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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Oct 25. 2021

커피 한 잔의 장례식

너무 무력할 때는 끝을 생각해본다. 

 꾸준히 해오던 회사 일이 너무 벅찬 시기가 있었다. 결국 1개월 정도 뒤에 소속을 옮기게 되었는데 분명 어제와 비슷한 일을 하고있었지만 그 일의 끝이 있다고 생각하니 일을 해낼 힘이 났다. 그래서 서른 둘의 끝자락을 보내며 삶이 무력하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멍하니 참석도 못할 나의 장례식을 생각해본다.

 

 장례식은 언제 열릴지 모르는 삶의 이벤트이다보니 늘 준비없이 시작되지만 정할수만 있다면 1주일간 내가 좋아하는 카페를 빌려서 장례식을 열고 싶다. 무서운 향 냄새 대신 고소한 커피향이 감돌고, 끼니를 챙기지 못하고 온 조문객에게는 달콤한 디저트로 슬픔을 달래주면 어떨까. 내가 좋아했던 책들과, 아끼던 물건들과 사진들이 곳곳에 놓여있고 좋아했던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그런 곳에서 나를 겪었던 사람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꺼내며 커피 한 잔으로 나를 보내주는 그런 평온한 끝. 황망함에 엉엉 울기보다는 지나간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랜만에 만난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다시 다독이며 일상으로 잔잔히 보내주는 그런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


 갑자기 월요일에 휴가를 쓰고 시티뷰가 시원하게 보이는 카페에 와서 장례식을 떠올리다니 나 조차도 웃기지만, 이렇게 어렴풋한 끝을 떠올려보면 의외로 당장 내일 복귀할 일상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겁 없이 쌓이는 하루하루와 앞으로 쌓일 나날들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질 때는 또 구체적인 나의 끝에 디테일을 더해봐야지. 쓰고보니 우울의 모서리에 발끝으로 서있는 사람 같지만 오히려 평온한 나날들이 지속되어서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것 같다. 사유하는 것은 좋지만 삶의 의미에 대해 너무 곱씹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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