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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Sep 07. 2023

부모님과 함께 일하면서 느끼는 패배감

엄빠랑셋이살기 


처음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면서는 자유의 박탈로 인한 불편함이 제일 컸다. 그것 때문에 결국 분가를 했고, 2년 뒤 엄마의 설득으로 다시 집으로 들어올 때는 다른 이유로 마음이 힘들었다. 4년 넘게 운영한 카페를 정리하기로 했고 또 부모님의 부동산에서 함께 일하기로 결정한 뒤였다. 나에게는 사람이 30살이 넘으면 반드시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물리적 독립을 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사회에 패배한 기분으로 부모님 집에 다시 들어왔다. 


부모님은 사실 내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올 때부터 카페보다는 부동산에서 함께 일하기를 원하셨다. 그걸 마다하고 특히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카페를 내가 고집스럽게 계속 운영했던 것은 그만큼 부동산에서는 일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부동산에 대한 인식 때문. 공인중개사는 주변 친척 중에 한 사람도 없으면 이상할 정도로 흔한 직업인데 딱히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일은 아니다. 살면서 전월세를 전전하며 만나본 중개사들 또한 딱히 도덕적이고 선량한 사람들도 아니었던 영향도 있다. 내가 지금도 어디 가서 내 직업을 밝힐 때마다 당당하지 못하고 말 끝을 흐리는 이유다. 나는 꼭 내 소개 뒤에 부연 설명을 붙이곤 한다. ‘센텀시티에서 사무실을 위주로 중개를 해서 주택은 잘 모르는데요~’


부모님 집에 들어가면서 느낀 패배감은 부모님이 운영하는 부동산을 물려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내가 좀 더 당당하게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 내게 동기부여를 해주기 위해서 처음부터 부동산 대표 명의를 내 이름 앞으로 바꾸었고 수익도 부모님과 나 1:1로 나누자고 했다. 내가 초기에 기여할 일의 가치가 아주 적을 것을 생각하면 특히 수익 배분은 부모님의 엄청난 호의였다. 나는 그런 호의와 배려들이 감사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굉장히 죄송했다. 혼자서 당당히 멋진 사업체를 몇 개씩 이끌어도 모자란 나이에 나는 겨우 부모님 집에 기어들어와서 부모님이 10년 간 열심히 일구어 놓은 열매를 거저먹는 기분이 들었다. 


묘하게도 사람들은 내가 ‘부동산을 한다’고 건조하게 사실을 밝힐 때보다 ‘부모님이 10년 간 하신 부동산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면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젊은 내가 혼자 일구어 나가는 사업보다는 물려받아 일하는 쪽이 전망 자체는 더 좋다는 걸 아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그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백수 삼촌 같은 존재가 된 기분이다. 가업의 계승 정신 이런 게 나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건 단지 규모의 문제일까, 아니면 업종의 문제일까.


부동산이라는 게 데이터와 손님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쌓이는 일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그만두기가 굉장히 아깝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변에 부모님 연배의 부동산 하시는 분들은 부모님을 부러워한다. 따님이 하신대서 좋으시겠어요… 그런데 잘 모르겠다. 나도 내 아들이 이거 부동산 좀 했으면 좋겠는데 서울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네요, 하는 말속에 내 아들은 서울에서 할 일이 있어서요, 를 읽어 내는 건 얄팍한 내 피해의식 때문만일까… 


부모님과 같이 일을 하기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다 되어 간다. 어느새 대부분의 일을 내가 도맡아 하기 때문에 부모님은 이제 어느 물건이 나와있는지, 어떤 손님이 어느 물건을 찾는지도 헷갈려하신다. 그것도 그럴 것이 상가 매물이란 게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계속 직접 현장에 가고 계약서를 쓰지 않는 이상 실시간으로 현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이제는 내가 1:1의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 죄송하지 않을 정도로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 기반은 부모님 덕분이다. 제일 중요한 부동산 자리 선점부터 10년 간 쌓아온 손님 데이터베이스와 신뢰가 내가 이 자리에서 부동산 일에 적응하는 데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었다. 애초에 부모님이 아니었으면 이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겠지. 


또한 부모님이 업무 자체는 별로 하지 않더라도 의사 결정이나 감정 노동 면에서 굉장한 버팀목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엄마, 이 손님한테 전화 한번 더 해 볼까?' 하는 질문은 내가 주로 그 손님에게 전화를 하기 싫을 때 마음을 다잡으려고 하는 질문이다. 일전에는 나에게 엄청나게 독한 말들로 컴플레인을 해대는 바람에 통화 끝에 나를 울려버린 손님이 있었는데 전화를 받는 내내 옆에서 엄마가 가만히 응원의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면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고 전화기에 대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을지도 모른다. 갑질하는 손님들에 대해서 투덜투덜할 동지가 있다는 게 혼자 모든 걸 견뎌야 했던 카페 운영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참고로 카페 진상들은 잠시 참으면 지나가지만 빈도가 잦아서 문제였다면 부동산 진상들은 많진 않아도 돈이 걸려 있어서 내가 그냥 참는다고 해결이 되지 않는 게 문제다. 어떻게든 그들의 마음에 들게 해결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아빠의 경험과 조언이 큰 도움이 된다. 엄청난 컴플레인을 하던 손님이 결국 내용증명을 세 개나 보냈을 때도 아빠의 냉철한 판단과 조언이 아니었으면 나는 훨씬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심적으로 도움은 많이 되지만 앞에서 말했다시피 대부분의 실무는 내가 한다. 엄마 아빠가 근무 시간에 사무실에 있기 때문에 나는 짬을 내서 병원도 가고 가끔은 낮에 골프 연습도 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지만 내가 없을 때 손님이 오면 두 분은 이제 너무 당황하시기 때문에 웬만하면 자리를 뜨지 않으려고 한다. 하루는 엄마가 '낯선 사람이 오면 어떡해...'라고 해서 한참을 놀려 먹은 적이 있었다. '엄마, 낯선 사람이 뭐야, 손님이지, 손님!'


아빠는 9시 반에 출근해서 오전에는 사회 정치 스포츠 뉴스를 보는 일로 일과를 시작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온라인으로 바둑을 둔다. 바둑을 둘 때만큼은 대답이 잘 돌아오지 않으므로 엄마와 나 둘 다 아빠가 1시간 정도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놔두는 편이다. 오후에 아빠는 주로 웹소설을 읽는다. 아빠는 무협지 마니아다. 최근에 생신 선물로 이북 리더기를 사드렸더니 집에서도 리더기를 손에서 놓질 않아서 엄마한테 한 소리를 들었다. 아, 최근 헬스장을 끊은 아빠는 이제 아예 4시에 퇴근을 하고 헬스장에 들렀다 집에 간다.


엄마는 아침에 집안일을 조금 마무리해두고 느지막이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출근해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나와 일 얘기를 조금 한 다음 주로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를 보다가 깜박 잠들기도 한다. 그러다 오후 3시쯤엔 아빠 간식을 챙겨주고 퇴근하신다. 요즘엔 아빠랑 같이 헬스장을 끊어서 운동을 하고 집에 가기도 한다. 아무튼 엄마의 정식 근무 시간은 11시-3시 정도로 보면 되는데 오늘은 태풍이 온다는 이유로 하루 쉬기로 하셨다. 주 4일 정도 근무한다고 보면 되겠다. 


이렇게 적다 보니 내가 더이상 패배감을 느낄 이유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셀프 위로가 된다. 이런 게 글의 효용이란 건가... 아무튼 두 분의 일과는 보통 이렇게 흘러가지만 중간 중간 내가 일이 겹치거나 자리를 비울 때 필요하면 호수와 비밀 번호를 적어드리고 안내를 보내기도 하고, 계약서를 쓸 때마다 아빠께 검수를 부탁하기도 한다. 두 분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내게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사실 나는 다른 이유로 엄마 아빠 두 분 다 오래오래 일을 했으면 좋겠다. 두 분 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하시기 때문에 어차피 집에 앉아 있을 양반들은 안 되고, 이왕 뭔가 할 거면 익숙한 부동산 일을 그래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차인 누구와 임대인 누구를 헷갈려하면 나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도 이 사람은 언제 방문했고 어떻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인지 단호하게 숙지시켜 드리는데 그 이유는 엄마 아빠가 계속해서 두뇌를 쓰는 일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셋은 사무실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일을 하고 있다. 엄마 아빠의 노하우와 인맥, 경험 등을 바탕으로 내가 광고를 하고 주변 부동산과 연계해서 일을 추진한다. 나는 틈틈이 글 쓰고 운동할 시간을 벌고 내 소망컨대 부모님은 연세에 비해 오래 일을 하면서 장기적으로 활력과 정신 건강을 유지하시길 바란다. 


나의 패배감은 아마도 천천히 사라질 것이다. 불경기가 지나가고 혹은 글을 좀 더 잘 쓰게 되고 혹은 돈을 모아서 내 힘으로 다시 일어나게 되면 더 자신 있고 당당하게 나는 부동산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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