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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Oct 20. 2023

지금 내 고향은

     

     

     

          

  새해 첫날 아침 잊힌 전설처럼 보기 힘들던 ‘까치의 울음’ 소리를 오랜만에 들었다. ‘깍~ 깍 ~ 깍 ~ 깍’ 소리를 내며 감나무에 걸터앉은 까치, 한참을 울어대던 모습을 뒤로하고 어느새 날아 뒷동산으로 방향을 틀어 참나무 가지에 날름 앉는다.

  나 어릴 때 자주 찾던 뒷동산에는 유난히 참나무가 많아 도토리를 따거나 주웠고, 소 풀 뜯기러 산에 갈 때에도 반드시 뒷동산을 거쳐야만 좋은 풀밭을 만날 수 있는 동네의 요지이기도 하다. 여름철 더위가 극성을 부리면 뒷동산 높은 자락에 자리한 상수도 탱크 옆에 돗자리 하나 펴놓고 물소리 들으며 땀을 식히기도 하였던 곳이다. 산 주인인 ‘이 씨네 할아버지’는 얼마나 무서웠던지 평상시에도 그분이 나타나면 눈에 뜨이지 않도록 몸을 피했으며, 어쩌다 마주치면 방긋 웃는 얼굴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선 큰 소리로 씩씩하게 ‘진지 잡수셨어요.’라고 문안 인사를 하며 갖은 재롱을 부리는 등 다들 잘 보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산 주인인 이 씨네 할아버지 집은 우리 집과 큰 밭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집에서는 꼬마들의 놀이터인 뒷동산을 정면으로 내려다볼 수 있기에 산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 볼 수 있는 그런 집이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장에 가시거나 동네를 비웠다는 소식을 알면 그때부터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서로 연락을 취하여 도토리를 주워 담는 자루며 굵은 나무토막에 가운데 구멍을 뚫어 긴 자루를 끼워 도끼로 쓰던 곰방메를 어깨에 메고 뒷동산을 쏜살같이 달려 올라간다. 도토리를 줍다가 이 씨네 할아버지가 동네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우리들은 허겁지겁 줄행랑을 하여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날이 어둑해지면 그때서야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설이 되면 우리 동네에서는 윷놀이를 하거나 꽹과리며 장구를 내어 풍악을 즐기기도 하고, 정월 대보름에는 우리들은 매봉째(산)에 올라 ‘달맞이’를 하고 소원을 빌며 쥐불놀이며 ‘망우리’ 놀이를 하였다. 어머니는 보름달이 훤히 밝으면 볏짚으로 귀신을 만들어 마당 한가운데 세워 놓고 불로 태우며 액(厄)을 멀리하고 소원을 비는 정성도 보이셨다. 수수팥떡을 만들어 부뚜막, 장독대, 화장실 등 귀신이 붙을 만한 곳에 올려놓고 귀신을 쫓으며 가족들의 안녕을 기도하며 산신을 모신 곳을 손수 찾아 정성껏 제사도 지내셨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70년도 중반까지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마을 광장에 다 같이 모여 노래 공연도 했는데 요즘은 좀처럼 그러한 광경은 볼 수가 없다. 물론 농촌 지역이 경제난으로 생활을 꾸려가기 어렵고 먹고살기도 힘들어 농사철에도 젊은이들을 볼 수 없다고 하지만 옛사람들의 놀이 문화와 전통까지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기만 하다. 부모들 자신은 고생을 하더라도 자식들만큼은 출세시키려고 도시로 도시로 자식들을 내 몰았기에 동네는 쓸쓸하기만 하다.

  이번 설에도 도시에서 생활하던 친구나 동생들의 얼굴도 보고 그들이 생활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듣고 싶어 동네 사랑방을 찾았다. 밭둑에서 추운 손을 호호 불며 연을 날리던 까까머리 친구들의 모습도 그리며 복숭아 빛 얼굴을 한 소녀에게 좋아한다는 말 대신 눈덩이를 던져 눈물을 쏟게 하였던 옛날 사랑 얘기도 이번에 만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속에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그때 내가 너를 좋아했던 것 아니? 너는 통 나에게 관심이 없어 호기심을 끌려고 눈을 던졌던 거야'라고 이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어릴 적 소녀도 나와 있을까? 

  추운 겨울이 오면 우리들은 성한 데가 없었다. 구멍 난 바지를 입은 채 썰매를 타거나 '자치기'를 하고 토끼몰이하러 산으로 몰려다녔기에 손등이 얼어 터져 피가 맺히기도 하고 볼에는 얼음이 박혀 언제나 까칠까칠하였다. 저녁을 먹고 나면 문풍지가 떨어져 바람이 숭숭 스며드는 방에서도 추운 줄 모르고 밤늦도록 오순도순 얘기 나누며, 어쩌다 심심하면 성냥갑이나 담배까치를 걸고 내기 화투도 하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교 시절에 우리들은 어른들이 하던 놀이를 알아 버리고 말았다.

  다들 모이진 않았지만 고향의 냄새가 그리운지 마을 회관은 젊은 층에서 중년인 우리들로 가득하였다. 아궁이에서 갓 구워 낸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고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놀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는지 코흘리개 시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빠져 정수리 중앙이 시원스럽게 보이고 군데군데 흰머리며 얼굴에는 주름도 눈에 들어온다. 도심의 공간 속에서 쪼들리는 삶으로 인해 웃음을 잃어버린 얼굴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 대신 슬픔을 얻어야 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담배 연기 가득한 방 안에서 나는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만다. 지금까지 그들이 살면서 받아 낸 고통의 조각들이 어느새 내 맘 깊숙한 곳을 찌르고 있었다. 그들의 찌든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아직도 원활하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 한쪽이 시려온다. 

  농촌에서는 학생 수가 줄어 문 닫는 학교가 늘어나고 어린애의 울음소리 들어 본 지 오래되었다 한다. 오죽하면 충북 청원군에서는 인구 확산 정책을 위해 그 지역에서 아이를 낳아 출생신고를 하면 출산 및 산후조리 용품까지 나눠준다 한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도 예외는 아니어서 친구나 젊은이들 대신 등 굽은 50대 후반 및 60대 아버지 세대들이 마을을 지키며 농촌을 이끌어가고 있으니 올해 농사가 벌써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 자신도 명절이나 제사가 있어 고향을 찾으면 손님 대접을 받고 오는 현실이 되다 보니 시골을 갈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하기만 하다. 허전함을 달랠 그 무엇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을회관에서 나오는 길에 동네 어른들이 모이시는 사랑방을 보니 불이 꺼져 있다. 초저녁 이른 시간인데도 어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걸쭉한 막걸리 한 대접이면 세상을 노래하고 시를 읊던 쉼터엔 적막감만이 감돈다. 어둠과 달빛이 교차하면서 밤을 이겨내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의 구수한 웃음소리 들어본 지 오래되었는데 그 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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