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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Mar 06. 2021

홍대 관광특구보다 응급한 게 많다고 생각한다

장문이지만 읽어주셨으면 한다. 홍대 관광특구보다 응급한 게 많다고 생각한다.


작년(2020년) 7월 홍대 관광특구 지정을 위한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이래로 관광특구 지정 반대를 위한 활동에 참여해왔다. 마포구청은 2016년 이미 관광특구를 한 차례 추진했다가 지역주민, 특히 예술인들의 반대로 추진을 보류한 적이 있다. 2020년, 다시 추진하게 되면서 마포구청은 특구의 핵심지역인 서교동 일대의 건물주협회, 상인회 및 관변조직인 주민자치회 등을 조직했다.


(참고로 홍대건물주협회와 홍대상인회의 회장은 모두 이창송 님이다. 개인적으로는 임대인 위주의 건물주협회와 임차인 위주의 상인회가 어떻게 동일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공유해 한 사람이 회장으로 선임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 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주민설명회부터 난장판이었다. 관광특구를 지정하는데 있어 찬성하는 의견이 나오면 모두 박수를 쳤고 젠트리피케이션 유발 등의 이슈에 대해 질의하며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뉘앙스의 의견이 나오면 크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설명회의 진행에 대해선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의 정문식 활동가의 아래 포스팅에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https://www.facebook.com/moonshik.jeong/posts/3319679101432893


8월, 연서명을 받고 토론회를 진행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연서명에는 500여 명이 함께 했다. 또한 상당히 많은 분들이 온라인 토론회를 찾아주셨다. 마포구청 관광과에서도 해당 토론회에 참석했다.


가을이 되자 코로나19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은 고사하고 활동가들끼리 만나 회의를 진행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 사이 마포구청은 차근차근 스탭을 밟아나갔다.


몇 번을 만났다. 하루는 구청에서 시의원, 구의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한 시의원은 "문화예술 육성과 관련한 제안으로는 예산을 따올 수 없고, 지역에 예산을 따오려면 관광특구를 해야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또 한 공무원은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 문제가 되는 게 있나요? 동네가 좋아지니까 부동산이 올라가는 거 아닌가요?"라고 우리에게 되물었다. 우리가 낸 의견은 '귀중한 시간'을 낸 것치곤 '발전적이지 못한' 의견으로 치부되었다. (개발에 반대한다는 것은 발전에 반대한다는 측면도 있으니, 말장난 같지만 어떤 측면에선 타당하기도 하다.) 마지막 한 구의원은 이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싶어했다.


"홍대가 죽으면 마포가 죽고 마포가 죽으면 대한민국이 죽는다."


"소통을 하면 모든 게 다 이루어지지 않나? 지역의 발전을 위해 함께 가자."


(그 간담회가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 있던 구의원 중 일부는 예산유용과 관련된 이슈에 휘말렸다. 한 구의원의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업무추진비 1,200만 원을 결제한 이슈, 공무원, 의원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고 내역을 올렸는데 본인들은 식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슈라던지. 그런데 사실 법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의원분들의 지역발전에 대한 진정성과 선한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려는 입장에서. 나는 그들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지역발전을 위해 함께 가는 것'은 관광특구 사업을 위한 민-관 협의체에 직접 들어오라는 사인이었다. 제안을 주셨던 마포구청에는 죄송한 마음이지만, 우리가 협의체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관광특구 지정을 전제로 한 협의체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대신 우리가 살고 활동하고 있는 터전, 마포구와 홍대앞이라는 도시의 미래에 대해서 민간과 관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물론 이 요청은 '귀중한 시간'을 내는 것치곤 '발전적이지 못한' 의견이기 때문에 묵살되었다.


하지만 발전이 가장 중요한 걸까?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것을 보아왔다. 내가 좋아하던 가게, 내가 좋아하던 공간, 내 추억 속에 있는 거리 같은 것들이 너무나 쉽고 빠르게 바스라져간다. 마포구는 문화예술을 중심에 둔 관광특구를 이야기한다. 정작 예술가들의 의견은 발전적이지 못하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홍대앞은 사라져간다. 지리적인 위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마음들이 사라져간다. 하드웨어를 때려박고 건물을 올린다고 떠나간 마음이 돌아오진 않는다. 정말 응급한 것은 마음을 잡아두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을 행정에게 요구하는 것은 물론 무리다. 무리지만 가만히 내비두는 것이 답도 아니다. 우리는 너무 꿈이 큰 것 같다. 그러나 행정도 큰 꿈을 꾸었으면 한다.


마포구청은 지난 2020년 12월 말, 자신들이 발주한 관광특구 지정과 관련된 연구보고서가 마무리 되지 않았지만 일정상 어쩔 수 없이 홍대 관광특구 지정을 서울시에 신청했다. 서울시 관련 부처에 확인해본 결과, 신청은 완료되었고 서울시에서 다시 타당성 검토 등을 수행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특구 지정'을 통한 지역 개발 및 발전이라는 이슈에 대해선 이미 많은 연구가 있고, 대부분은 이미 지난 모델이며 실효성이 없다는 결론이다. 서울시도 그 결론들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시는 재보궐선거로 정신이 없어 보인다. 행정조직의 속성상, 민감한 정치적 이슈는 시장이 선출된 이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겐 상황에 개입할 약간의 시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에겐 우리의 목소리를 낼 응당한 권리가 있다.


각자의 생계와 일이 있는 탓에 총력을 기울일 수 없다. 그건 이 이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목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많이들 십시일반 해주셨으면 한다.


2020 홍대 관광특구 대책회의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maposights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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