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하고 책도 써요』
1편
감성인간서점 폐업하는 날
마지막 박스 테이프 질까지 마무리했다. 다 정리하고 보니 박스만 십여 개 되었다. 이제 남은 짐은 두닷에서 구매한 화이트 테이블과 감성인간서점 글자가 박힌 나무 입간판, 마찬가지로 두닷에서 구매한 의자 4개, 박스 십여 개가 전부였다. 감성인간서점은 처음에 왔던 공실의 상태가 되었다. 인테리어도 거의 하지 않아 그 모습 그대로였다. 기둥 옆 정수기는 다음날 기사님이 와서 해체해주시기로 했다. 사용한 게 불과 3~4달밖에 되지 않아 위약금이 꽤 나왔다. 18만원. 그래도 예상보다 적게 나왔다. 인터넷도 해약해야 하는데 그건 위약금이 더 나올 것 같아 해약하지 않고 지금도 다달이 내고 있다. 이제 정리를 마치고 이틀 전 연락해 두었던 트럭 기사님을 기다렸다.
서점 안에서 통유리 밖을 바라보는 나의 기분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독립서점 개업만 꿈꿔왔던 4년이란 시간이 무색하게 나는 후련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감성인간서점을 운영했던 기간은 불과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제대로 문을 열고 영업했던 기간은 많이 쳐줘야 네 달이었다. 그토록 절실했던 꿈이 어떻게 반 년도 가지 못해 아무 감정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되어 버렸을까. 나도 신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금전적으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서점 자체를 살릴 수 있는 일을 했어야 했다. 내가 어떤 서점을 만들고 싶은 건지 구현하는 데 몰입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서점을 열고부터 손해를 보지 않는 것에 몰두했고, 돈이 되는 일을 찾다 보니 기존에 하던 블로그 일만 하게 되었다. 서점은 점차 사무실이 되어 버렸다. 책은 그저 전시 상품일 뿐, 그에 관한 일은 거의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책으로는 돈을 벌 수 없는 게 독립서점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서점이란 정체성에 맞게 그것에 관한 일을 꾸준히 기획하고 시도했어야 했는데, 그러려면 달마다 발생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즉 나는 그게 되지 않았다.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선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매달 발생하는 임대료와 유지비 등이 버거웠다. 내가 그런 사람이란 것을 깨닫자 그 순간 서점을 더 끌고 갈 동력을 잃어버렸다. 길게 고민할 필요 없이 서점을 접자란 결론에 다다랐다. 그렇게 6개월 만에 서점을 정리한 것이다.
부동산 상황이 좋지 못하던 시기였는데도 다행히 서점을 내놓은 지 한 달 반 만에 나갔다. 가계약이 되고서 한 달 정도 여유 시간이 남았는데 그때 서점 내 모든 것들을 정리했다. 다행히(?) 대부분의 가구와 물건이 새것에 가까운 것들이라 물건은 쉽게 정리되었다. 개당 25만원씩 주고 구매했던 책장을, 그것의 5분의 1인 5만원에 5개를 전부 팔아버리고, 20만원 주고 구매했던 테이블도 6만원 주고 되팔았다. 100권이 넘게 남아 있던 책들도 정가의 4~50% 가격으로 대부분 넘겨 버렸다. 사실 많은 물건을 들여놓지 않아 금방 팔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서점을 시작할 때부터 언제든 발을 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점이 안정되면 쇼파도 들이고 인테리어도 해야지, 란 접근 방식은 나는 이것에 올인하지 않겠다는 마음과 같았고, 그런 마음으론 결코 사업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즉 나는 사업할 그릇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은 왜 꼭 겪어봐야 깨달음을 얻을까 싶지만 그것을 경험했기에 내가 한 단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비싼 수업료를 냈다. 4년간 꿈꿔왔던 것이지만 그것에 단 하나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 사실 서점 생활은 맞지 않은 것투성이였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혼자 텅 빈 서점에서 일하는 것이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하루에 몇 명씩 찾아오는 손님이 머무는 시간은 단지 1~2분 내외고, 저녁에 독서모임을 하는 것도 내 외로움을 달래지 못했다. 밥을 먹는 것도 혼자, 산책하는 것도 혼자, 일하는 것도 혼자다 보니 내 외로움은 점차 깊어졌다. 물론 적응기라 그런 것을 안다. 그 지역 사회에 적응하는 순간 한두 명씩 친분 관계가 생기고 점차 할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 서점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그 이후로 나는 명확하게 깨달았다. 사업은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다. 50만원을 벌면 다시 100만원, 200만원을 베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으로 꼭 성공하겠단 야망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하지만 나는 안정 자산이 없으면 금방 무너지는 사람이다. 투잡을 할 때 그토록 자유로움을 느꼈던 이유는 내 성과가 부족하더라도 꾸준히 월급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망하든 잘 되든 월급만큼은 일단 확보한다. 그런 안정자산이 있다면 나는 강한 도전 의욕을 느낀다. 다만, 투잡은 시간적 여력이 늘 부족하기 때문에 한 가지에 충분히 몰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것의 딜레마를 항상 느끼지만 그래도 매달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사업은 더 이상 못할 것 같다.
잠시 상념에 잠겨 있자 기사님이 약속한 시간에 도착했다. 후진으로 서점 출입문 앞 가까이 트럭을 대었다. 기사님은 차에서 내리더니 서점 쪽으로 다가와 실을 짐의 양을 확인하였다.
"이게 다예요?"
얼핏 봐도 1톤 트럭에 충분히 실을 양이었다. 기사님과 몇 번 왔다갔다 하니까 짐을 금방 실었다. 끝으로 출입문을 잠그고 1층 주차장 안쪽에 있던 무인택배함 안에 열쇠를 넣었다. 이제 완전히 끝이었다. 혹시 모르는 일이지만,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곳이라 생각하니 괜히 아쉬운 감정이 잠시 일었다. 그렇게 간절했던 꿈이 이렇게 시원하게 접히다니. 나는 마지막으로 텅 빈 서점의 모습을 눈으로 담고 바로 트럭 조수석에 탔다. 가을 기운이 점차 만연해지는 10월 초의 아침이었다.
우리 집까지 차를 타고 20분이면 도착했다. 평일 낮 시간이어서 강변북로엔 차가 별로 없었다. 기사님과 나는 말 없이 도로 위를 달렸다. 1년 9개월의 복무 기간을 마치고 전역했던 그날처럼 날은 어찌나 청명했던지. 아쉬움을 뒤로 하고 후련함만 남았다. 이제 그런 꿈을 다시 꿀 수 있을까. 요즘 다시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 보면, 언젠가 새로운 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은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니 단언하지 않겠다. 그보다 독립서점 개업처럼 간절한 꿈이 새로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런 꿈이 생기면 나는 다시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23.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