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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청 Oct 19. 2021

오키나와 백수2

아무 생각없이 떠난 첫 여행

매일 여행을 준비하는 루틴은 일정했다. 아침 8시 30분쯤 간신히 눈을 떠서 호텔 조식을 먹고 올라와서 ‘Do not disturb!’ 팻말을 걸고 다시 한 두 시간 더 자다가 11시쯤 호텔을 나섰다. 한국은 겨울로 진입하는 시기였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늦여름이었다. 최저기온 17도, 최고기온 27도. 얇은 후드티에 반바지, 크록스를 신고 돌아다니기에 딱 좋은 날씨. 여름을 좋아하는 나에겐 정말이지 최고의 날씨 였다. 이후 지독하게 오키나와를 편애하게 된 이유는 어쩌면 날씨와 계절이 만든 기분 좋은 첫인상의 영향도 있지 않았나 싶다.


14장의 조식 쿠폰을 받았을 때 여행비용의 40% 정도를 숙박비에 투자한 보람이 있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뚜벅이 여행을 할 예정이라 끼니를 아무래도 저렴한 음식(주로 편의점 벤또) 중심으로 해결할 것 같았는데, 호텔 조식은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호텔 조식을 먹을 때 매일 같이 먹었던 된장국 같은 찜 요리. 빵에도 밥에도 너무 잘 어울려서 매일 먹었는데, 그 요리가 돈지루라는 건 귀국하고 일드 심야식당을 보면서 알았다. 아무튼 이날은 호텔 조식 먹듯 빵과 햄 오믈렛을 접시에 담고 돈지루도 한 그릇 떠서 먹었다.


호텔 조식은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결국 귀국 후에 알게된 돈지루도 매일같이 먹었다. 


국제면허증을 준비해 오지 않아서 14박 15일이 계속 뚜벅이였다. 이후에 오키나와 여행 때 차를 몰면서 2011년을 잠시 후회해 보긴 했지만, 이때는 그냥 걷는 게 좋았다. 호텔을 나서서 계속 걸었다. 동네 풍경을 구경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계속 걸었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벤또를 하나 사서 공원에서 먹고 또 걸었다. 이후에 오키나와 여행마다 재밌었던 건 차를 몰며 2011년에 걸었던 길을 지나칠 때였다.


이날도 역시 호텔을 나와서 목적지 없는 산책의 연속이었다. 혼자 갔던 여행이라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가족이나 연이이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아마도 등짝을 수도 없이 맞았을 거다. 호텔에서 나와서 토마리 항구가 있는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바다가 보였다. 그곳이 호텔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바다였다. 가는 길에 벤또를 하나 샀다. 가이드가 알려준 꿀팁대로.


“아마 편의점 파는 벤또도 먹을 만하긴 한데요, 그거 말고 점심시간쯤 오피스타워 앞에서 좌판을 깔고 파는 게 훨씬 맛있어요.”

“아! 그래요? 직접 만들어 나오시는 건가?”

“맞아요 거의 집에서 만들어서 갖고 오시는데 가격은 편의점 벤또랑 비슷해서...”


토마리항 방향으로 걷다 보니 정말로 점심시간이 임박하자 오피스타워 앞에서 좌판을 깔고 벤또를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뭔지 알아 들을 순 없었지만 구색이 제일 맘에 드는 도시락을 집어 들고 560엔을 건냈다. 오키나와에 올 때 너무 전투적으로 여행을 하지 않고 마치 현지인처럼 있다 오자 싶었는데, 둘째 날부터 진짜 현지인 같고 재밌었다. 그저 벤또를 하나 샀을 뿐인데, 그 자체가 오키나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미노우에 해변. 그냥 동네 앞 해변이라고 하면 딱 맞을 정도의 규모였다. 백사장을 가로질러 끝까지 걸어도 대략 10분 정도면 충분할 정도의 거리.


벤또를 들고 걷다 보니 재미있는 공간이 있었다. 나미노우에 해변. 그냥 동네 앞 해변이라고 하면 딱 맞을 정도의 규모였다. 백사장을 가로질러 끝까지 걸어도 대략 10분 정도면 충분할 정도의 거리. 그리고 앞쪽으로 해안 고가도로가 지나가는 구조였는데, 그게 마치 입수금지구역을 가르는 안전 펜스처럼 느껴져서 재밌었다. 해변 한쪽 구석엔 마치 변산반도에서 볼 법한 채석강 같은 적당한 크기의 바위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 신사가 있었다. 해변 이름과 같은 나미노우에 신사. 규모도 적당하고 한가한 동네 해변 같아서 벤치에 앉아서 벤또를 먹기에 딱 좋았다. 벤또를 거의 다 먹을 쯤 옆을 보니 고양이가 아무 경계심 없이 낮잠을 자고 있어서 역시 일본이구나 싶었다. 길고양이들이 왠지 한국 보다는 덜 홀대받고 사는 곳 같아서.


벤또를 거의 다 먹을 쯤 옆을 보니 고양이가 아무 경계심 없이 낮잠을 자고 있어서 역시 일본이구나 싶었다. 자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바라봤다. 


점심을 다 먹고 해변에서 한동안 멍하게 있다가 동네를 구경해야 겠다 싶어서 발걸음을 돌렸다. 나미노우에 해변을 중심으로 근처 동네와 골목을 걸으며 한참을 구경했다. 꽤 관록이 느껴지는 가게와 간판, 으리으리 하지 않지만 적당한 규모의 녹지와 공원, 한가한 골목길 분위기. 이때 부 터 일본의 이면도로 같은 느낌이 있는 골목을 걸으면 구경하는 걸 즐기게 됐다. 성수동이 지금보다 조금 덜 뜨거웠을 때 서울숲 근처 골목이 딱 그런 느낌이라 너무 좋았었고. 물론 지금은 또 핫 플레이스의 화끈한 재미가 있지만... 아무튼 이틀째 여행은 이렇게 나미노우에 해변과 골목을 구경하다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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