐고 말씀하실 때도 있었는데 최근 티브이에서 활동하는 방송인들을 보면서 또 생각이 많이 바뀌셨다. 최소한 본인들이 가진 성에 대한 개념이 낡은 것이라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됐다. 본인들의 호오를 떠나 세상에 존재하는 개념과 바뀌는 시대의 흐름을 나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부모님을 바꿨다기보다는 나 같은 PC충 페미니스트인 딸과 함께 살기 위한 두 분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부모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다. 아빠는 아침, 저녁으로 뉴스를 틀어놓는데, 아빠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라고 주장하지만 안철수를 여전히 좋아하고 지난 대선 때는 윤석열을 뽑았다. 이재명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이유였다. 나는 윤석열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엄마를 설득해서 같이 심상정을 뽑았다. 엄마, 딸이 살 세상이잖아, 근데 여성을 위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라고 했던 게 먹혔다. 그전 대선 때는 셋이 다 다른 후보에 투표했다. 


처음에는 뉴스를 들으면서 아빠가 한 마디씩 하는 말을 참지 못하고 많이도 싸웠다. 엄마가 저녁 먹을 때는 정치 얘기 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 특히 노조나 파업, 노동, 복지 정책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첨예하게 대립한다. 여러 번 싸우고 감정을 상하면서 우리는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엄마 아빠를 설득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이게 맞다가 아니라 요즘 시대가 이렇게 변했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 나의 PC함에 대한 관심을 부모님은 영원히 모르시겠지만 그래도 내 덕에 두 분은 딸이 맞다고 하면 한 번쯤 더 생각해 보는 어른들이 되었다. 


나는 무엇보다 60이 넘어서도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두 분이 참 좋다. 그게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걸 알아서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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