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빠랑 셋이 살기
어제 엄마랑 싸웠다. 엄마한테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엄마가 버럭버럭 화를 냈기 때문이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 어제 폭발했다. 결국 아픈 엄마를 돌보게 되는 건 내가 될 건데, 하는 말이 입술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엄마는 작년 말 넘어져 무릎 슬개골 수술을 한 이후에 부쩍 짜증이 늘었다.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만성 통증이 생긴 엄마의 기분을 헤아리고자 나름 애를 썼지만 나도 슬슬 한계치에 다다랐다. 최근 내가 집에서 속이 상한 이유 세 번이 모두 엄마가 별 이유 없이 짜증을 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진짜 대장이고 회장인 줄 알아? 우린 가족이잖아. 힘든 게 있으면 같이 고쳐나가려고 노력을 해야지, 그렇게 짜증 내고 화내면 같이 속상하기만 하잖아. 나는 의미 없는 말을 허공에 내뱉었다.
내가 대학을 가면서 집을 떠난 게 2005년, 그리고 카페를 하겠다고 부산에 돌아온 게 12년 뒤였다. 50대던 엄마 아빠는 그동안 60대가 되었다. 부산에 내려오자마자 제일 처음 느낀 건 부모님이 많이 늙었다는 것이었다. 산책을 좋아하는 엄마 아빠는 이제 오래 걷지를 못했다. 조금 걷다 보면 허리나 무릎이 아프다며 자리에 주저앉아 쉬었다. 매일 뭘 자꾸 잊어버렸다. 내가 며칠 전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할 때, 가끔 기억나는 척 연기하는 엄마를 볼 때 내 마음은 쿵쿵 내려앉았다. 노화라는 건, 30대인 내가 흰머리가 생겼다느니 주름이 늘었다느니 불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10여 년 만에 가까이서 일상을 함께하는 엄마 아빠는 어느덧 말 그대로 노인이 되어 있었다.
한동안은 이 모든 걸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었다. 아빠의 세 개의 열쇠 걸이를 보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내가 나이 드는 만큼 내 부모님도 늙는 건 당연한 건데 이걸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늙은 엄마 아빠를 옆에서 보는 게 안쓰럽고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같이 살면서 더 지켜본 바로 아빠는 건망증에 대비하는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여럿 만들어 뒀다. 예를 들면 차 열쇠 걸이를 세 개 만들어서 지하 1층에 차를 대 놓았을 때는 제일 윗 칸에, 지하 3층에 차를 대면 제일 아랫 칸에 걸어두는 식이었다. 많이 걷지는 못하더라도 두 분은 항상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했다. 많이 걷는 대신 오랫동안 더 걸을 수 있게 아침저녁으로 자주 걸으면서 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피부 노화는 피부과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동생이 결혼하기 전에 아빠는 얼굴에 레이저 시술을 받고 얼굴이 훨씬 밝아졌다. 요즘 엄마는 눈두덩이가 쳐지는 걸 방지하는 수술을 할까 고민 중이다.
엄마 아빠가 늙음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서 나도 서서히 엄마 아빠의 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아예 마음을 비우고 ‘엄마 아빠는 노인이다‘ 라고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그러는 편이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쉬웠다. 무엇보다 늙음을 대하는 엄마 아빠의 자세를 보고 배웠다. 엄마 아빠는 억울해 하거나 답답해 하지 않고 늙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나도 그 방법들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엄마 아빠의 건망증에도 조바심 내지 않고 차근히 반복해서 알려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이제 반사신경이 느려져 작은 접촉 사고를 내곤 하는 아빠 대신 내가 운전하는 횟수를 늘렸다. 엄마 아빠의 느린 걸음걸이나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에도 놀라고 걱정하는 대신 조금 기다렸다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요령을 연습했다.
그래도 제일 걱정되는 건 역시 엄마 아빠의 건강이다. 엄마가 아무리 싫어해도 건강 검진에 대한 잔소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욕심 같아선 치매 검사도 매년 받게 하고 싶은데 2년 전에 한번 받고 이상이 없다고 한 뒤로 증상이 생기면 다시 받는다고 하셔서 내가 일보 후퇴했다. 하긴, 치매야말로 제일 두려운 병이니까 검사 자체가 싫을 것도 같다. 대신 내가 부동산 일을 하면서 꾸준히 몇 호에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떤 손님에게 뭘 소개해줬는지 같은 걸 자세히 알려준다. 어제 얘기했던, 지난주에 왔던, 하고 말을 꺼내며 엄마 아빠가 기억하는지를 매의 눈으로 살펴본다. 기억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대답들을 기다린다. 치매만큼은 내가 제일 먼저 발견하겠다는 기분으로, 내가 무서워서 치매 걸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얼마 전에 부모님과 함께 일한다는 사람을 동호회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좀 나누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일한다고 했더니 대뜸 힘드시겠어요, 하면서 내 손까지 잡으려고 했다. 바로 괜찮다고 하기도 뭣해서 웃고 말았는데 사실 지금 우리는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어서 정말 괜찮다.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서로를 돌봐주고 있다는 느낌, 내가 안 하면 엄마 아빠가 힘들겠지 하는 마음 같은 것들.
늙는다는 건 본인도 그렇겠지만 주위에서도 연습을 많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서글프기야 하지만 그래도 마냥 슬퍼하지 말고 늙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연습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변고가 없다면 나 또한 '늙었다'는 감각을 지닌 채 '젊은' 때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