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윤 Dec 27. 2023

나의 30일 금주 일기 (3)

본격적인 30일 금주가 시작되었다. 일기 겸, 다짐 겸 페이스북에 매일 금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원래부터도 일주일에 두 번만 술을 마셨기 때문에 처음 3일은 괜찮았다. 하지만 약속이 없던 토요일, 나는 왜인지 너무너무 심심했다. 저녁이 되자 습관처럼 와인 한 병 하면서 영화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코올에서 채우던 도파민 등 행복 호르몬이 없어지자 지루함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내게 알코올은 즐거움이고 행복이고 친구였던 거다. 나는 다행히 준비해 뒀던 무알콜 맥주를 두 잔 마시면서 기분을 내고 괴물이 나오는 무서운 드라마를 보면서 지루함을 달랬다. 


6일 째, 좋아하는 와인 바에 가서도 탄산수만 마셨다는 인증샷을 올리자, 친구가 굳이 술 근처로 가면서 술을 참아내는 내가 대단하다고 했다.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맞다, 술을 끊고 줄이려면 술을 마시는 사람과 환경 자체와 멀어져야 한다. 하필 부산에서 제일 친구를 많이 만든 모임이 와인 모임이다. ‘하필’이 아니다. 내가 술을 좋아하니까 그 곳에서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그 친구들을 만나고 와인바 같은 데에 가면서 술을 참는 건 지금 금주 기간에는 가능할지 몰라도 나중에 술을 절제하면서 다시 마시고 싶을 때는 잘 생각해야 할 부분이었다. 


두 번째 고비는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찾아왔다. 단골 와인바의 사장님이 내가 좋아하는 피노누아를 판매한다는 카톡을 보내왔고 두어 병 고르면서 와인 설명을 읽는데 침이 꼴깍 넘어갔다. 와 피노누아 진짜 맛있겠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구에게서 그다음 주에 우리 둘 다 좋아하는 레스토랑에서 방어회 팝업을 하니까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왔다. 설명을 아무리 봐도 방어회를 먹으면서 술을 참는 것 자체가 고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금주 포기하고 팝업 갈까 하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었지만 나는 그마저도 참아내고 친구에게 나는 못 갈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 날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면서 내 문제는 굴을 먹어도 화이트가 먹고 싶고 눈 오면 따뜻한 사케가 먹고 싶고 날씨 좋으면 또... 끊임없이 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문제였다는 걸 떠올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 다음 주말은 일부러 약속을 많이 잡았다.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보고 싶은 친구들을 보러 광주에도 다녀오고 친구 공방에 가서 밀랍초와 판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나니까 더 이상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술을 좋아하던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숙취가 당연히 없었고 숙취 뒤에 따라오는 무기력하고 나른한 시간들이 사라졌다. 의욕이 샘솟아 내년부터 독서 모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사람들을 모으고 읽을 책을 선정하려고 책을 사고 또 읽어 대느라 바빴다. 오랜만에 지적 허영심을 잔뜩 채워 넣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동안 책을 안 읽은 건, 아니 안 읽은 건 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술이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문득 한동안 얼굴에 뾰루지가 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엔 살짝 절망까지 느껴졌다. 어릴 땐 나지도 않던 뾰루지인지 성인 여드름인지 뭔지 수 년을 고민했던 피부 트러블이 바로 술 때문이었다니! 깨달음과 동시에 절망을 느꼈던 건 내게 너무 많은 금주의 이유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돈과 건강(육체적+정신적) 때문에 금주를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학습과 미용 분야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고 있던 내 음주 습관… 30일 짜리 금주 프로그램의 효과는 단단히 얻었으나 그럼 그 뒤는 어떻하지? 금주의 장점을 깨달을수록 생겨나는 새로운 의문에 나는 괴로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30일 금주 일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