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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Sep 19. 2023

가족들의 영원한 바리스타


어느 여름날, 아빠가 ‘아아’를 달라고 했다. 으응? 아빠가 ’아아‘를 아는 게 신기해서 나는 거듭 물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달라고?“ 

“얼음 넣은 아메리카노 맞나?”


아빠는 올여름 한동안 나에게 아침마다 아아를 달라고 했다. 그게 뭔지는 아는데 발음은 영 어색하니까 스타카토로 ’아.아’를 달라고 하는 게 아빠의 귀여움 포인트였다. 내가 알아들으니 그냥 넘어가도 될 텐데 나는 아빠가 부드럽게 ‘아아’를 발음할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을 시켰다. 나는 귀여워서 웃는 거지만 다른 사람들은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들어서이기도 하고, 작은 것이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부모님께 도움 혹은 자극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엄마가 ’샷추가‘라는 용어를 배워가서 친구들과 간 카페에서 라떼에 샷추가를 해 드시곤 입맛에 딱 맞더라는 얘기를 할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아빠는 매일 나보다 약간 일찍 집을 출발해서 사무실에서 나를 기다린다. 사무실이든 집에서든 캡슐 머신을 쓰기 때문에 혼자서도 얼마든지 커피를 마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내가 올 때까지 30분 여를 기다린다. 나는 사무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커피 향이 나지 않으면 ”아빠 아직 커피 안 마셨네~“ 말한다. 아빠는 매번 오늘 나를 처음 보는 것처럼 반긴다. 나는 귀찮아하는 소리를 내며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는데, 물이 끓는 사이에 자리에 앉아 커피의 존재를 깜박하기도 한다. 그러면 한참 뒤 아빠가 ”커피 아프리카에서 잘 오고 있나~?“하고 묻는다. 나는 “어~ 케냐에서는 도착했는데 브라질 커피가 안 왔네~” 하고 너스레를 떨고 깔깔거리면서 아빠 잔을 받아 와서는 뜨거운 물로 잔을 한번 헹구고, 커피를 내리고, 뜨거운 물로 연하게 농도를 맞춰서 아빠 자리로 가져다 드린다. 아, 여름에는 아아를 달라고 하시기 때문에 얼음을 미리 얼려둬야 하는 귀찮음이 배로 든다. 따로 아아 값을 청구한다며 투덜거려 봤지만 그래봤자 얼음 기계 같은 걸 사주시진 않을 것 같다. 


내가 아빠의 아침 커피를 내려드리는 건 내가 부모님 부동산 바로 옆에서 카페를 할 때부터였다. 내가 서울에서 4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 가까이 놀고 있을 때, 부모님이 좋은 카페 자리가 있다며 부산에 내려오라고 했다. 원래 2층에서 부동산을 하시던 부모님이 1층 자리로 내려오면서 한 칸을 반으로 분할해서 8평 남짓한 카페 자리를 내게 내준 것이다. 당시 21층 짜리 큰 건물에 고가의 커피 프랜차이즈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리도 좋았고 월세도 부모님께 내는 것이니 눈치 볼 일도 없었다. 카페나 한번 해보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나로서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나는 속성으로 커피를 배우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는 대로 부산에 내려왔다. 물론 그때는 이렇게 아예 주저앉아 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엔 내가 8시에 먼저 출근해서 아침에 출근하는 손님들을 바쁘게 받아내고 한숨 돌릴 때쯤 아빠가 9시 반에 부동산으로 출근했다. 아빠는 내게 여러 과일과 야채를 갈아 만든 주스를 건네주고 나는 아빠께 핸드드립 커피를 한 잔 내려드렸다. 


재밌는 건 그전까지 부모님은 핸드드립은커녕 아메리카노도 사드시지 않는 분들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영혼 같은 믹스커피를 즐겨드시던 분들이 카페 하는 딸 때문에 입맛이 확 바뀌었고 지금은 나보다도 아메리카노를 많이 드신다. 어디 외식이라도 하고 나서 두 분이 식당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커피가 맛없다고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면 나는 혼자 웃는다. 나는 카페를 운영하고 나서 되려 커피 맛에 너그러워졌다. 좋은 원두와 깨끗한 머신 상태를 유지해서 항상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짜 커핀데 말해 무엇하리, 싶은데 부모님이 옆에서 까탈스럽게 여기 커피는 원두를 물에 담갔다 빼 것만 같다느니 하고 구체적으로 투덜거리면 마냥 웃음이 난다. 이건 다 엄마 아빠 입맛을 버려놓은 제 탓입니다, 하하하. 


부모님은 처음에는 내가 제일 많이 연구했던 아메리카노부터 맛을 들이셨고, 나중에는 두 분이 따로 입맛이 세분화되었다. 아빠는 신맛 있는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린 것을 좋아하셔서 아침마다 보온 통에 한가득 내려 드리면 하루 종일 조금씩 나눠 드셨다. 오후가 되면 리필을 요청하기도 했다. 엄마는 약간 탄 콩 냄새가 좋다며 진하게 내린 아메리카노를 점심 식후에 즐겨 드셨는데 가끔 아주 진하게 내린 라떼도 좋아해서 스팀 친 우유가 남으면 카푸치노보다 작은 컵에 엄마용 라떼를 만들어드리곤 했다. 


그때부터 나는 가족들의 바리스타가 되었다. 원래 커피를 좋아하는 동생도 내 커피를 좋아했다. 멀리 살던 동생이 가끔 부산에 올 때마다 신메뉴도 먹이고 동생이 좋아하는 라떼와 핸드드립을 내려줬다. 핸드드립이며 아메리카노를 못 내리는 주말에는 주로 콜드브루를 준비해 놓고 엄마 아빠 입맛에 맞게 커피를 타드렸다. 어딘가 여행을 갈 때도 콜드브루는 항상 넉넉하게 준비해야 했다. 두어 통은 여행지에 가서 먹고 또 두어 통은 동생네 부부한테 나눠줬다. 가끔 엄마 아빠 모임에 갈 때 친구들 선물로 콜드브루를 포장해 가시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콜드브루 포장할 때마다 꼬박꼬박 돈을 받았기 때문에 수입도 쏠쏠했고 무엇보다 내가 부모님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약간은 되나 해서 기분이 좋기도 했다. 


8평도 안 되는 작은 카페를 하는 딸이 과연 자랑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무심결에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가 복잡했다. 돈 많이 주고 잘 나가는 외국계 반도체 회사를 그만둔 이상 나는 그것보다는 나은 뭔가가 되는 것으로 내 선택을 증명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호기롭게 시작한 카페 운영하는 일은 우선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이 들었고 영세 자영업자가 혼자서 그것도 잘 해결해야 하는 마케팅이나 세무처리 따위도 낯설고 매번 어려웠다. 갈수록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졌다. 체력이 달렸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글 쓰는 일도 점점 하기가 힘이 들었다. 힘이 드니까 자꾸 알바 쓰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고 그럴수록 수익은 떨어졌다. 막바지에는 몇 달이나 월세를 못 내기도 했다. 내가 게을러서 카페 운영을 더 열심히 못 하는 것만 같아서 언젠가부터 죄책감과 패배감에 시달렸다. 잔뜩 지친 채로 4년 넘게 운영하던 카페를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해보면 알겠지만(?) 폐업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대신 우리 가족의 작은 고민이 시작됐다. 우리들의 커피는 어쩌지? 부동산 사무실에서는 캡슐머신을 쓰기로 했고, 집에서만은 핸드드립을 내려 먹으려고 했는데 몇 번 하다 보니까 내가 너무 귀찮았다. 그러니까 주말에는 점심때까지 자는 나를 부모님이 기다렸다가 아침 커피를 마시는 게 불가능했다. 몇 주만에 핸드드립 기구들을 다 상자에 넣어두고 캡슐머신을 하나 더 샀다. 나는 여러 캡슐을 바꿔가며 다양한 맛을 마셔보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몇 개 먹어보더니 하나를 정해 이게 제일 좋다, 하고 재빨리 결정을 내려버렸다. 두 분은 그 뒤로 절대 입맛이 바뀌지 않는다. 친구는 일리 캡슐이 맛있다던데… 바뀐 캡슐 맛은 귀신같이 알아채는 두 분 때문에 나는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중이다.


아빠는 출근 직후와 오후 간식을 먹은 후 이렇게 두 번 커피를 마신다. 첫 번째 커피는 나를 간절히 기다리지만 두 번째 커피는 알아서 잘 드시는데, 내가 왜 오후 커피는 나한테 말 안 하냐고 했더니 ”나도 눈치가 있지…“하고 웃으셨다.


문득 아침마다 30분이나 나를 기다리는 아빠를 생각했다. 부동산 양쪽 문을 열고 신문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켜는 시간 동안 커피 내리는 건 정말로 쉬운 일 일 텐데, 굳이 굳이 30분을 기다려 나에게 커피를 부탁하는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는 핸드드립으로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면서 기분 좋은 뿌듯한 미소를 짓던 나를 기억하고 싶은 게 아닐까. 누가 내려도 똑같은 맛일 캡슐 커피조차도 딸이 내려주면 더 맛있다는 말로써, 사실은 내게 내 커피가 정말 맛있었다는 말을 자꾸 해주고 싶어서 그러시는 건 아닐까. 고맙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더 하려고, 내 커피가 사실은 내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딸한테 사랑한다고 하고 싶어서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달라고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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