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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Jul 21. 2023

엄마, 기억에 남는 잔소리가 있어?

함께 나이 들어가는 엄마와 딸 이야기


갑작스러운 질문에 엄마는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엄마가 기억을 더듬고 있다 생각했지만 정작 엄마는 본인이 그렇게 많은 잔소리를 했던가, 하는 의문에 빠져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엄마의 잔소리를 시작으로 해서 우리가 어떻게 점점 관계가 좋아졌는지 글을 써 볼 생각이야,라고 했더니 엄마가 엄마 아빠는 너에게 칭찬을 더 많이 하지 않았니, 네가 엄마의 사랑을 천천히 깨달아서 우리 사이가 좋아진 거지, 하는 말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나는 파핫, 웃음을 터트리며 그런 거 아니거든! 하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엄마는 몰라도 나는 기억하고 있는 엄마의 잔소리가 아주 많다. 제일 처음 떠오르는 기억은 배변 후 뒤처리 하는 방법. 똥 닦는 것도 방향이 있어? 하고 귀찮아하며 엄마의 말대로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 이따금 소셜네트워크에 이런 거 배운 기억나는 사람 있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신기한 기억인데, 내 생각에는 별 거 아닌 것을 엄마가 꼼꼼히 가르쳐 준 탓인 것 같다. 진짜 궁금하긴 하다. 엄마가 없는 사람들은 누가 이걸 가르쳐 주지? 아니, 다른 엄마들도 이런 걸 가르치나?


학창 시절 가장 듣기 싫었던 잔소리는 당연히 공부하라는 소리였는데,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스킬들을 익혔다. 만화책을 책 사이에 넣어 읽거나 만화책을 허벅지와 책상 사이에 끼워서 숨기는 스킬들은 결국 엄마에게 다 들켜서 실패하고야 말았지만, 지금도 살아있는 스킬 중 하나는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멈추는 소리를 알아채는 것. 엄마 아빠가 늦는 날이면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멈추는 유난히 큰 ‘띵’하는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티브이를 끄고 발소리 내지 않고 방으로 뛰어가서 책상 앞에 앉아있곤 했다. 물론 동생은 내가 동생을 내버려 두고 나 혼자 방에 뛰어가버려서 동생 혼자 혼난 적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하긴 하더라. 아무튼 어디에도 뛰어갈 필요가 없는 지금도 나는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멈추는 소리만은 유난히 크게 듣는다.


가장 많이 들은 잔소리는 밥상 앞에서 무엇을 먹어라, 무엇 좀 그만 먹어라, 또는 무엇을 하지 말라는 말들. 많은 엄마들과의 공통점이겠지만, 엄마는 예순이 넘은 지금도 매일 몸무게를 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탄수화물을 조절하고 그러면서도 반주를 사랑하고 그만큼 매 끼 식이조절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분이다. 밥을 한창 먹고 있는데 파프리카를 먹으라며 내 입 앞에 들이밀고 데친 브로콜리 위에 김치를 얹어 먹으면 맛있다며 권하는 분이다. 오죽하면 7년 전 내 브런치의 제일 처음 글이 Mommy’s obbession이다. 나는 Control freak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거야말로 엄마에게 딱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최소한 내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컨트롤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크고 보니 밥상머리 예절이라는 게 있더라. 수저를 어떻게 다루는지, 음식을 씹을 때 입을 다물고, 입에 음식을 담고서 말하지 말라거나 하는 기본적인 예절을 부모님께 배운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느낀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예절을 실천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서다. 특히 입 벌리고 밥 먹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에 기함할 때가 가끔 있었다. 내 동생은 젓가락질을 배우려고 검은콩을 옮기는 연습까지 실제로 했었는데 뭐, 물론 젓가락질 못한다고 밥 잘 못 먹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대로 배워두면 보기 좋긴 하더라고. 밥상에서 부모님이 특별히 잔소리가 많았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구나, 하는 생각을 사회 생활 하면서 많이 했다.


제발 밥 먹을 때 반찬은 내가 알아서 먹겠다는 말은 이제야 엄마가 존중해 주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밥 먹다 말고 야채를 내 입 앞에 내밀지 않는다. 내가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하면 내 몸무게를 물어보지 않고 네 맘대로 하라고 한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은 내가 컨트롤하겠다는 나의 결연한 의지를 엄마가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마냥 포기한 걸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실제로 2년 전부터 다시 같이 살기 시작한 이후 엄마는 나에게 잔소리를 최소한으로 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다. 방 청소하라는 말을 안 한지는 꽤 되었으며 - 나는 멕시멀리스트이며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을 갖고 있다- 공부든 글 쓰기든 뭐든 안 하고 게임이나 하고 있냐는 말도 정말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나는 엄마 아빠가 내가 뭐든 배우고 성장하길 바란다는 걸 알고 있다. 나의 젊음이 아깝다고 느끼시진 않을까 염려도 된다. 그러면서도 나를 채찍질하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에 감사하다. 이런 존중으로 우리의 동거가 무사히 유지되고 있다고도 믿는다.


오늘은 엄마가 싱크대에서 이건 이렇게 하고, 잔소리를 하길래, 엄마, 나 이 집에서 산 지 2년이 넘었거든, 그랬더니 엄마가 웃으면서 엄마가 볼 때는 딸이 항상 걱정돼서 그러지, 그랬다. 그러고 보니 문득 요즘에는 내가 엄마한테 잔소리하는 게 엄청 늘었다.


엄마, 나도 엄마가 여기 모터 있는데서 손 이러고 있으면 다칠까 봐 얼마나 걱정되는지 몰라. 이제 우리 서로 걱정해 줄 때가 됐나 봐.


엄마도 그렇지만 나도 나이를 먹었다. 엄마의 잔소리는 줄어들고 나의 잔소리가 늘어나는 때가 된 것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나를 키운 것처럼 나의 잔소리는 엄마의 행복과 건강을 위한 것이어야 할 텐데. 엄마가 듣기 싫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엄마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큰딸이 되어야 할 텐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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