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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대용 Apr 24. 2017

우리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지구에서 우리 집 정하기

지난주 5주간의 호주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또 금세 짐을 풀고 서울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직장을 다니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집의 위치는 직장의 위치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직장이 제주도로 사무실을 이전하게 되면, 제주도로 거처를 옮겨야 하고, 이직을 했는데 근무지가 부산이면 다시 또 거처를 부산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면 부부 각자의 근무지를 고려해서 서로가 출퇴근하기 적당한 지역으로 신혼집을 정한다. 

하지만 회사로 출퇴근할 필요가 없게 되면 집의 위치는 어디로 정하게 되는 걸까?


사무실 출퇴근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면 집의 위치 선정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 된다. 우리 부부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의 위치는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 여행해보고 싶은 곳이고 또한 나는 원격으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좋은 곳이어야 한다. 작년 초부터 적극적으로 우리 회사의 원격근무 제도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집 위치를 조금씩 바꿔보기로 했다.(디지털 노마드를 꿈꾸게 된 건..)


16년 2월에 첫 시작으로 동남아시아(호찌민, 치앙마이, 꼬따오, 방콕)를 3주간 여행을 하며 돌아다녔다. 이때 집의 위치 선정 기준은 딱히 없었고, 우리가 시내를 구경하러 다니기 용이한지 정도만 고려했다. 그리고 한 곳에 3-4일 정도만 머물기 때문에 장을 봐서 요리하기엔 애매했기 때문에 부엌이 있는지 여부는 고려할 조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시내 구경 다니기 좋거나,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집을 위주로 정하게 되었다.


치앙마이에서는 님만해민 지역에 있는 콘도에서 지냈었는데, 이 지역에는 이쁜 카페들이 많아서 카페를 골라 다니면서 일하기도 재미있었다.


방콕에서도 아파트에 수영장이 있어서 주말에는 수영을 즐기기도 했고, 집 근처에는 싱싱한 망고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퇴근길에 현지인들의 행렬에 껴서 맛 좋은 것들을 골라와서 집에서 즐기기도 했다.


3주간 네 개의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집을 바꾸었을 때에는 그 동네에 정이 붙으려고 할 때 이동을 해야 했고, 일과 병행이 돼야 하는 상황에서 잦은 이동은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그래서 6월에 에스토니아로 가기로 정했을 때, 우리는 온전히 한 달에 한 도시에만 집중해보기로 했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구경하기 좋은 올드 탈린은 상대적으로 집세가 비쌌고,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서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잡게 되었다. 그래도 이 도시는 한 달에 30유로만 내면 대중교통이 무제한이었기 때문에 교통비 걱정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살아보고 나니 자주 가는 마트가 생겼고, 단골 식당이 생겼고, 주기적으로 분리수거도 하면서 확실히 내 집이 제대로 정착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 현지인처럼 살아갈 수 있었다.


그 재미를 맛본 뒤 우리는 동일한 방식으로 연말, 연초를 대만 타이베이에서 보냈다. 생각보다 비싼 집 값에 타협해서 구한 집의 위치는 용산사역 부근. 집에는 설거지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정도의 시설만 갖추고 있었고, 요리를 할 수 있는 부엌은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내보니 매 끼니 매식사를 외식에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부엌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외식문화가 발달한 대만이라 하루 세끼 식사를 외식으로만 하는데에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적당한 크기의 부엌 간단하게라도 요리할 수 있는 부엌의 필요성을 느꼈다.


최근 목적지를 호주로 결정했던 것은 순전히 호주 로드트립 때문이었다. 로드트립의 시작이 서호주 퍼스이고, 끝이 시드니였기 때문에 그 앞뒤로 우리는 조금씩 살아보기를 시도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퍼스에서는 2주를 시드니에서는 1주를 지내보기로 했다.

집을 퍼스 도착하기 하루 전에 급하게 결정하게 되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시티로부터 약간 떨어진 1 존 지역에 잡게 되었다. 1 존에서 시내로 나가려면 차가 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했다. 2주만 사는데 차를 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편도로 3-4달러 수준은 우리에게 부담이 되었다. 게다가 집 근처에 마트도 도보로 다니기엔 무리가 있는 위치였다. 다시 퍼스에서 집을 구한다면 두 명의 시내 왕복 차비를 고려해봤을 때, 집세를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시내에 잡게 될 것 같다.


그래도 이 집의 장점은 넓은 뒷마당이었는데, 아보카도, 망고, 오렌지는 물론이고 포도 등 다양한 과일들이 야생처럼 자라나서 가끔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잘 익은 과일들을 즉석을 따다 먹는 재미도 있었다. 언제 이렇게 뒷마당이 넓은 집에서 살아보겠냐 싶기도 했다.


시드니에서는 자동차 여행을 함께한 동행 두 명과 함께 지낼 집으로 구했다. 그리고 그 동행 두 명은 여행의 목적이 더 크기 때문에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잡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정한 집의 위치는 꽤 만족스러웠다. 도보 3분 이내 거리에 대형 마트 콜스(Colse)가 있었고, 지하철역이 있었다. 그래서 장을 보기도 편했고, 다른 지역으로 놀러 나가기도 용이했다.

버스를 타고 30-40분을 가면 본다이 비치가 나오기도 했고, 지하철 서너 정거장만 가면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는 야경을 즐길 수도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여러 도시에서 집을 정하고 살아보면서 우리 나름대로의 한 달 동안 살 집을 정하는 기준이 생겼다.

집에는 부엌과 세탁기 그리고 최소 5 Mbps급 이상의 인터넷을 갖추고 있을 것.

한국과 비슷하거나 저렴한 수준의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할 것.

도보 가능 거리 내에 마트가 있을 것.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우리 부부는 또다시 서울이 아닌 곳의 우리의 집 위치를 정하고 있다.


"다음 집은 어디로 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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