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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사라지면 삶은 멈춘다

[6. 질문이 사라지면 삶은 멈춘다.]



기억 전달자 속 조너스. 조너스는 12살이 되자 기억 보유자로 임명된다. 조너스가 있는 공동체는 직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정해준다.  평등을 빙자한 억압. 독재 사회.

기억 보유자로서 과거 기억 전달자에게 다양한 기억을 전수받는 과정에서 조너스는 세상이 '흑백'이 아닌 다양한 색채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분노/ 슬픔/절망/전쟁 등 마음이 쓰린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늘 같음 상태로 정제되어 있는 세상 속에서 조너스는 의문을 제기한다.

" 내가 속한 이 사회의 모습이 맞는 것인가. 옳은 것인가."



기억 전달자라는 책은 고학년 글쓰기 수업에서 활용한 도서이다. 학생들은 꽤 두께가 있고 표지가 어려워 보이는 이 책을 보자마자 기겁했다. 하지만 모든 책이 그러하듯 읽다 보니 빠지고, 결국 수업 시간에 밝은 얼굴로 앉아있었다.



독서록을 완성하기 위한 글쓰기를 지양한다. 다만 이 책을 읽고 화두를 던진다.

" 왜?"

그야말로 '왜?" 잔치다. 내용을 비판해도 좋고, 상황을 추측해도 좋다.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에게 질문을 던져도 좋다. 모든 글쓰기의 시작은 질문에서부터 비롯된다. 한참 친구들과 왜 그럴까?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쓰고 싶은 감정이 정리된다. 채반에 굵은 찌꺼기들이 걸러지듯 글쓰기에서도 이런 질문의 과정을 통해 버려야 할 부분들이 생기고 고운 가루들을 모아 내 글이 완성되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에서 치열하게 질문했던 시기는 아이를 낳아 키우며 정신없던 때다.

" 이거 맞아?"



하루 중 한 번은 육성으로 되뇌었던 말이다. 이게 맞는지 묻고 싶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보수 막노동.

당연한 엄마로서의 역할.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는 말 자체가 죄의식처럼 다가오던 때였다.

아이 이유식을 먹이며 텔레비전을 봐도 못할 짓 같았다. 집안이 어질러져도 내 잘못 같았고 주방 정리가 지저분하면 이것도 내 역할 잘 못한 나 때문인 것 같았다. 24시간 동동거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바쁜데 끝나지 않는 집안의 어지러움 속에서 난 길 잃은 아이가 된 것 같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 이거 맞아? 다 이렇게 힘든 것 맞냐고.!"

묵묵하게 육아를 견뎌내 온 선배들은 유모차를 끌고 가는 내 모습도, 아기 띠를 한 채 장을 보고 걷는 내 모습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자신들 역시 처절하게 견뎌온 날들이었을 테니 젊은 새댁의 건강한 신체는 곧 육아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질문이 독서로 이어졌다. 궁금해서 찾았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인지 아니면 모두 힘든 것인데 말을 안 해주는 것뿐인지, 아니면 어딘가에 나처럼 미치겠는 마음 상태를 털어놓은 사람이 있는지..

그래서 아이와 함께 도서관 2층 철학 도서와 심리학, 육아서 코너를 돌아다니며 내키는 책들을 무작정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때론 위로받았고 때론 눈물이 났다. 뛰쳐나가려는 마음이 굴뚝같은 엄마의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미안해 눈물이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침 이유식을 덜어 먹이며 나는 아직 저녁까지 한참 남은 시간이 두려웠는걸.

똑같이 공부해 대학 나와 나도 취업해 일을 했는데 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가. 끝나지 않는 부르짖음은 다양한 곳으로 화살을 날려 때론 남편을 할퀴고 때론 아이들에게 모질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질문'덕에 난 살아남았다고 자부한다.

이 '화'가 누구를 향한 화인가. 내 인생은 불행한 것인가. 아이를 낳은 것은 내 선택인가 아닌가. 육아로 인해 나의 경력은 평생 단절된 것인가. 엄마의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최지은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인가. 다이어리에 "왜?"로 시작해 물음표로 귀결되는 문장들을 써나가며 점차 길을 닦아갔다.

질문을 하니 길이 생겼다. 때론 이 길이 아니구나 되돌아올 때도 있었다. 한참 가다 보니 방향을 잘못 잡아 아차!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질문과 고민 덕에 나는 늘 더 씩씩해질 수 있었다. 좌절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아이들을 일찍이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충분히 함께 시간을 보낸 것도 '질문'에서 시작해 얻은 나만의 해답이었고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 최지은, 너 왜 안 해보고 걱정만 해?"라는 질문 하나에서 시작했다. 엉뚱한 질문부터 내 하루 원초적인 질문 사이사이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었던 니체, 쇼펜하우어, 장자, 플라톤, 스피노자... 그들은 내가 인생에서 질문의 정수를 뽑아낼 수 있도록 도운 조력자다.



질문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시간은 멈춰있는 삶이다. 질문이 사라지면 삶은 멈춘다. 조너스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생활처럼.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불합리한 사회에는 질문을 던질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질문은 한 줄기 희망이 되어 내가 다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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