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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09. 2023

그 남자가 산속으로 들어간 까닭은

  남자는 문명이 닿지 않은, 때 묻지 않은 자연의 품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 입 다물지 못하고 대하는 음식의 맛과 향에 환호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삶을 고민하는 대신 뭘 만들어 먹을까 생각하고 고구마 잎을 보고 뜰에 난 풀을 뽑으며 잠자리에 듭니다.  

중간마다 통나무를 걸치고 굴피로 지붕을 해 덮은 흙벽돌집은 사방으로 문이 나 있어 산천초목이 한눈에 다 들어옵니다. 마당에선 연자방아가 돌고 장독대 옆에선 돼지감자가 싱싱한 잎을 자랑하며 처마까지 치고 올라갈 기셉니다. 집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놓인 빨간 우체통에서는 하룻밤 묵어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새파란 잔디가 물결치는 정원에선 봉숭아와 백일홍이 남실댑니다. 농약을 치지 않는 채소밭은 이미 오래전에 곤충들의 놀이터로 변해버렸고요. 담벼락 한옆에 수북이 쌓인 장작더미마저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붙듭니다.  

 구름도 쉬어 가고 바람도 잠들다 간다는 산골짜기 동네 장수. 첩첩산중이라 밤이 되면 별이 뜨고, 겨울이면 눈 내리는 소리까지 들린다는 곳. 안주인의 말로는 바깥양반이 건강이 좋지 않아 그곳까지 왔다고 하나 그 누가 보아도 별천지입니다. 집 앞으로 도랑물이 흐르고 소나무 동산이 앞을 받쳐주고 집 뒤로는 산책할 길이며 뙈기밭이 붙어 있습니다. 담 옆에선 능소화가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고, 뜰에는 금낭화와 채송화와 참나리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오가는 사람의 마음을 흔듭니다. 가고 싶고 머물고도 싶은 곳. 이곳에서 놀다가 이곳에서 숨 쉬다 이곳에서 잠들고 싶습니다.

  바깥양반은 기관지가 좋지 않았어요. 날이 습습한 날엔 늘 콜콜거렸어요. 평생 감기를 달고 산 거나 마찬가지예요. 매사에 짜증을 내고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고. 그러니 가정이 편안했겠어요. 그 양반 때문에 쇠털같이 하고많은 날 걱정을 껴안고 살았죠. 생각해 봐요. 자기야 아파서 그랬다지만 난 뭐예요. 맘고생 정말 많이 했어요. 애를 하나 더 낳아 키우는 게 났지, 그런 고생 누가 사서 하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 안 하고 살아요. 그분 건강도 몰라보게 좋아졌어요. 천식이 심했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기침도 잦아들고 잔병치레도 거의 안 해요. 사람이 들지 않고 집이 멀어 자식 얼굴 일 년에 몇 번 못 보는 게 아쉽지만 그것 말고는 불편한 거 모르고 살아요.

  그렇게 내가 안주인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립니다. 얼떨결에 그쪽으로 눈을 돌리니, 아니 세상에 같이 문학기행 온 우리 일행 중의 여자 한 분과 바깥주인이 안채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것도 이른 아침에 말입니다. 얼굴을 마주 보며 고풍스러운 가구와 도자기와 노리개에 눈길 주며 깔깔대는 모습이 꼭 부부 같았습니다. 무슨 얘기를 그리 정답게 나누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더라고요.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간 건지, 아니면 불러들였는지 모르지만, 그러다 안주인이 그 장면을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그 일로 괜한 오해를 사거나 헛된 생각을 하게 해 부부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건이죠, 사건. 그런데 놀란 것은 바깥주인이나 밖에서 그 진풍경을 바라보는 안주인마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겁니다. 표정 변화가 없어요. 그게 일상이 되어 버린 듯 둘 다 태연합니다. 오히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가 부끄러워 그 자리를 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아무튼 지금 그들 내외의 얼굴은 끈적끈적하고 질퍽한 삶의 그늘에서 벗어난 듯 보입니다. 사람들이 찾아들면 반가워 달려 나가고 손 내밀면 덥석 덥석 손을 잡으니 말입니다. 그들 내외는 부산과 울산에서 태어나 결혼해서는 반평생을 서울에서 보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삶은 아니라며 살아온 얘기를 들려줍니다. 집 뒤로 난 산책길을 같이 걷고, 동네를 구경한다니까 비 오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따라나서기도 합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장맛비가 그치질 않아 기분이 가라앉기도 했지만 산에 도랑물에 흙집에 꽃에 풀에 집주인의 정에 마음 뺏겼습니다. 장수가 고향인 지인의 초청으로 동네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어도 어머니의 품속에 안겨 젖내 맡던 고향에 온 것 같아 낯설지 않았습니다. 노년의 안식을 위해 내 몸 내려놓아도 좋을 둥지를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절로 났습니다. 잔디밭이 축축해 그곳에서 작품 합평회를 하지 못했어도, 밤새도록 비가 내려 별을 보지 못했어도, 집주인의 가슴속에서 별을 보았고 넉넉한 마음을 읽었으며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도 알았습니다.

 남자가 36년여의 긴 공직생활을 마치고 이곳 논개 생가 마을에 들어와 정착한 지 5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세상이 변해가듯 메말랐던 땅에도 풀물이 들어갑니다. 좁았던 길에도 내려앉았던 밭둑에도 텃밭에도 오를 수 없었던 뒷동산에도. 정성을 다한 주인의 숨결은 차가워진 내 육신을 데웁니다. 비어 가는 가슴에 불을 지릅니다.

  우리 일행이 짐을 싸서 나오니까 안주인은 가는 사람 붙들려는 듯 복분자즙을 한 다라 퍼 내놓는가 하면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려 달라 하고 방명록을 내놓으며 한 줄의 소감이라도 적어달라고 사정합니다. 그런 안주인의 마음에서 외로움을 읽었습니다. 남자는 대문 밖 차를 세워 놓은 곳까지 따라 나와서도 일일이 손을 맞잡으며 놓아주지도 않고 오래도록 손을 흔듭니다. 그런 바깥양반의 얼굴에서 고독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난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겉치레 인사만 건넸습니다. 주인 내외가 삽짝까지 나와 배웅하는데도 나는 다시 한번 들르겠다며 명함만 받아 들었습니다. 그곳 풍경 사진을 카페에 올려놓는다고 해놓고도 여태 미적거리며 딴짓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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