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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수 Oct 13. 2020

 前 옴잡이의 하소연

프랑스에서는  재수 옴이 붙을 일이 꽤나 많이 벌어진다.


일요일 아침, 일본에 사는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라. 꼭 보라. 무슨 일이 있어도 1화는 지금 당장 보도록 하라.


분명히 시차까지 치밀하게 계산한 게 틀림없는, 내가 일어나는 시간을 귀신같이 맞춰 보낸 명령형 메시지였다.

주변에서 조금씩 이야기가 나오고, 유튜브 영상에 간간히 등장해 존재 여부는 알고 있었지만 본 적은 없었던 드라마. 화려한 젤리들이 꿈틀꿈틀 대다 팡팡 터지는 예고 영상을 봤을 때, 우와 제대로 키치 한데?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재밌었기에 강제 시청을 원거리로 요청하는가 싶었다.


과연, 이래서였나.


무릎을 탁 쳤다. 친절하지 않은 배경 설명. 비틀어진 캐릭터들이며, 젤리들이며, 일광소독, 안전한 행복. 비현실적이지만 존재하는 게 당연한 듯 우리를 자연스레 설득하는 스토리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장르다. 동성애, 세월호, 가난과 같은 잘 심어진 사회문제적 요소들도 한 몫했다. 유쾌하면서 괴로운 안은영이라는 주인공과 의심 없이 은영의 힘을 믿어주는 맹한 한문선생의 기묘한 케미도 아주 좋았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 나를 전율시킨 존재가 있었으니.

한 지역에서 영원히 옴을 잡아먹어야 하는 옴잡이였다. 20살이 되기 전에 항상 죽음에 이르지만 어느새 다시 태어나 다시 옴을 먹기 시작하는 배꼽이 없는 옴잡이.


옴, 옴이라니. 젠장. 다시 그 단어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옴잡이의 역할을 은영이 설명할 때 한문선생은 묻는다.

옴이요? 그 재수 옴 붙었다 할 때 옴이요?


그래 그 옴이요.

맡은 지역의 옴을 냠냠 먹어치워야 하는 보건교사 안은영 속의 마른 옴잡이처럼, 작년 이맘때 즈음 나는 내 몸뚱이에 둥지를 틀었던 옴들과 싸웠다. 4개월의 사투 끝에 옴과의 싸움의 승리자는 나였지만, 그게 과연 제대로 된 승리라 말할 수 있을까.





프랑스는 성격은 더럽고, 더럽게 예쁜 애인 같아. 화가 울컥 나서 소리를 지르려고 돌아보면 그 예쁜 얼굴 때문에 마음이 녹아버리거든.


프랑스 생활 7년 차였던, 어학에서 부터 동거 동락해온 친구가 밤의 루브르를 함께 걸으며 했던 말이다. 날은 맑았고 관광객은 많지 않았던 날이었다. 마침 오른쪽으로 보이는 에펠탑도 정각이 되어 황금빛으로 빛나는 몸체 위로 수백의 하얀 전구들이 반짝거리며 그 존재를 뽐냈다. 말 그대로 더럽게 예뻤다. 그는  더 이상 예쁜 얼굴을 뜯어먹고는 못살겠다며 짐을 싸서 한국으로 귀국하였지만, 이 놈의 프랑스는 애증이라는 감정으로 가득한 곳이다.


별의 별일이 다 있다. 이곳에서는 정말,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별과 별의 일들이 일어난다. 인터넷 설치는 3주가 넘게 걸리고, 온다고 했던 택배는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방역 때문에 도망 나온 쥐들이 하필 정착한 곳이 잠시 비워뒀던 나의 집이라 쥐들과의 동거가 시작되고, 빈집털이범들이 내가 외출하는 날을 귀신같이 알고 나의 연약한 나무 현관을 다 뜯어놓질 않나. 인종차별, 이제는 우습지도 않다. 옆에서 '니하오'라고 인사하면 '짜이찌엔'이라고 인사해줄 수 있는 강철 같은 멘털이 장착된 지 오래다. 하지만, 벌레는, 정말 벌레는. 벌레는 아니잖아.




이제는 우리나라도 DDT는 불법이라고 하던데.


유럽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놀라운 벌레는 먼저 가 있다. 네. 머리에 꾸물거리는 하얀 그거요. 손으로 누르면 톡 하고 터지는 걔요.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국인 가정이 있다면 아마 한 번쯤 겪었을 일인데, 아이를 학교에 보냈더니 머리에 이를 옮아왔다는 거다. DDT를 머리에 뿌리고 소독차를 쫓아다니면서 박멸되었을 한국과는 달리, 이 곳은 아무리 고급 사립학교에서도 이를 옮아온다. 긁적긁적 거리는 아이들의 머리를 들추면 뽀얗고 통통한 이들이 꾸물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유럽의 배낭여행가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베드 버그, 우리말로 빈대라 불리는 벼룩. 한번 달라붙은 빈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독하다. 친구 중 한 명이 폴란드에 3박 4일로 여행을 가서 묵었던 에어비엔비에서 빈대를 데리고 파리로 돌아왔다. 붙어온지도 모르고 며칠을 보내다가 계속 벌레에 물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줄로 주욱 이어진 새빨간 물린 자국은 그야말로 호러에 가까웠으니, 그 자리에서 침대 밑을 들춰보니 검붉은 점들이 꾸물꾸물. 그때부터 벌레와의 전쟁을 시작했건만, 빈대는 친구의 집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침대는 물론, 모든 이케아 가구 속, 옷, 책, 커튼, 마룻바닥까지. 벌레 스프레이를 뿌리고, 벌레퇴치 업체를 부르고, 소독 폭탄까지 터트렸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나중에는 집안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생활을 영위하게 되는데, 저 작은 생물들에게 집을 빼앗긴 비참한 기분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6개월간을 버티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간 그 친구는 이때 받은 스트레스로 위에 구멍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했다.


파리에 처음 살기 시작한 이여, 길거리에 버려진 예쁜 빈티지 가구를 보아도 위에 빵꾸 뚫리고 싶지 않다면 절대 손대지 마시길. 빈대가 들러붙어 내어 둔 가구일 수 있으니.



그리고 대망의, 옴이다. 어느 날, 손가락 사이에 수포가 하나 둘 나기 시작했다. 심하게 가렵지는 않았지만 계속 올라오는지라 이상히 여겨 약국으로 갔다. 굉장히 불친절했던 할머니 약사님이었는데, 손에 뭐가 난다며 보여주자 그 순간 멀찌감치 뒤로 물러났다. 괴팍한 인상을 쓰며 나에게 'gale'처럼 보인다며 당장 병원을 가보라고 소리쳤다. 심상치 않은 반응에 'gale'이 무언가 하고 핸드폰을 꺼내 사전을 찾아보니 옴 진드기라고 뜨더라. 그 뒤는 한문선생과 같은 반응이었다. 옴? 재수 옴 붙었다의 그 옴?


할머니는 신속했다. 그 골목길에 있는 일반의 개인병원에 나를 데려가 주었고 (프랑스에서 이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는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휴가 간 의사를 대신하여 있던 젊은 의사분은 장갑을 끼고 슬쩍 훑어보더니 먹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얼떨떨하게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 옮을 찾아보았다. 한국에서는 아주 드물게 요양병원 등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보통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옮는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작은 진드기는 대략 2주에서 최대 몇 달간의 잠복기를 거치고 나서야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어디서 옮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또한 빈대와는 다르게 사람 몸에 기생한다. 가장 먼저 보이는 증상이 바로 손가락 사이의 수포. 알을 까기 위해 깊숙이 판 굴에서 탄생하는 발진, 수포이다. 그리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피부를 여기저기 물어뜯기 시작하는데 주로 팔과 다리에 빼곡히 물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얼굴은 피부가 두꺼워 잘 올라오지는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그래도 귀엽게 표현되었다. 다리가 우굴우굴해서 꽤나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웬만해서는 찾아보지 마시기를 추천한다.


옴이 더욱 끔찍한 이유는 옮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거였다. 내가 앉았던 자리, 혹은 내가 접촉한 사람들에게 역시나 잠복기를 거쳐 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옴이 옮아 있는 동안은 집에서 잘 나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경우에도 혹여나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고생을 겪을까 두려워 불안에 떨었다. 사람 몸에서 떨어진 후에도 2주 정도는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일 입었던 옷을 60도에 빨고 봉지에 넣고 묶었다. 나중에는 봉지가 없어 쓰레기봉투에 넣어 봉했다. 한동안 좁은 원룸 반이 옷과 이불이 가득한 쓰레기봉투로 뒤덮여있었다. 매트리스에 옮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침대에 눕지 못하고 바닥에서 잠을 잤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 나에게는 지독한 시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옴이 사라졌는지 아닌지 시간이 지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이주에 한번 먹는 독한 약을 처방받아먹었지만 계속해서 물려갔다. 바르는 약을 처방받으려 비싼 피부과에 갔다. 진료비 120유로를 내고 바르는 약을 처방받아 온몸에 바르고는 옷에 지워질 염려가 있어 알몸으로 잠을 잤다. 나중에 알고 보니 먹는 약은 일종의 반려동물 진드기 벼룩 약과 같은 원리라고 했다. 먹는 사람의 피에 독을 돌게 해서 무는 벌레가 죽는 독한 약이었다. 독한 약에, 자지도 먹지도 못하니 살이 죽죽 빠져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속도 모르는 사람들이 살 빠져 예쁘다고 말했다. 옴에 옮았다고 털어놓으면 그날 밤 자신의 몸도 간지러운데 옮은 건 아닌가 나에게 전화가 왔다. 병균이 된 것 같았다. 참으로 서러웠다.


나를 그리도 괴롭혔던 옴은 결국 물러갔지만, 매일 고온에 빤 덕분에 대부분의 옷이 상했고 이불빨래를 위한 코인 세탁소, 약 값, 병원비가 어마 무시하게 나갔다. 잔뜩 낡아져 버린 옷들보다 내 정신머리가 더 헤져있었다. 지치고 힘든 싸움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옴에 물렸던 자국은 덕지덕지 내 몸에 남았다. 이제 나는 벼룩시장에서 함부로 물건을 사지 않는다. 그리고 에펠탑 앞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잔디에도 앉지 않고 가능하면 지하철에서는 서서 이동한다. 몸에 무언가 물렸을 때 혹시나 모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 일까 긴장하며 물린 자국을 찾아본다. 경험은 사람을 자라게 만든다지만, 만약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경험이라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제가 그만두면 다들 재수 옴 붙을 텐데요. 옴은 붙었을 때 바로 떼야지 오래 두면 영혼이 상합니다. 100일 정도 지나면 돌이킬 수 없어요. 사람은 불운이 이어지면 불행해지기 마련이라서...    

- 옴잡이 대사 중


빈대는 초가삼간을 태우고, 재수가 없으면 옴이 붙는다. 실로 조상님들의 말씀은 틀린 게 없다. 옴은 공포다. 내 몸에서 계속해서 알을 까고 수백 마리씩 살아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물린 자국과 간지러움 뿐. 빈대가 집을 빼앗긴 심정이라면 옴은 내 몸을 빼앗긴 기분이다. 위의 대사처럼 혼이 상하는 경험을 실시간으로 마주한다. 드라마에 등장한 그 옴 잡이가, 수백 년을 같은 지역에서 옮을 꼭꼭 씹어가며 삼켰을 옴 잡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할 수 없다. 운명으로 받아들여왔던 옴 잡이를 그만둘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재수를 지켜주기 위하여, 친구들이 입을 몸과 마음의 공포를 덜어주기 위해 옴잡이 혜민은 위장약까지 들이부어가며 열심히 옮을 먹어 치운다. 인간이 아닌 존재이지만 그 마음이 참 고맙고 어여쁘다. 그녀가 삼켜 사라진 옴의 수만큼 사람의 삶을 살아갈 혜민이 행복해졌기를 바라며. 아직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지 않은 당신, 지금 당장 1화를 시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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