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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대용 Jan 27. 2018

사실 내 여행의 절반은 일을 한다

2년 간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돌아보며..

부분적인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해온 지 어느덧 2년이 꼬박 채워졌다.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때마침 스카이스캐너 담당자분의 추천으로 Travel Actually라는 연말 행사에 연사로 서게 되었다. 사실 내 여행은...이라는 주제였고, 각자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나의 지난 2년을 돌아보면서 내린 결론은, "사실 내 여행의 절반은 일을 한다." 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2년 간 방문 했던 곳.

16년

2월 3주간 호찌민, 치앙마이, 꼬따오, 방콕 네 개 도시 노마딩

6월 에스토니아 한 달 살기

12월 대만 타이베이 한 달 살기

17년

3-4월 호주 한 달 살기

6월 제주도 열흘 살기

7월 쿠바 열흘 살기

7-8월 멕시코 한 달 살기

9월 베트남 호이안 한 달 살기


한국을 제외하고 12개국 30개 도시를 거쳐갔었다. 보통 세계일주를 1-2년 다녀오는 사람들은 이 보다 두세배 많은 곳들을 다녀온다는 점에서는 적어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 입장에서는 꾸준히 많이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는 여행만 다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실 이 중에서 여행만 하는 날은 많지 않았다.

에스토니아 1일

네팔 8일(주말, 추석 연휴 포함 총 17일 일정)

서호주 10일(주말 포함 총 14일 일정)

멕시코 5일(주말 포함 총 7일 일정)

다낭 1일(주말 포함 총 3일 일정)

오사카 5일

2년 동안 여행을 위해 사용한 휴가는 30일이었다. 그 외에는 주말 시간을 이용해서 거점이 되는 도시에 근교를 돌아보는 정도였다. 그 도시에 랜드마크를 꼭 가야 한다거나, 어떤 관광지에서 어떤 음식을 먹는다는 목적보다는 낯선 도시에서 살아본다는 것에 집중했다. 마트에 가서 한국에서 보다 더 싼 식재료에 감탄하며 느끼는 장 보는 재미, 동네 산책하는 재미 등 소소함을 즐겼다.

디지털 노마드 ≠ 여행


여행이란 것이 취향에 따라 즐기는 방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시선에서는 우리의 방식이 여행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고, 작년부터 한 달 살기가 열풍이 이는 것을 보면 여행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어쨌든 2년 간 사무실을 떠나, 집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의 삶은 우리 사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지, 선호하는 조건들은 무엇인지 등 라이프 스타일을 찾는 과정이었다.

디지털 노마드 = 라이프 스타일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더를 여행을 하며 사는 사람들로 본다. 커뮤니티에서 보면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그러한 이미지로 비치는 경우가 많아서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서 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디지털노마드가 되는 방법을 찾는다. 이는 잘못된 순서라 생각한다.


직업에 대한 전문성을 먼저 기르고, 안정적인 수입원을 만든 뒤에 일을 하는 장소에 대한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팀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원제: The 4 hour workweek)에서도 무작정 사무실을 떠나서 4시간만 일 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업무를 재정비하는 과정을 거친 뒤 사무실을 탈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첫 시작 때부터 업무에 대해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던 이유도 이미 한국에서 원격근무로 다양한 장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장소 다양한 나라에서 지내다 보니 상황도 다양하게 직면하게 된다. 스타벅스의 와이파이만 믿고 갔다가 너무 느려서 장소을 옮겨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일하다 정전이 돼서 배터리가 다 닳을까 노심초사하며 일한 적도 있었다.

모아놓고 보니 징그럽다...

특히나 인터넷 접근성이 취약했던 쿠바에서 일했던 것이 가장 익스트림한 경험이었다. 이 곳은 일부 호텔, 공원 등 정해진 장소에서만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했고, 와이파이 카드를 구매해서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일하는데 필요한 만큼의 와이파이 카드 확보와 장소 찾는 것이 힘든 요소였다. 자리 잡고 일 시작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만, 와이파이 지역을 벗어날 때의 불안감은 떨쳐내기 힘들었다. 그만큼 난 디지털에 종속적인 디지털 노마더였던 것이다.

그래도 일에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단돈 4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얼굴만한 애플망고 그리고 8천원이면 먹을 수 있는 랍스터.
호텔로 일하러 가는 길에 현지인들 사이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말레꼰 해변에서 잠시 느껴보는 여유.

"우리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글에서 정했던 우리가 살 집을 정하는 기준에서 "최소 5 Mbps급 이상의 인터넷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조건을 전혀 충족시킬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다시 쿠바를 찾게 된다면, 칸쿤에 거점을 잡고 생활하다가 휴가로 다녀오는 일정을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내 여행의 절반은 일을 한다"라는 말은 나머지 절반은 여행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출퇴근을 해야만 하는 사회인에게 있어서 나에게 주어진 여가시간, 퇴근 후 그리고 주말 시간이 장소로부터 자유도가 생기면, 훨씬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더 재밌는 삶이 될 수도 있다.


에스토니아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주말여행으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주말여행으로 다녀왔었고, 타이베이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타이중, 가오슝을 주말여행으로 다녀왔었다. 그리고 호주에서는 근교에 다녀오기도 했고, 짧게 휴가를 써서 캠핑카 여행도 했었다.

서호주 캠핑카 여행 중 시도해 본 별 궤적 찍기.

멕시코에서 지낼 때에는 다이빙을 하면서 보내기도 했고, 세노떼에서 수영하면서 더위를 날리기도 했다.


그래서 2018년에는..

우리가 언제까지 얼마큼 이러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고, 언제든 중단할 수도 있고, 금전적인 압박도 있어서 늘 텅장에 시달리기에 늘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다.


올해는,

2월 발리(휴가)

4월 도쿄(회사 워크숍)

6-8월 프랑스 파리, 니스


정도의 확정된 계획이 있다. 노마딩으로서 다녀오는 것은 4월에 회사 워크숍을 겸해서 짧게 생활하다 오는 것과 프랑스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만큼 프랑스에서의 생활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기도 해서, 비용 절감을 어떻게 풀어갈지는 열심히 리서치를 해봐야 할 것 같다.(가능은 할까..)


아직 안 가본 곳들 중에서 지내보고 싶거나, 가보고 싶은 곳들이 있다면,

부다페스트

호주 케언즈

뉴질랜드

아이슬란드

아프리카 남부

페루 혹은 남미

이 정도가 있을 것 같다. 한두 달 살아보고 싶다는 측면에 강한 곳은 부다페스트와 호주 케언즈 정도인 것 같고, 뉴질랜드, 아이슬란드 그리고 아프리카는 3-4주 정도 여행을 해보고 싶고, 남미는 잠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과 아내와 함께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다.


이 곳들을 언제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흔이 되기 전에는 하나씩 실행으로 옮겨야겠다. 그러면 이 중에는 2세와 함께 하는 곳이 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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